두 번째 미션,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찾기.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신흥 현대건축의 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천은 분명 유의미한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현대건축의 각축장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 중심에서 인천 지역 내 건축가들의 움직임을 발견해내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건축가의 부재를 입에 담는다. 대표성이 아니더라도 인천의 지역성을 담보로 건축가라는 직임에 충실한 디자이너의 존재를 찾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고 말한다. 금번 미션은 이 같은 물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김현윤(42·INO건축사사무소 대표). 그와의 만남은 2005-2006 인천건축문화제가 계기가 되었다. 작은 체구지만 다부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건축가라는 인상이 컸다. 당시 30대 후반의 그는 2년에 걸쳐 건축문화제의 커미셔너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전체 행사의 프로그램을 관장하고, 궂은일을 도맡아야 하는 그 일이 설계사무소 대표가 맡기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친 일이었다. 자신의 생업을 일정정도 포기해야 가능한 직임이었기에 자의든 타의든 그 일을 수임했다는 것만으로도 행사의 성패와 무관하게 이미 그 공을 인정받기에 마땅한 그런 일이었다.

일찍 찾아온 겨울한파가 옷깃을 세우게 하던 일요일 낮 2시. 연수3동 인천적십자병원 앞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준공된 적십자재활전문병원은 그에겐 특히나 씁쓸한 현장이 아닐 수 없는 곳이다. 현상설계에서 그의 응모작이 2등 작으로 밀리며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형 설계사무소가 그 일을 수행한 까닭이다.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사실 병원건축 설계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기대도 컸지만 마음 한켠으론 홀가분하기도 했지요. 2등 작에 선정된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건축가는 늘 새로운 프로그램과 대면하고 그것을 최적의 공간과 형태로 풀어내기 위한 수행(修行)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매순간 배울 밖에요.”

그는 2001년 기존 부지의 인천적십자병원 입원병동 증축설계를 수행한 바 있다.




(공무원교육원 체육관 리모델링)

서울공고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인천토박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주변인들보다 더 깊이 그의 존재감을 인천에 묻고 있다. 올해로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연지 8년째인데 그 속도가 무척 빠르게 와 닿는다. “처음엔 막막했어요. 인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만으로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인천이 외지인들에게 배타적이기보다는 포용력이 큰 지역이라고 하지만 건축설계 분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때에 스스로 한 가지 생각을 교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스로가 인천사람이 아니라는 굴레를 떨쳐 버리자는 거였어요.”

그는 2007년 서인천 JC 제29대 회장직을 역임한다. 지역에 깊이 파고들어가는 방법만이 인천에서 살아남는 길이라는 생각에 입회하게 되었고 결국엔 그 단체의 수장지위에 오른 것이다. 그는 현재 JC본부 해외사업개발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이 같은 태도는 지역의 자생적인 민간문화집단 (사)해반문화사랑회로도 연결된다. 1999년 입회 후 2001년부터 해반의 운영위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건축가로서 직능을 살려, 지역 내 시민문화의 중심 집단에 기여하는 등 그의 행보는 나이에 견주어 당차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공간사가 주최하는 공간학생건축상 공모전(1989년 시행)에서 우수상(주영환, 한호진 공동작)을 수상하는 등 일찍부터 건축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및 박사 과정의 지도교수로 만나게 되는 동정근 교수와의 관계에서 그의 건축학적 배경이 비로소 다져지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동 교수는 현재의 INO건축 디자인의 향방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대학원에서의 심층적인 현대건축연구는 건축외피에 레이어(layer)를 강조하는 수법, 즉 접힌 면의 건물 외곽선이 강조되는 폴드(fold)건축의 디자인어휘가 2007년 이래 그의 건축에 적극 반영된다. 동춘동 지인빌딩, 파이박스 송도공장, 남동고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최근 관심은 국내보다도 해외에 쏠려 있다. 아프리카 콩고와 가나에서 대단위 주거단지 계획 등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서울 기반인 한 종교단체의 선교행위의 일환으로 착수한 이 사업은 10만 평 규모의 대지에 블록단위로 개발되고 있는데 8천 평 규모의 1단계 시범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설계단계에 이르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 사할린에 건립예정인 22층 규모의 M-타워는 현지 허가진행 중이고, 11월 말 준공예정인 일본 아타미시 온천지구 리조트 인테리어 설계 및 공사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 그의 사무소에는 10여 명의 스태프들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작업의 규모에 비하면 많은 숫자가 아니다. “인천에서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은 쓸만한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역 대학에서 건축을 배운 좋은 인재들 대부분의 서울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설계비 단가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설계비가 낮으니 건축디자인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없지요. 그러다보니 젊은 인재들이 인천을 떠나는 것이 나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건축가의 아집보다는 건축주 및 주변인들의 의견수렴을 중시한다는 그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건축’을 표방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인천의 건축 민도에 문제가 없지 않다. 그는 건축을 향한 시민의식의 함양에 지역건축가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인천건축을 위한 포럼’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건축의 민도를 높이면 자연스럽게 건축의 질도 향상되고, 결과적으로 좋은 인재들이 지역의 건축성(性)을 만들고 지켜가는 분위기로 옮아갈 것이란 주장이다. 그는 10년 내에 인천시건축사회 수장직에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계속>전진삼(건축비평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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