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밥을 제외하고 자장면처럼 자주 먹는 음식이 또 있을까. ?

피자, 햄버거에서 스테이크하우스까지 각종 프랜차이즈의 등장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요즘 먹거리 문화지만 그래도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꼽자면 자장면 만한게 없다. ?

어렵던 시절엔 몇 달을 벼르고 벼르던 서민들의 외식꺼리였고 너나 할 것 없이 자장면을 먹는 순간 만큼은 누구나 행복했다.?

그런 자장면이 요즘은 맞벌이 부부를 둔 자녀들에게 가장 먹기 싫어하는 음식으로 꼽히거나 점심시간이 모자라는 직장인들이 마지못해 시켜먹는 한끼 때우기식 요깃거리로 외면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장면은 아이들 입가에 묻어나는 진한 자장자국만큼이나 끈끈하게 우리 식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해왔다.?

자장면은 1883년 인천이 개항되면서 인천항에서 짐을 나르던 중국의 인부들이 붉은 춘장을 볶아 국수 위에 얹어 먹은게 효시다.?

물론 우리가 아는 한국식 자장면은 1905년 문을 연 ‘공화춘’에서 고기와 양파를 넣고 볶은 자장면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음식점 ‘공화춘’이 자장면의 시작이고보면 자장면의 나이는 올해로 101살이 되는 셈이다.?

그 후 한국식 자장면을 개발한 ‘공화춘’은 ‘중화루’ 등과 함께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중국요릿집으로 호황을 누리다 1984년 경영난에 못이겨 문을 닫았다.?

1918년 차이나타운에 문을 연 중화루 역시 자장면과 함께 샥스핀과 탕수육 등으로 이름을 날리다 1978년 6월 건물이 헐리고 주인이 바뀐 채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중국집을 운영하던 화교들이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고 돌아갔다는 얘기도 있고 돈을 벌어 서울로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이러다보니 제작비법과 관련한 이야기가 영화로까지 만들어 질 만큼 주방장들의 근황에 대한 뒷얘기도 많다.?

‘왕사부’라고 불리던 주방장부터 현재 신라호텔 중식당을 총괄하며 최근 한국국적을 취득한 후덕죽(56) 상무와 3대째 이곳에서 중식업을 하는 수타자장면의 명인 손덕준(49) 사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 밖에도 현재 구월동 ‘시옌’을 운영 중인 황소충씨와 프라자호텔 중식 책임자인 유방영씨, 서울서 사업을 하고 있는 주업립씨, 아직도 인천서 활동 중인 곡창신씨, 허인씨 등이 인천 차이나타운이 배출한 유명 주방장으로 알려져 있다.?

자장면의 시초인 ‘공화춘’이 문을 닫은 지 20여년이 지난 요즘 차이나타운 일대가 100여년 전의 모습을 되찾을 움직임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공화춘’이라는 간판을 건 중국집이 부근에서 성업중인가하면 최근엔 자장면의 시초인 ‘공화춘’이라는 이름을 단 컵자장면이 편의점에까지 등장하며 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들어 개업한 이 일대 점포를 포함해 30개가 넘는 중국음식점들이 영업중인데다 중국물품점 등을 합치면 40여개 중국관련 점포들이 인천차이나타운의 예전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여기에 중구에서는 자장면의 발생지인 ‘공화춘’ 자리를 자장면 박물관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

이곳 선린동에 있는 지상 2층 연면적 256평 규모의 옛‘공화춘’ 부지를 중구에서 매입해 40억원을 투입해 1층을 화교문화박물관으로, 2층은 자장면 시식을 겸한 체험공간으로 만들어 2009년 개관한다는 것.?

100여년전 중국의 산둥성 연안도시에서 띄운 배를 얻어타고 건너편 반도의 들머리인 인천에 닿은 가난한 중국의 노동자들이 먹던 간편식이 자장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이제는 박물관 테마가 될 만큼 귀한 몸으로 변신을 했다니 그 간의 세월이 인정될만도 하다. ?

그래선지 멋모르던 고교시절 인천의 향토음식이 자장면이라고 열변을 토해대던 중국집 사장을 속없는 장사꾼 쯤으로 취급을 하던 행동이 부끄러워진다.

이원구기자 jjlwk@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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