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션,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찾기.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신흥 현대건축의 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천은 분명 유의미한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현대건축의 각축장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 중심에서 인천 지역 내 건축가들의 움직임을 발견해내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건축가의 부재를 입에 담는다. 대표성이 아니더라도 인천의 지역성을 담보로 건축가라는 직임에 충실한 디자이너의 존재를 찾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고 말한다. 금번 미션은 이 같은 물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호원(50·家건축사사무소 대표). 비평의 긍정적 힘을 믿는다는 그는 그림과 사진에 능하고 건축의 이론적 탐구열이 높은 젊은 건축가로 분류된다. 그에게 사진의 기법을 전수한 스승(?)이자 인생의 각별한 벗인 아내와 전국의 명산과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아가는 그는 지난 주말 밤에도 강원도 곰배령을 찾아 1박 2일의 코스로 가을의 산행을 즐기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어디든 부부 간의 대화 속에서 궁금증이 증폭되면 카메라를 메고 훌쩍 떠난다는 그들. 애들은? “없어요. 부부뿐이지요. 결혼이 늦었어요. 5년 전에 했죠. 둘의 마음이 통했어요. 애들을 포기하는 대신 둘이서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면서 살자고요.” 그 바람에 이들 부부에겐 여행을 떠나는 출발시간에도 제한이 없다. 곰배령에도 그렇게 다녀온 것이다.

자연 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한몫 거들긴 했지만 그보다는 넓은 세상에서 디자인의 모티브를 찾아낸다는 그의 디자인철학이 작동한 이유가 커 보인다. “그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과하지 않아요. 곰치 장아찌 만해도 팔아서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것이기 보단 자기들이 먹고 남는 것을 산행 길의 외지인들에게 값싸게 넘기는 정도로, 검박한 생활을 미덕으로 삼고 있어요. 그런 걸 통해서 절제된 디자인의 미학과 연결 짓는 일은 어렵지 않지요.” 뭐 이런 식이다. 이러한 여행의 방식은 국내 뿐 아니라 국외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네덜란드가 사회주의 성향의 국가잖아요. 그곳의 주택은 대부분이 국가가 임대해주는 형식이던데, 중요한 건 싼 값의 집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된 집을 거주자들이 손수 고쳐가며 사용하게 되어있다는 점에 있었어요. 그런 까닭에 그들의 삶은 우리보다 무척 행복해 보였지요. 마치 곰배령의 사람들처럼 말이죠.”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설계사무실은 서울의 광장건축이었다. 한국현대건축의 2세대 선두주자로 평가되는 김원의 사무실이다. 대학에서의 사부, 원정수 교수의 권유와 추천이 있었지만 당시에 그가 광장건축을 선택하고 입사원서를 내게 되었던 배경은 건축평론가 1세대이자, 이론적 바탕이 탁월한 건축가 김원의 존재감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원과의 인연은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후 그의 건축인생에서 건축과 이론의 중요성을 견인케 하는 원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광장건축에서의 그의 행보는 엉뚱하게 풀린다. “설계실에서의 건축 수련기를 보내고 싶었는데 사무실 내부 사정으로 인해 감리(설계도면대로 건물이 지어지는 지를 관리, 감독하는 업무)현장으로 배속 받게 되었지요. 김원 선생님 밑에서 건축을 배우고자 했던 초심을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광장건축을 떠나게 된다.

1995년 6월 25일. 그는 고향 인천에서 자신의 설계사무소 가건축을 개설한다. 그 사이 선후배의 설계사무소를 전전하며 건축디자인의 척박한 환경을 경험하게 되면서 디자인뿐 아니라 건축도면의 견적업무(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실제 공사에 들어갈 비용을 추산해내는 작업)도 수행한 바 있는데 이로써 그는 건축현장의 감리 및 견적의 업무수행 능력을 겸비한 건축가로 성장하게 된다. 단순히 예쁜 그림의 건축디자인이 아니라 합리적 건축디자인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건축가로서 자신의 건축철학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구월동 1128번지 <미향>(구, 고섶). 비교적 최근의 준공작으로 2008년 남동구가 선정한 ‘아름다운 건축물’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 건물은 3개 층에 걸쳐 공간구성이 색다른 매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 층마다 입구 부근에 전망 좋은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 이 건물은 대지의 서쪽으로 흐르는 8m 보행자도로를 향해 전면 창으로 열려 있는 입면구성을 하고 있다. 직교체계의 건축선이 주된 디자인 언어로 돋보이는 이 건물은 주출입구 부분의 돌출시킨 ‘?형’ 캐노피와 그것에 적용된 사면(斜面)의 돌 디테일이 특히 눈에 띈다. “조금이라도 과감한 디자인 언어가 수용되기란 참 쉽지 않아요. 건축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낸다는 것이 쉬울 리 없지요. 이 경우엔 참 운이 좋았어요. 애당초 건물의 용도도 분명했고, 건축가의 디자인 의지에 힘을 실어준 건축주가 있어서 건져낸 수확이었지요.”

그는 학창 시절, 리처드 마이어를 동경하기 시작했고, 이후 리처드 로저스. 프랭크 게리 등으로 선호하는 건축가의 모델이 변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건축이 정형의 건축에서 점차 비정형의 건축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자인했다. 새로운 건축의 테크놀로지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정형의 규범에서 일탈해가는 자유로운 건축의 의지를 그가 탐하고 있음이다. “선천적인 디자인 능력을 자신하는 건축가도 많지만 저는 끊임없는 학습에 의해 변화되어가는 건축, 그런 류의 건축가를 좋아합니다.”

오늘날, 인천의 건축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나? 그에게 물었다. “우선은 공사비가 적정하게 책정되는 일들이 많아져야겠지요. 저비용 고품격의 건축을 선호하는 민도(民度) 이다보니 겉은 화려한데 속은 비어 있는 화장술의 건축이 난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당연히 설계비도 제자리를 찾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인천을 지키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역 연고를 무시할 수 없어요. 젊은 우리에게 그건 분명 기회요소입니다.” 건축설계의 수주와 행정적 지원 등에서 지역 내 건축가들이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주관적 판단이라 할지라도 지역에서 건축가로 살아가는 한 이유가 된다는 면에서 긍정의 힘을 믿는 그의 존재감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계속>

전진삼: 건축비평가,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