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숙희 신세기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신숙희 대표(51)가 공작기계 및 기계부품 제조업체인 신세기산업주식회사(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남동공단내)를 운영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98년이다.
인천을 근거지로 해 세계적 공구업체로 성공한 와이지원의 송호근 대표(54)가 바로 남편이다.
남편과 비슷한 분야의 사업이기는 하지만, 신 대표는 나름의 해외바이어 인맥과 경영능력을 발휘해 기계부품 수출 및 내수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전업주부로 있다가 사업을 시작하던 시기는 큰 아들이 고교 1년, 둘째 아들이 중학 2년때였다. 교육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였지만, 신 대표는 큰 고민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가 집에 없어도 제가 할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아이를 통제하거나, 엄마 요구대로 강요하지 않고 저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두었던 자유로운 육아방식도 엄마의 사회참여 결정을 어렵지 않게 한 요인이었다.




‘아이키운 얘기는 특별히 할 말이 없어요.(웃음) 엄마로서 뭐 한 일이 없어서….’ 정말 그럴까 싶을 만큼 신 대표는 마음 편하게(?) 아이를 키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나 커서나 ‘공부해라, 1등해라, 왜 못했니’ 같은 말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구하고 친하게 놀다 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거라.’ 가톨릭신자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지나치게 경쟁심으로 가득차고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며 삭막하게 자라지 않 기를 바랬다.

다만, 엄마로서 아이들 건강과 창의력 키워주기에는 관심을 뒀다. “가족 모두 아침은 꼭 먹었어요. 인스턴트 식품은 사다먹지 않고,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였어요. 아침을 먹는 것이 두뇌활동과 하루 일과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장난감은 레고같은 조립식을 많이 사다줬어요. 미세한 손동작이 많고, 창의성을 기를 수 있거든요. 참, 당시 유행하던 닌텐도라는 게임도 아이들과 같이 많이 했어요. 아이들은 부모들이 제 눈높이에서 놀아주고 말을 들어주면 참 행복해해요. 게임한다고 무조건 막는 것보다 중독되지 않도록 집에서 잘 지도하면서 어른들도 함께 즐기면 아이들에게 유익한 점도 많은 것 같아요.”

미술, 기악같은 예술적 분야 학원을 다니게 한 것외에 학습을 위해 학원을 보내지는 않았다. 기악도 아이들이 별 취미가 없어해 오래 다니지는 않았다. 대신 초등시절까지도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실컷 놀았다. 건강하고 자유로운 정신세계가 오히려 아이들이 더 어려운 학과과정에 들어갔을 때도 지치지 않고 열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바탕이 되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공부 잘한다는 여느 집 아이들처럼 어려서부터 뭔가 달랐다거나, 뛰어난 영재성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 표현을 잘 안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두 아이 모두 수학, 과학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성향을 보였다. 그 분야의 학교 성적이 뛰어났고 좋아했다. 너무 한 분야에만 치중하는 듯해 신 대표는 아이들이 국어, 논술, 사회 분야도 배우며 형평성을 가지도록 이끌어줬다.

“큰 아이가 중 2학년을 올라가려는 때쯤인데 교장선생님이 부르셔요. 과학고를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사실 저는 그때까지 과학고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던 분야가 마침 수학 과학과목이라 저희들도 찬성하더군요. 두 아이가 시차를 두고 특차로 과학고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낮시간의 일이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했다. 비록 각자 다른 방에서 다른 일을 한다해도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아버지가 사업차 잦은 해외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가 많았기 때문에 엄마는 가능한 한 아이들 곁을 지켰다.

신 대표의 시아버지, 즉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고 송찬규옹(재경인천향우회 회장 역임). 송 옹은 80세가 넘었음에도 끝없는 학구열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주변사람을 놀라게 한 인천의 대표적 원로중 한 분이셨다. 손자들은 이런 할아버지 영향도 많이 받았다.

“9년전 시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결혼해서 매주 시부모님을 찾아뵈었어요. 할아버지는 손자들을 참 귀여워해주셨지요. 삶의 지표가 될 만한 좋은 말씀을 항상 해주시고, 놀이공원에도 데려가시고.. 해외여행을 갈 때도 할아버지께 가족 모두 큰 절을 드리고 가곤 했어요. 예절과 공경을 중시하는 가정분위기, 부부의 평화로운 관계도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에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어학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요즘, 신 대표의 어학교육담을 들어봤다.
“남편 사업차 외국인 손님을 만날 일이 많아 아이들이 그런 분위기에는 좀 익숙했지요. 미국에 사는 작은아버지 댁에 가서 방학을 보내고 온다거나, 몇 차례의 가족 해외여행 등이 자연스럽게 외국,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 것같아요. 어려서 영어동화책을 사다가 읽어주고 테이프를 들으며 같이 노래도 부르고 놀이도 하곤 했어요. 영어 역시 강요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즐기면서 흥미를 갖도록 이끌었어요.”
신 대표는 늦둥이 딸 주리(중 1)도 조바심 내거나 다그치지 않고 위의 두 아들을 키운 경험대로 키울 생각이다.

KAIST에서 기계공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방위산업체에서 군복무중인 첫째 시한(26). 야간근무도 있는 바쁜 일과중 인하대 경영대학원(야간)까지 다녀, 오는 24일 졸업을 앞두고 있다. 역시 형과 같은 대학(수학, 산업공학 전공)에 들어간 둘째 지헌(24)도 방위산업체에서 군복무중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엄마들이 아이들에 대한 많은 기대와 욕심을 버리면 어떨까요. 우리도 경험했지만, 공부는 제 스스로 좋아서 열이 나서 해야 능률이 오르고 효과가 있지 않아요? 어려서는 억지로라도 부모 말을 따를 지 모르지만 사춘기가 지나면서 반항을 하고, 엇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왜 못하느냐고 야단하거나 밀어붙이기 보다는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장점을 찾아 적극 격려해주는 거예요. 다른 어머니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엄마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아이들을 마음 편하게 해줬던 것만은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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