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에게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건축탐정 AQ_제2부 제1미션’을 수행해온 지난 수개월 동안 이 지역, 배다리의 현안은 나날이 깊은 수렁 속으로 잠겨버리고 있는 양하다. 매일 매일을 생업의 전선에서 휘둘리고 있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저항의 긴 터널을 지나오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되레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주민들의 의기가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처절함을 넘어 비장함의 웅혼으로 느껴질 정도다. 꺼지지 않는 시민-의지 앞에서 인천시의 권력-의지는 여전히 인천의 도시 미래를 볼모로 일방행정의 전형을 펼치고 있다. 최근 주민대표는 <배다리 책방거리 보존 및 에코뮤지엄 조성을 위한 역사문화지구 지정 촉구> 범시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과 인천건축재단이 공동주관한 제6회 학술대회장을 나온 일행은 인근 음식점에서 그 날 심포지엄을 정리하는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당일의 학술대회는 한국근대건축 연구자들의 본거지인 도코모모 코리아(회장 윤인석)의 전·현직 수뇌부가 대거 참여하였다는 면에서 이목을 끌었다. 불행히도 인천시는 이들 참가자들의 면면에 대하여 깊이 있는 내부 검토가 없었던 듯하다. 적어도 사전 공부가 있었다면 그 날의 행사장은 좀 더 진지한 논의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조강연을 맡은 김정동(목원대)교수는 그 단체의 초대 회장을 역임한 장본인이며, 각각 발제와 토론자로 참여한 김종헌(배재대)교수는 현재 그 단체의 부회장,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교수는 회장 대행 수석부회장 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강동진(경성대)교수는 그 단체의 이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인천건축재단(대표 구영민)은 현재 2010년도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인천 유치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매년 특정 도시의 근대건축 또는 장소를 공모전 주제의 대상지로 삼음으로써 전국의 대학(원) 재학생들 및 신진 디자이너들의 보전 및 활용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아 지역사회에 제안하는 실천적 공모전이다. 2, 3년 전부터 참여자의 수도 급증하여 매년 응모자가 1,000 팀을 넘나들고 있고, 근년엔 외국에서의 응모자도 부쩍 늘었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근대건축 주제 디자인 공모전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 같은 성황에 대하여 도코모모 인터내셔널 본부 및 근대건축보존논의가 활성화 되어 있는 여타 선진적 회원국들조차 주목하고 있는 정도다.

그동안 인천시는 몇 번 안 되는 주민들과의 접촉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윽박질러왔다. 주민들이 말 많고 생각은 많으나 도면으로 옮기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것을 핑계거리로 삼은 듯했다. 민운기(스페이스빔)대표는 지역 내 건축인들을 만날 요량이면 늘상 그러한 고민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매번 벽에 대고 고함치기였다. 메아리 없는 외침도 한두 번이지 이제 그들은 지역 내 건축인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포기한 듯했다. 또한 지역의 몇몇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반 공무원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터라 그들은 이 현장을 가급적 비껴갈 뿐이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이 손수 그리고 꿈같은 이름(배다리 에코뮤지엄)을 달아내건 배다리의 동네지도는 ‘책상서랍 속의 동화’와 같은 순수성만으로 그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이희환(인하대 HK)연구교수와 민 대표는 뒤풀이 자리에 동참하여 그들이 당면한 현재의 배다리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갈 방도를 궁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방법론적으로는 여타 도시, 국가의 사례를 통하여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사업의 비전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권력-의지에 맞서는 대항논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보여줄 구체적인 대안을 모으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차기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으로 맞춰졌고, 도코모모 코리아의 수뇌부는 공모전 주제의 인천 유치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표해주었다.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인천(대상지: 배다리 지역) 유치가 확정되면 내년 상반기 중 10여 차례에 걸쳐 계획 부지를 중심으로 한 워크숍이 전국의 공모전 참가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가운데 시행되게 된다. 프로그램 상 당연히 인천시의 도시재생 및 도시개발, 문화재 담당부서 관계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과 지역학 연구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당장은 그 결과에 주목해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도시 인천에 대한 전국의 건축과 도시, 디자인, 조경 분야 등에서 수학해온 예비 디자이너들의 시선과 함께 그들을 지도하는 각 대학의 유능한 교수진들의 시각을 모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할만 하다.

인천시는 이 같은 전문 학계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배다리 주민들 뿐 아니라 지역의 지식인들이 계층과 계파를 넘어 한목소리로 부르짖어온 배다리의 역사문화지구 지정 등 산업도로 건설로 동강 난 이 지역 제3구간을 주무대로 하는 도시의 발전방안에 대하여 더 이상 시간에 쫓기듯 몰아갈 일이 아니다. 전국 대학(원) 및 신진 디자이너들의 지성과 패기를 시험하는 무대를 통하여 누구나가 공감하는 근대 도시동네 발전의 향방을 가늠하는 것은 불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관·민·학이 함께 어울려 희망의 축포를 쏘는 것과 같다는 인식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도시발전의 미래모형은 그 장소성에서 단서를 찾아내야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사진제공: 역사자료관)<계속> 전진삼(건축비평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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