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인천시보건환경연구원장

“위험지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인천시보건환경연구원 김용희(54)원장이 2층 원장실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기자를 마중하면서 건네는 첫마디이었다. 순간, 원장실 바로 맞은 편의 ‘신종플루 진단종합상황실’간판이 눈에 꽂혔다.

의심쩍은 환자들의 가검물을 모인다는 바로 그곳, 살짝 등골이 시려왔다.

‘원장’이, 그것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연구원을 두고 한치의 꺼리김도 없이 ‘위험지대’라니…, 아무리 농(弄氣)섞인 너스레라고 하지만, ‘행여, 발걸음을 잘 못했나!’ 속 모르는 이들에게는 지레 조바심이 생길 법한 일이었다.

그의 인삿말은 자신감의 역설이었다.

‘자, 네 용껏 공격해 봐라, 내 얼마든지 막아줄테니.’ 흡사 공력이 쌓인 골키퍼의 기운었다. ‘약학박사 출신의 역대 최장기 원장이어서일까.’

호기로 비쳐지는 그의 내공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 궁금했다.

- 무얼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가

▲ 괜히 거드럭대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보유 장비와 인원, 실적이 말해준다. 지난달 15일 신종플루 첫 사망자가 발생한 뒤 각 보건소에서 의뢰한 검사가 하루 평균 170건이었다. 검사원 14명이 교대로 장비 2대를 돌렸다. 아무리 늦어도 6시간 만에 감염여부를 가려내고, 의심환자들에게 그 결과를 휴대폰 메시지로 알렸다. 괜히 3년 연속 전염병 최우수기관 뽑힌 게 아니다.

- 하루 몇 건까지 검사할 수 있나

▲ 지금의 장비와 인력을 감안하면 최대 500건까지 검사가 가능하다. 바이러스나 전염병 표본검사만큼은 전국의 16군데 연구원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9월 말까지 신종플루를 검사장비 2대(대당 7천만원선)를 더 들여온다. 훈련받은 예비 검사인력 14명을 현장에 투입할 경우 하루 1천 건도 검사할 수 있다.

- 병원서도 신종플루를 처방하면서 의뢰건수가 줄지 않았나

▲ 최근 하루평균 의뢰건수는 20건 정도다. 종전에 비하면 상당히 감소했다.

- 장비와 인력이 한참 남아도는 것 아닌가

▲ 보건대책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야 한다. 당장 필요 없다고 해서 투자를 미뤄서는 안될 일이다. 신종질병뿐만 아니라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질병도 있다. 또 기후온난화에 따른 해수온도 상승으로 비브리오패혈증처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병도 있다. 예전에는 모기가 매개체인 질병은 말라리아나 일본뇌염이 다였다 아시피했으나 요즘에는 아프리카 모기가 전파하는 뎅기열도 있다.

- 원장이 보는 최악은

▲ 10월 중순쯤이 고비다. 신종플루는 이미 지역사회 감염으로 양상이 변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개학한 학교에서도 퍼질 만큼 퍼졌을 때다.

- 신종플루의 대응책이 예방에서 치료 중심으로 전환됐는데

▲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치료만으로 신종플루를 잡는데는 한계가 있다. 신종플루가 어디로 뛸지는 꾸준한 검사를 통해서 예측할수 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예기치 못한 변종 바이러스가 생겼다고 하자. 지금의 항바이러스제로 치료가 가능한가? 또 지금 체계에서는 확진이 아닌 의심환자도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타미플루 투여가 가능하다. 이는 멀쩡한 사람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도 가져오지만 바이러스를 보다 강하게 키우는 통로로도 작동할 수 있다. 검사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난 7월1일부터 식품과 의약품 검사권이 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보건환경연구원으로 넘어왔다. 인천을 뺀 전국 보건환경연구원들은 검사권을 받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검사인력을 연구원 당 1명씩 주고 무슨 검사를 하라는 것이냐며 따졌다.

김 원장은 달랐다. 밤을 새서라도 1년에 식품 3천건, 의약품은 300건을 검사하겠노라며 ‘검사권을 넘기라’고 맞받아쳤다. 지금은 ‘받자’며 다른 시·도의 원장들을 설득 중이다.

우리 시민들이 먹는 식약품을 남의 손에 맡길수 없다는 것이다. 25년 전 돈 많이 주는 제약회사의 연구원직을 집어치고, 지금의 연구원의 약품분석과장으로 인천에 내려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인천서 14대째를 살아온 토박이의 자존심일까.

- 전국 유일의 약사출신 원장인데, 연구원과 인연은

▲1984년 연구원에 약품분석과가 처음 생겼다. 과장직이라 내심 마음에 두고 있는 연구원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약에 대해 꿰뚫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는 약사 선배가 자리가 났으니 인천에 내려와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귀띔이 있었다. 며칠을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인천’이었다. 내무부 면집을 거쳐 특채로 연구원에 들어왔다.

- 제약회사가 더 나았을 텐데, 집안 반대는 없었나

▲ 그때 연구원 과장의 월급이 12만원이었다. 제약회사 연구소에서는 일할 때는 그보다 5배 이상을 받았다. 연구소 동료들은 왜 공무원을 하려느냐며 사표 제출을 말리기도 했다. 큰 힘은 아내의 조언이었다. ‘돈은 내가 벌테니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아내가 거들었다. 아내가 피아노 학원 레슨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어 큰 고민 없이 연구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 후회는 없나

▲ 인천시상수도사업본부 수질검사소장으로 일할 때였다. 그때만해도 부평사람들은 수돗물로 가양취수장 물을 정화해 먹고 있었다. 오염된 가양취수장 물은 거품이 일 정도이었다. 이 물을 수돗물로 써서는 안된다고 우기고 설득했다. 결국 원수를 깨끗한 팔당물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공무원은 시민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 보람이 후회에 밀릴 수는 없다.

- 검사권을 이양에 목매는 이유는

▲ 이양이 아니라 환원이다. 식약청이 생기기전인 1994년까지 연구원에서 검사했었다. 자존심 문제다. 식약청도 정원 1명으로 그 많은 식약품을 검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연구원서 검사권을 안받을 때 식약청이 나올 태도는 뻔하다. ‘그것 봐라, 준다고 해도 못 받는 것이 지방 연구원의 현실 아닌가?’ 일이 힘들다고 받지않는다면 식약품에 대한 연구원의 독자적 영역구축은 더욱 멀어진다.

김 원장은 스스로를 진정한 인천인으로 자부한다. 인천서 태어나고, 인천서 먹고 살아서가 아니다. 인천을 위해 할일은 해야 한다는 심지가 있어서다. 그는 단지 연구원장이 아니라 인천 위해 행동하는 ‘약사’이고 싶다.

-2006년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활동 평가에 참여했는데

▲ 원장직을 11년8개월을 맡아오면서 느낀 점은 참여의 폭을 넓힌 공유이었다. 환경단체는 하천을 대상으로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평가지표는 다르지만 연구원도 하고 있는 일이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모으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지표가 아니라 소통이다.

-서로의 얘기할 수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있나

▲보건 쪽은 아직 없다. 환경 쪽은 인천발전연구원이 조경두 박사나 미세기상학을 하는 인하대 조석연 교수 정도다.

-보건은 왜 안되나

▲연구원이 관여할 틈이 별로 없다. 학교의 실내공기질만해도 그렇다. 지하상가 공기질은 연구원이 하지만, 학교 공기질은 학교에서 한다. 학교에서 식중독 사고가 나도 식자재 검사는 연구원이 하지만 근본 처방인 식자재 납품업체의 조사권은 연구원에 없다. 학교와 학부모, 인천시, 보건소, 연구원, 식자재 납품업체까지 머리를 맞대고 식중독 예방책을 논의해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 연구원이 실무기관이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시 국장급인 원장은 정책부서로 못 가나

▲경남에서는 원장이 도 여성보건국장으로 간 적이 있다. 기회가 되면 실무가 아닌 정책부서에서도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 연구원에서 특별히 힘 써서 하는 연구는 있나

▲연구 중인데 갯벌에서 나는 칠면초 등 염생식물의 약리연구다. 미국 일리노이드대는 염생식물로 바이오디젤 추출해내는 연구를 했다.

칠면초에서 약 원료를 추출해낼 수만 있다면 관념적인 갯벌보호의 외침에서 벗어나 확실한 실용적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또다른 분야는 물 환경이다. 지하수를 포함해 인천의 수자원기본관리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물 환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지구온난화와 따른 물에 대한 국제적인 동향 학술적 이론에서가 아니다.

물 같은 사람으로 지역에 남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물이 생명을 만들 듯 지역의 희망을 가꾸고, 위에 머물기보다는 항상 밑을 향하는 물 같은 사람이다.

대담=양순열 사회부장 정리=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사진= 김성중기자 jung@i-today.co.kr기자

김용희회장은
- 1955년 인천출생

학 력

- 1966년 숭의초등 졸업

- 1970년 인천중 졸업

- 1973년 제물포고 졸업

- 1977년 성균관대 약학과 졸업

- 1982~84 태평양제약 중앙연구소

경 력

- 1984년 인천시보건환경연구소 약품분석과장

- 1986년 인천시보건환경연구원 미생물과장

- 1990년 인천시보건환경연구원 보건연구부장

- 1991년 성균관대 약학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 1991~98년 인천시상수도사업본부 수질검사소장

- 1998~현재 인천시보건환경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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