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눈으로 조건없이 기다려라, 그러면 삐뚤어졌던 청소년들도 반드시 바로 설수 있다’ 올해 초 취임한 이형재(48) 인천보호관찰소장이 19년 간 현장에서 느꼈던 값진 경험이다.

이 소장이 보호관찰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던 지난 1982년 ‘대학생보호위원제도’에 참여해 소년원을 조기 퇴소한 청소년들과 대학생 멘토를 시작하면서부터다.

3년 간의 대학생보호위원 생활은 이 소장의 꿈을 바꿔 놓았다. 그는 제1회 보호관찰직이 신설됐던 지난 1990년 행정고시(제34회)를 통해 대학생 시절 꿈꿔왔던 보호관찰직에 지원했고, 100대 1이란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이 소장은 “보호관찰은 사회와 단절시키는 구금과는 달리 사회구성원들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점을 뉘우치고 바른 길로 접어들게 하는 지역 기관들과 지역 사회의 결합체”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와 연계된 보호관찰의 필요성에 대해 이 소장은 보호관찰소의 직원들이 순환보직 때문에 지역사회와 끈끈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없는 점을 아쉬워했다. 또 그는 인천지역이 다른 6개 광역시·도 중 이혼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고 지적하며 이혼율이 가장 높은 도시 역시 소년범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20일 현재 60여명의 보호관찰소 직원들이 모두 4천409명의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다”며 “이 중 55.2%인 2천391명에 달하는 소년 중 학생이 55%인 1천291명으로 전국 평균 35%보다 20%가량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45%인 1천100명의 청소년에게도 대안교육 활성화 등을 통해 고교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진정한 사회의 일원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청소년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부산보호관찰소 근무시절 만났던 이모(당시 고등학교 2)군 때문이었다.

부모가 어릴 때 이혼하고 할머니 밑에서 말썽없이 착하게 자랐던 이군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억눌렸던 분노를 친구들과 사회를 향해 폭력으로 표출하다가 법의 심판대에 섰다.

이군은 소년원을 가기 전 이 소장을 만났고, 이 소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보호위원과 담임교사를 설득해 이군을 소년원이 아닌 보호관찰로 이끌었다. 지금 이군은 수산연구소 연구원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소장은 “사회봉사명령 등 보호관찰 대상자가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남에게 감사하고 사회복지시설 등의 후원자가 돼 있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영근기자 syyk0808@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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