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인천시의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계획(안)이 현재 주민 공람 중(8월 24일∼9월7일)에 있다. 내용인즉 ‘배다리를 가꾸는 시민모임’의 오랜 저항의지를 무색케 하는 개발논리에 다름 아니다. 기존 도시동네의 컨텍스트를 갈아엎는 계획안은 그 지역에서 살아 온 주민들 간의 갈등구조를 표면화시키며, 직전의 배다리 발 문화선언을 무력화시키는 고도의 개발전략으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음이다. 배다리산업도로의 전면 백지화와 차선으로 3구간의 지하화를 주장하며, 구체적 대안으로 배다리에코뮤지엄과 배다리문화특구 지정을 주장해온 주민들로선 경악을 금치 못할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달걀로 바위치기, 그 짝 이예요.” 스페이스 빔 디렉터 민운기 씨는 애써 분통을 삭힌 채 인천시의 개발독주를 막을 방도를 궁리하는 듯했다. 시의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계획안이 주민들 간의 이해득실 면에서 입장들이 갈리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그가 내뱉은 말은 자조를 넘어, 이제까지의 문화적 기반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무게감으로 느껴졌다. 그와 친구들이 운영해오고 있는 스페이스 빔이 ‘도시유목’ 탐사프로젝트를 계기로 배다리산업도로의 실상을 세상에 폭로하면서, 급기야 그들의 전진기지였던 구월동 시대를 접고 창영동 7번지 옛 인천양조장 건물을 수리하여 이전해온 이래, 수많은 시선이 이 동네의 가치를 재조명하는데 바쳐졌다. 어제까지의 노후된 불량건물이 하루아침에 지역문화의 발신기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사실을 알기에 어느 순간 배다리를 기억하는 ‘끝물 세대’에 위치한 그의 언설이 마냥 남의 얘기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세상의 개발논리와 무관하게 우각로는 새로운 세대의 우각로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각로(牛角路). 인천에 남아 있는 역사적 향기가 물씬 배어 있는 옛길이다. 길의 형상이 마치 소의 굽은 뿔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오래된 이름으로, 쇠뿔고개(우각현)에서 연유한다. 현재의 도원역에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이르는 굽은 길이다. 그 길 위에 서면 그 말의 어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길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 길은 선형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지층의 담지체이다. 그래서 길은 시간과 함께 공간의 연륜을 담아내고, 그 길 위에 사람들과 함께 문화적 충위를 입체화 한다. 그런 면에서 길은 공간과 시간과 건축의 복합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 일찍이 도시계획가들에 의해 그어진 도시의 격자형 가로와 달리 그 곳 사람들의 자연적인 동선에 의해 만들어진 구부러진 길은 자연지형에 순응한 길이자, 가장 인간적인 길이다.

“옛길 위에 삶과 집이 포개져 있었다. 산속에 사는 이들에게 길은 그들의 삶을 결정짓는 운명이었다. 산에서 나아가는 길이며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던 옛길은 화전민들이 지닌 억척스러움만으로 끝나지 않는 속 깊은 정서와 저항을 품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등함을 드러내는 훌륭한 증거이기도 하다.”(안치운, <옛길> 학고재, 1999)

옛길을 미래에 남긴다는 말은 그 길과 함께 엮인 인간의 터무늬를 중시하는 태도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길은 단지 지도 위에 그어놓은 한 줄의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번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계획안에 보여주고 있는 창영동 7번지 일대 우각로에 대한 계획가들의 생각은 길이 갖는 본연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 우각로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방기하고 있음은 물론 그 길과 함께 자라온 도시의 풍경을 짓밟는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우각로에는 여러 갈래의 작은 골목길들이 붙어 있다. 골목 안 풍경은 낡고 허름하다 못해 불량하다. 그럼에도 단층 주택들과 저층의 다세대주택들, 그리고 도로주변의 중·저층 빌딩이 이루고 있는 낮은 공제선은 인상적이다. 그것이 이 동네의 특징이다. 반면 창영초교, 영화정보고, 창영교회 등이 이루는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군이 앞의 것들과 대척점에 있지만 이들 또한 우각로의 한 시절을 증거하는 표정들이다. 이 같은 부조화의 동네 풍경은 계획가들에게 개발본능을 자극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 본능 앞에서 이 동네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부각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옛길이 변형된다는 것은 이 동네의 오랜 정서와 저항의지를 송두리째 말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시개발이전에 계획가들이 진중하게 살펴야 할 것은 옛길의 존재가치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간과될 때에 현재의 배다리산업도로 건설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공간적 살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존의 도시동네 컨텍스트를 유지하면서 점층적으로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이 강구될 수 있어야 한다. 그로써 주민들이 자기 고장을 지킴과 동시에 기품 있는 생활공간에서 멋진 장소의 기억을 후대에 전하는 전령이 되게끔 해야 한다.

다시 옛길을 돌아볼 시점이다. 그것이 맺고 있는 옛날 지형과 공간의 가치를 음유하며 오래도록 간직할 옛 동네의 자취를 보전할 일이다. 이미 지나온 시간동안 무분별한 동네의 개발이 배다리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옛길과 맞닿아 있는 역사문화마을로의 전이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방법적으로는 크고 빠른 도시개발이 아니라, 작고 느린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배다리 지역의 특수성을 살린 고유한 재생사업이 이루어질 때라야 만이 인천시가 열망하는 타지역 타도시의 귀감이 되는 사례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전진삼(건축비평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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