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5주기, 할리우드 비로서 영화를 만들다
'
플라이트93'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 '루스 체인지'까지

이제 곧 9.11이다.

사건이 터진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엔 엄청난 일들이 벌어져 왔다.

그리고 그 엄청난 일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9.11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있어 엄청난 정신적 트라우마다.

이 사건은 향후 50년 이상 우리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할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그 정신적 상처와 후유증은 아마 더할 것이다.

그건 아마도 과거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침공과 맞먹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진주만 이 침공당한 사건은 50여년이 흐른 후에도 '진주만'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9.11도 그럴 것이다.

수십년이 흐른 뒤에도 미국인들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되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9.11을 전후해 이 사건의 전후맥락,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여러 일들을 담은 영화들이 개봉된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은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의 '플라이트93'과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다.

두 작품 모두 당시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우리에게 던진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할 것이다.

9.11과 관련된 영화 세편을 소개한다.

▶ 플라이트93 = '블러디 선데이'와 '본 슈프리머시'를 만든 영국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의 작품이다.

9.11 테러 당시에는 총 4대의 비행기가 충돌, 추락했다.

2대는 무역빌딩에 충돌했고, 1대는 펜타곤을 강타했다.

그런데 또 1대는 엉뚱하게도 펜실베니아의 어느 평야 지대에 그냥 추락하고 말았다.

이 나머지 1대는 왜 그랬을까.

기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부분. 당시 이 비행기가 추락하기 직전까지의 여러 상황을 종합하고 또 관제탑 등등에 녹음된 송수신 내역, 기내에서의 통화내역 등등을 면밀히 추적한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은 이 비행기가 이륙하고 추락하기까지의 모든 일들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내는데 성공했다.

플라이트93, 보다 정확한 이름인 유나이티드93 항공기 역시 이날 테러범들에 의해 공중납치됐으나 무역센터로 향하는 도중, 승무원과 탑승객들에 의해 일어난 일종의 '기내 반란'에 의해 더 이상의 인명살상을 막고 사람이 없는 펜실베니아 평원에 떨어질 수 있었던 것.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은 그 과정을 일체의 감정적 치우침없이, 마치 뉴스 다큐멘터리를 찍어 이어붙이듯 그려냄으로써 9.11 자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결국 왜 이 비행기만 펜실베니아에 떨어지게 된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감독의 궁극적인 질문은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만 했느냐는 것에 있다.

▶ 월드 트레이드 센터 = '알렉산더'로 명성에 빛이 바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회심의 역작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미 개봉돼 있으며 평단으로부터 역시 '올리버 스톤은 정치적 영화에 있어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비행기의 충돌 이후 무역센터가 붕괴되기 직전, 용감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인명을 구하려 했던 두명의 경찰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수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결코 이 두명의 경찰을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비극적인 상황을 구원하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는 인간주의와 또 그럼으로써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희망에 대한 얘기다.

이 두명의 경관은 사람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붕괴하는 건물 잔해에 파묻히게 되고 이후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두명의 경관은 모두 실존하는 인물들이다.

뉴스위크의 영화평론가 데이빗 얀센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눈으로 사태를 바라보려는 욕구다. 보수파나 진보파 모두 기꺼이 이 영화를 포용해야 마땅하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2시간 9분 동안은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무의미해진다."

▶ 루스 체인지 = 세계적인 검색 사이트 구글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다큐켄터리. 극장이나 DVD 등 일반 유통 경로를 밟지 않고 철저하게 네티즌들의 입소문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 22살 약관의 다큐멘터리스트 딜런 에이버리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9.11을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철저한 계획하게 저지른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는, 일종의 음모이론 다큐멘터리다.

문제는 에이버리가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너무나 그럴 듯 하다는 것. 예컨대 펜타곤에 충돌한 '어떤 비행물체'에 대해 에이버리는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증언을 빌어 일반 여객기와 달리 충돌한 비행기의 기체 측면에 창문이 전혀 없었고, 비행기 연료가 타는 냄새가 아니라 화약냄새가 진동했음을 주장한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당시의 충돌과정을 재현하면서는 펜타곤 건물에 생긴 둥근 구멍 모양의 파괴 흔적은 비행기 기체모양과 일치하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지 혹은 거짓을 얘기하고 있는지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9.11 테러에 대한 모든 이야기와 주장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 다큐가 거두고 있는 가장 큰 성과라는 것. 이 영화가, 비록 비주류의 유통방식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