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자연, 물질성과 생명성의 조우>

인천의 미술가들-11.강혁

강혁은 90년대 매체환경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수용한 신세대 작가다.

물론 그는 학창시절 평면은 물론 입체, 영상, 설치, 사진 등 시각예술 전반에 대하여 시행착오를 수반한 기본적 기술과 개념습득의 과정을 겪었고, 이는 그가 졸업직후 몇몇의 중요한 기획전과 공모전에서 세속적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가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표현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매체적 수단으로 삼은 것이 캠코더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이미 대학 졸업 작품으로 몇 편의 싱글채널 영상작업을 출품함으로써 향후 자신의 거취를 천명한 바 있고 이후 지속적으로 영상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영상작가들이 이미지를 선택하고 전개시킨다는 점에서 영화의 카메라감독과 유사하나 스토리의 전개방식에서는 그들과 필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상작가들은 본질적으로 연출보다는 정지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데 익숙한 ‘미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들은 미술가 특유의 미적 감성으로 선택한 이미지를 추상화 또는 단편화시킴으로써 의미를 모호하게 하거나, 설치 또는 조각적 형식으로 작품을 전개시킴으로써 영상을 미술의 영역 안으로 확고히 정착시키고자 노력한다.

강혁의 영상작업은 촬영과 편집을 통하여 시적이고 환상적인 영상미를 창조하는 ‘이미지 작업’과 기존 이미지를 합성, 변형시키거나 기계적인 방법을 통해 순수전자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프로세싱 작업’이었다.

그러나 시간예술과 공간예술, 기록적 다큐멘터리와 표현적 전자이미지 사이를 종횡하는 그의 영상작업은 이미지의 장악과 발산으로만 완결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영상설치 형식으로 선보이는 ‘붉은 징후’나 ‘가지다 또는 먹다’ 등은 기계, 인간, 문명을 실험하는 환경실험이자, 인간의 지각방식에 시비를 거는 영상 실험으로써 환경적 매체공간의 창출과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염두에 둔 기록물이다.

그런데 이 작업은 선택, 왜곡, 제시라는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통하여 그로테스크하면서 쉼 없이 유동하는 전자이미지, 단속적 움직임이 생성시키는 해체적 도상, 그리고 뇌파를 자극하는 색채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속성을 함유한다.

결국 작가는 싱글영상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다면적 복제이미지를 통해 이러한 본성에 의해 야기되어지는 사회적 제반현상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미지들은 욕망으로 점철된 피폐한 인간상과 이에 대한 치유로 존재할 수 있는 자연성에 대한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는 설명적이거나 내러티브적인 요소를 배제하면서도 이미지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작가적 기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그가 매체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영상작업을 하면서 과도한 필터링이나 화면전환기법을 피하고, 단지 컷편집이나 중간중간 영상을 연결할 수 있도록 오버랩을 해주는 정도를 즐긴다.

이는 예술가에게 있어 중요한 덕목이라 여겨진다. 미술사를 보더라도 예술가의 과도한 표현적 욕구와 기량의 과시가 작품을 상품으로 전락시킨 예를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경모 미술평론가·인천대학교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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