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땅의 복원…풀벌레들도 기웃

배다리 산업도로 갈등이 극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고 지난 달 하순, 지역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내용인즉 시와 배다리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난 자리에서 시는 6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축소하는 안과 주차장을 만들어 달라는 대책위의 요구를 적극 검토키로 약속하고, 근대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 박물관 마을(에코뮤지엄)을 조성키로 하여 동인천역 주변 도시재생사업에 반영키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는 대책위의 의견을 수용하여 차량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대형 화물차의 통행을 제한하는 한편 배다리 인근 누리아파트 옆 터널연장(70m) 부지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기로 결정했다고 전한다.



보도내용만 보아서는 공사의 경계가 모호할뿐더러 공사규모만 축소되었지 시정부의 개발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속을 들여다보면 2003년 5월 완공된 송현터널이 산업도로건설 재개의 타당성을 변호하는 강력한 개발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눈치가 역력하다. 이전까지의 배다리 주민들의 산업도로 전면 무효화 주장은 터널의 완공 이후 무색해졌다. 자칫 시민의 혈세로 공사한 도시 인프라의 사용을 지역이기주의의 발로로 가로막는 무모함으로 비칠 정도다. 시가 파놓은 구간별 공사의 타당성 확보 함정에 주민들이 빠져버린 격이다. 그 결과 차선책으로 주민들이 내놓았던 산업도로의 전면 지하화 요구와 파헤쳐진 땅의 복원 프로그램 등에 대한 논의는 뒤로 물린 채 박물관 마을의 조성(그것이 정체불명의 ‘에코뮤지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아스럽지만), 어린이도서관 건립 등을 제시하며 도로개통의 반대급부로서 아이템 교환식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하는 시의 의도가 강하게 읽힌다.

더욱이 앞서 보도내용에서의 ‘극적 해결’의 방안이라는 것이 시 내부의 일개 관계부서인 도로과 차원에서의 일방적인 주민회유책에 불과할 수 있어 (인천 근대)박물관 마을 등의 구상이 실질적인 도시재생사업에의 반영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것이 지적되고 있는 형편이다. 사전 시 관련부서 간의 조율이 있었는지 조차 의문되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산업도로 갈등의 극적해결이 아닌 국면타개용 미봉책에 지역 언론이 호들갑을 떤 형국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황이 이러하니 배다리역사문화마을로 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구도심 한복판에 존재하는 이 오래된 마을의 가치가 소수의 지역민들의 향수와 기억에 의존한 채 퇴락한 마을의 풍경으로 전전하는 동안 지역 내 ‘특이장소, 배다리’가 지닌 공간문화적 자산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소관 공무원의 기안과 해당부서 심의위원회의 합작으로 지도 위에 그어놓은 산업도로의 굵은 선은 그것의 부당함을 주장해온 주민들의 ‘부드럽거나 강한’ 민원 앞에서 어느 한순간도 과감하게 지우겠다는 용단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보다는 위협과 회유의 방책을 오가며 주민들의 기세가 스스로 꺾이기를 바라는 수순을 밟아왔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 사이 도로건설의 현장 책임자도 수시로 바뀌었고, 인천시장은 그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의 ‘멈춤 혹은 정지’를 상징하는 실패한 사건으로 남을까보아 노심초사하는 지 최근에는 배다리사태를 외면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3구간(유동삼거리∼송림로)에 걸쳐 있는 배다리에코파크의 개장은 상징적이다. 주민들의 도로건설저지와 그에 따른 공사중지 기간 중에 이미 파헤쳐진 붉은 대지에서 자연은 스스로 벌거벗긴 땅의 치유와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버려진 땅에 각종 식물이 자라나고 벌레들도 기웃거린다. 이를 지켜 본 지역주민들이 모여서 자연공간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여 이곳에 ‘배다리에코파크’라는 이름의, 원시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8년 2월, 시는 고가차도 구간인 1구간(송현터널∼동국제강)의 소음 및 분진 발생을 최소화하도록 터널형 방음벽을 설치하는 것으로 공사방식을 변경했고, 송림로∼유동삼거리간 3구간은 일부 구간을 복개형 터널(길이 70m)로 시공하고 그 위에 녹지대를 조성해 사람들이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산업도로 개통 시 기존의 도로(우각로)가 단절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주민들의 우회 등 불편을 최소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 같은 방침은 2007년 8월 안상수 시장이 먼지·소음 발생 등 환경 피해, 대규모 도로 건설에 따른 지역 간 단절, 헌책방 거리 등 배다리 지역의 역사·문화적 컨텍스트의 파괴 등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3구간의 공사는 잠정 중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고가차도의 공사는 송현터널의 존재를 의식해 원안대로 추진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술했지만 구간별, 단계별로 민원을 극복해나가는 시의 교묘한 술책이 주민들의 판단을 흐려놓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잠정 중단’ 결정했다고 하는 3구간의 차례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지역주민 이성진 선생의 말을 곱씹어보자. “근대 인천 개항장이 일제가 필요에 의해 만든 이식공간이라면 배다리는 그 혹독한 시절 날품을 팔아가며 부두노동과 잡일을 하던 조선인들의 땀과 눈물, 삶이 녹아있는 자생적 공간”이다. “인천근대교육의 시원지(영화학교, 인명학교, 창영학교), 인천 3·1만세 운동의 시발지(창영학교), 한국기독교신학의 시원지(신학월보 및 신학회), 한국철도의 시발지(우각리역)”인 이곳에서 인천근대의 옛 마을과 옛 길에 담겨 있는 역사문화의 마지막 유산을 지켜내는 것은 “주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시와의 협상에 임하는 주민대책위가 놓쳐서는 안 되는 판단의 기준이 이 선생의 주장 속에서 엿보인다. 잠정 중단되었다는 3구간의 공사계획 백지화 주장의 의의는 향후 이 마을이 궁구해야 할 주제인 ‘인천근대 한국인의 삶의 터무늬’를 확보하는 것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옛 마을의 경계와 건축의 겉과 속과 옛 길의 보존이 동시에 추구되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에 다름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천근대 (한국인의) 역사문화의 심장”의 가치를 ‘지키고 가꾸는’ 일은 굽힘없이 지속되어야 한다.(본문사진: 스페이스 빔 제공) <계속>

전진삼(건축비평가,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