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거주지에 ‘희망의 보금자리’

배다리지역 주민들의 ‘2009 희망메시지’를 듣는다. 그들은 지역의 현안인 산업도로 건설의 백지화를 위해 온몸을 불살라온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는 자리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반대로 시민모임의 성격을 격상시키기로 한 것이다.




시정부는 여전히 도로건설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수년 새 배다리의 원주민들도 많은 이탈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100년 도시동네’의 위상이 자못 위태롭게 느껴지는 반 토막 난 마을의 을씨년스런 풍광을 견뎌낸다는 것의 무모함에 진저리가 쳐졌을 것임이 빤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이 시대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올라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어떠한 합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개발광풍의 가장자리에서 신음하는 소시민들의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와 맞서 싸우는 그들의 ‘바보 같은’ 용기만이 존재할 뿐이다.

게다가 전체 지역 사회는 그들이 내민 손을 덥썩 잡아주고 있는 형국도 아니다. 남의 집 불보듯, 아니 이제는 그나마 불구경도 흥미를 잃었다. 이유는 있다. 지역 내 어딘들 개발지상주의의 도시패러다임에 휩쓸리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 내집 불 끄는 것만도 손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인천은 대규모의 인구 이동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주민 갈아끼우기 식의 새로운 사회지도는 물론이고, 수십 년간 도시를 꿰어왔던 문화지형들은 가치판단과 무관하게 일제히 소거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음이다. 이같은 현재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의 구상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에 걱정이 앞선다. 주민들의 집단의사가 단지 시대의 기록을 위한 단순행동이 아닐진대, 방법을 찾아야한다. ‘바보처럼 함께 살기를 궁구하는 전문가’들이 이 큰 도시 안에 하나둘 쯤 없으랴.

미국 앨라배마주 헤일지역에서 지역 소재 대학의 건축수업을 현장의 스튜디오(작업공방) 형식으로 진행해오며 마을의 건축적 제안을 도맡았던 루럴스튜디오 사무엘 막비(Samuel Mockbee) 교수의 이야기는 적어도 인천에 소재한 대학의 건축과 설계전공 교수들에겐 귀감이 될 만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미국 건축계는 사회운동으로서의 건축, 시민의 참여방식, 건축스타일의 문제를 되짚어보는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신(新)경제와 신기술로 무장한 유명 건축가들이 영향력 있는 건축주를 위해 초호화 건축물의 건립에 열을 올릴 때, 막비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박하고 혁신적인 건축에 대하여 고민에 빠져들었다. 1992년 막비 교수는 오번대학교(Auburn University) 건축학과 학생 12명과 함께 루럴스튜디오를 열게 된다. 처음엔 1년짜리 단기 프로그램을 위한 기획이었는데 이 스튜디오는 그때로부터 오늘날까지 15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1991년 막비는 오번대학교의 정교수로 임명된다. 당시 그의 임용을 주도한 루스 학장은 미국의 건축대학 교육이 이론에 치우쳐있으며, 이론상의 미학과 실제의 건축이 동떨어져 있다고 염려하고 있던 터라 그의 현장수업 방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에 이른다. 다행히도 당시 오번대학교에는 실제 규모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강의가 개설되어 있었다.

막비 교수는 현장수업의 의의를 미국 내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찾았다. 그 결과 학교와 240㎞나 떨어진, 노인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헤일지역(이곳은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빈곤층 흑인의 집단거주지 바로 그 현장이다)에 스튜디오를 차린다. 그리고 대학의 2학년부터 5학년생에 이르는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작은 방갈로를 숙소이자 작업실 삼아 작업에 임하게 된다.

희망이 사라져가던 헤일지역에서의 루럴스튜디오는 철로조각과 오래된 벽돌, 기증받은 목재, 건초더미, 폐종이박스, 골판지, 쓰고 버린 타이어, 자동차 번호판, 도로표지판 등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적극 활용한 기발한 생각의 건축물들을 하나둘 완성시켜나갔다. 중간중간 학생들은 시의회 회의에도 참여하고, 헤일지역발전협의회 구성원들도 만나면서 ‘가난의 냄새와 맛’을 현장체험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그 지역의 현안인 빈곤층의 인생에 대해서 이해하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교실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산교육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막비 교수는 건축가 이전에 현실세계와 끊임없이 부딪히는 현장의 운동가며, 후원자를 찾아다니는 분주한 영업이사며, 낯설고 새로운 재료를 통하여 학생들의 실험정신을 이끌어주는 교육자로서 역할을 넘나들었다. 동시에 스튜디오의 대외 홍보를 위해 기꺼이 TV 카메라 앞에 설 줄도 알았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산타클로스 콤플렉스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루럴스튜디오의 수업은 주당 15시간으로 짜여졌다. 학생들은 주로 주택설계와 시공에 직접 참여하는데 이 수업을 통해 건축의 사회적·윤리적 책임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제공받았다. 때때로 이들이 시공한 건물에 채택된 건축 재료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성을 갖기도 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커뮤니티센터의 외벽과 지붕의 유리판은 한 학생이 시카고 어느 폐차장에서 개최하는 노래자랑에 참가해서 상품으로 받은 자동차 방풍유리 80개를 이어서 만든 것이다.

(이상의 Rural Studio 관련기사는 안드레아 오펜하이머 딘의 원전을 번역한 ‘행복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2005, 공간사 발행도서에서 발췌 인용한 것임)

막비교수는 57세 되던 2001년 12월 백혈병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건축에서의 소중한 일을 해낸 그였지만 생전에는 주목되지 못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2004년 미국건축가협회가 수여하는 골드메달을 받으면서 뒤늦게 업적을 인정받는다.

물론 미국 내 많은 건축대학들의 커리큘럼이 루럴스튜디오와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타적인 분위기가 많이 읽힌다. 막비 교수는 그것을 두고 제도권의 대학들이 위험을 감수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적시한 바 있다.

배다리역사문화마을 구상을 위한 ‘건축제안’의 첫 번째 미션은 어떻게 인천 지역 내 건축학과 설계교수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들이 요지부동하다면 서울과 수원, 또는 대전, 충남권역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협력자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가 될 터이다. (본문 사진출처-앞의 책) <계속> 전진삼(건축비평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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