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1인 다역과 느닷없는 등장 인물들의 독백들로 영화의 관습은 깡그리 무시한다.
영화는 내내 만화적 상상력으로 채색돼 있다.
대중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지점을 목표로 함으로써 흥행 여부에 큰 관심이 모아졌던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가 예상과 달리 극장가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주 개봉된 이 영화는 상영 첫주 전국 35만 관객을 모으며 조용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전국 천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는 ‘괴물’의 돌풍을 고려하면 크게 선전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 ‘정사’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정갈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영화로 정평이 나있는 이재용 감독은 이번 영화로 자신이 다른 무늬와 결을 함께 지니고 있는 작가라는 점을 입증했다.
개봉 직후 이재용 감독을 만났다.
-이 영화는 원래 인터넷 만화가 원작이다.
▲원래는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만화를 봤을 때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는 강박관념이 없어서 좋았다.
영화속 캐릭터인 ‘가난 소녀’는 가난해서 원조교제를 하지만 그렇다고 불쌍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또 다른 인물인 ‘입양아’ 역시 불쌍해야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 없다.
만화 같은 캐릭터 ‘외눈박이’의 경우 괴물은 악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일종의 해방감같은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문제는 그런 원작의 느낌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살리느냐였을 것이다.
▲만화의 느낌을 영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강박관념, 바로 그 것으로부터 먼저 벗어나길 바랬다.
만화를 영화화하는 절차와 과정 등이 중요치 않은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쓸 때는 오히려 매우 즐거웠다.
무의식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막 적어 나갔으니까. 처음에는 영화 형식을 아예 틀어버리려고 생각했다.
갑자기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다 말고 감독에게 말을 건다든지, 붐 마이크가 카메라에 잡힌다든지 하는 설정도 있었다.
한마디로 이런 식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묻는 질문이 많았으면 했다.
-성적 표현수위가 만만치 않다. SM이 오가는 사제지간, 복장도착, 트랜스 젠더 등등.
▲물론 그렇긴 하지만, 오히려 노골적이지 않다.
나는 민망한 소재들을 민망하지 않고 또 즐겁게 보기를 원했다.
만화자체도 ‘19금’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농담이다. 내 영화도 그런 부분을 농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영화속 배경인 ‘무쓸모 고등학교’의 공간은 사회적으로 확장된다. 영화 곳곳에 그렇게 다층적 의미를 심어놓았다.
▲영화가 다층적, 다의적 의미를 갖는 것은 내 영화 스타일 중 하나다.
농담 같은 진담들을 매설해 영화가 풍성한 의미를 내포하기를 바랬다.
그런 면에서는 다세포 소녀는 사회부적응자를 통해 획일화된 사회의 모습을 은유하고 풍자하는 작품이다.”
오동진 영화전문기자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