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임말을 많이 쓰는 요즘 ‘키코’라는 단어를 보면 ‘키가 크고 코가 큰 사람’을 줄여서 쓴 말로 오해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키코에 큰코 다친 기업들’이란 신문 기사 표제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미국으로부터 불어 닥친 세계 금융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지난해 말부터 올해도 계속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경제 용어다.

‘키코(KIKO)’는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줄여 쓴 경제 용어로 환율 변동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 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파생 금융 상품이다. 이것은 통화 선택 거래의 한 방식으로 환율이 아래, 위로 일정한 범위 내에 있을 경우 시장가보다 높은 지정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는 통화 상품이다. 또한 환율이 지정한 범위 아래로 내려가면 계약이 무효화되어 기업은 손실을 입지 않는다.

하지만 환율이 급등해 지정환율 상한선을 넘어가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보다 낮은 지정환율로 팔아야 돼 기업이 손실을 입게 된다. ‘키코’는 환율의 변동에 타격을 입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요즘처럼 환율이 급등하면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약정 금액 100만 달러를 1 달러당 약정 환율 1000원, 하한가 900원, 상한가 1100원으로 정하여 은행과 계약하였을 때, 환율이 970원으로 내려가더라도 약정 환율 1000원을 적용받아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상한가인 1100원 이하로 오르면 실제 환율로 팔아 이익을 얻게 된다. 이처럼 환율이 하한가와 상한가 사이에서만 변동한다면 환차손을 줄이고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환율이 하한가 이하로 내려가면 계약이 무효가 되어 환손실을 떠안아야 되고, 상한가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에는 더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보통 상한가 이상으로 오를 경우 약정금액의 2배 이상을 팔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 때문이다. 계약상 2배의 단서가 붙었을 경우, 약정액 100만 달러 외에 100만 달러를 오른 환율로 매입하여 은행에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율이 당사자 간에 계약한 하한가와 상한가 사이에서 변동한다면 기업에게 유리하고 안전한 상품이지만, 환율이 계약 상한가 이상의 오름세를 보이는 상황에선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 ‘키코’의 특성이다.

이러한 파생 금융상품인 키코가 달러의 오름세로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되니, 이에 대한 피해 소식을 전하거나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언론에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일간 신문이나 인터넷 경제 소식 표제만 보더라도 ‘제2 키코 사태 본격화 조짐(ㅁ일보 2009. 3. 2.)’, ‘키코ㆍ선물환 등 파생 상품도 신용공여에 포함’(ㅎ경제 2009. 3. 7.), ‘키코 소송 두 얼굴의 김앤장(ㅎ신문 2009. 3. 9.)’, ‘키코 악몽 털어내고 올 수주액>작년 매출(ㅈ일보 2009. 3. 12.)’, ‘키코 피해 성진지오텍, 産銀서 400억 지원 (ㅎ경제 2009. 3. 24.)’ 등 주로 키코 손실 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나 이를 극복한 사례의 기사들이 계속 보도되고 있다.

이제는 외국어의 줄임말 ‘키코’를 우리말로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차례다. ‘키코’라는 경제 용어에 대한 의미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지만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각종 신문에는 ‘통화 옵션 상품’, ‘환 헤지 상품’, ‘파생 금융 상품’ 등 ‘키코’ 앞에 수식어처럼 붙인 말들이 있지만 중간에 외국어가 섞여 있거나, ‘키코’에 좀 가깝게 느껴지긴 하지만 마음에 꼭 드는 말이 없다. ‘환 헤지 상품’에서 ‘헤지(hedge)’란 가격변동과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환율을 미리 고정시키는 거래 상품을 가리킨다.

‘키코’가 환율 변동에 따라 일정 범위의 약정 환율을 적용하는 파생상품이므로, 어느 신문에서 기사 내용 중에 쓴 ‘환율변동 파생상품’이라는 말을 권장하고 싶다. 대부분의 외래어가 그렇듯이 우리말로 옮길 때,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쓰기가 쉽지 않다.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환율변동 파생상품’이 ‘키코’에 대치할 우리말로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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