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초기단계이거나 아예 없는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현지인이 아니라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면 더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화교 사업가들은 그런 황무지와 다름 없는 곳에서 빠르게 자금을 조달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화교 사업가들이 고향도 아닌 낯선 땅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어떻게 자금을 조달했을까?

외국인의 처지로 자금을 구할 곳도 없었거니와 자금을 구하더라도 위험부담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화교들에게는 꽌시(關係)가 있었다. 화교 사업가들은 1차적으로 가족이나 친척들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고, 또 동향인이나 친구들을 통해서도 자금을 조달 할 수 있었다. 꽌시를 통한 빠른 자금 조달 동남아시아에서 화교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화교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금융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이렇게 꽌시를 통한 자금 조달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창업을 하는 소규모 기업들에게는 여전히 꽌시를 통한 자금 조달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타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화교 사업가들에게는 신속함과 안전함이 생명줄과도 같았을 것이다.

꽌시를 통한 자금 조달은 신속하기도 하고 위험부담도 없었지만 화교 기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꽌시에 의한 자금 조달 방식이 불가능하게 됐다. 큰 규모의 기업에게 필요한 거대한 자금을 융통하기에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자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교들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주로 은행과 금융회사를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은행의 경우에는 외국인에게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화교들이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금융회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전에는 아시아 금융시장이 미약했지만 지금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여 화교들이 금융회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화교들은 외부의 금융회사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본을 조달한다.

대부분의 대형 화교 기업은 자기업 금융회사를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다. 따라서 화교 기업이 성장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화교계 금융회사가 생기게 된다.

또 자기업 금융회사를 가지지 못한 기업은 사내 유보금을 활용하고 있다. 사내 유보금이란 회사가 이익을 낸 자금을 사용하지 않은 채 모아두는 돈을 말한다. 이렇게 화교 기업들은 소기업에서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자금을 융통하는데 있어서 외부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부에서 자체 해결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富 축적 지름길 부동산에 몰린다

유형(有形) 자산 선호

사람의 감각기관 중에서 가장 받아들이는 정보가 큰 기관은 바로 시각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즉 형태가 있는 것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화교의 이야기이다. 화교들이 재산을 모으는 데에는 이러한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화교들은 재산을 현금으로 축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금은 즉시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도 유형(有形)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금은 돈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하나의 형태로서 만들어 낸 것이다. 화교들은 대체로 형태가 있는 재산을 보유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화교들은 자산을 보유할 때 형태가 없는 무형(無形) 자산보다 형태가 있는 유형(有形) 자산을 선호한다. 유형 자산이란 유형 고정 자산과 같은 말로 고정 자산 가운데 구체적인 형태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토지, 건물, 차량, 공장, 기계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화교 기업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바로 부동산이다.

화교들이 부동산 개발에 모이는 이유는 대부분의 화교기업들이 하고 있는 중앙 집권적인 경영방식이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화교 기업가들이 부동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중앙집권적인 경영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유형 자산인 부동산은 추가 자본을 획득 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화교들에게는 환영받는 분야인 것이다. 그리고 이 부동산은 화교들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많은 아시아 도시들의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현재의 거대한 화교 자본 형성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이렇게 화교들이 좋아한 면을 고루고루 갖추고 있으니 화교들이 부동산에 모이는 것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화교 대기업들은 부동산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주력 사업이 있더라도 부동산 사업을 연계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화교들은 부동산 회사를 통해 부동산 개발 및 투자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토지와 부동산은 화교 기업들의 가장 보편적인 업종인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화교들은 무형(無形) 자산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경영에도 반영된다. 즉 회사 경영에 있어서 연구개발 투자, 디자인, 마케팅, 법률, 서비스 등 형태가 없는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화교 기업들은 이러한 무형 자산들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 시키려고 한다. 화교 기업들은 이런 무형 서비스에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생산하거나 차용한다. 게다가 심지어는 포기해 버릴 정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이승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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