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중구 북성동 1가 102-2번지. 월미공원 내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이 땅의 선조들이 겪은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한다는 취지로 인천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국내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이다.

한인의 이민역사를 체계화함은 물론 국내·외 동포사회의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하는 이 박물관은 700만 해외동포의 존재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공간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로 2008년 6월 개관했다.



<닻이 올라갔다. 갑판 위에는 마지막으로 제물포를 보려는 사람들로 계단까지 북적거렸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출항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반상과 남녀, 노소와 장정의 구별도 없이 하나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정박 중인 배보다는 바닷바람을 가르며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배가 보기에도 좋은 법이다… 몸을 흔들며 물기를 털어내는 덩치 큰 개처럼 일포드 호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밀어내며 황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김영하, 장편소설 ‘검은 꽃’중에서)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 호에 승선한 1천33명의 조선인이 제물포항을 출발하여 지구 반대편의 멕시코로 떠나는 선상과 항해,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낯선 세계에서의 소설 속 인물들이 겪게 되는 혹독한 근대의 학습을 이 소설은 통렬하게 전하고 있다. 이민이기에 앞서 조국으로부터의 추방이며, 유배의 잔혹사로 이해되는 100년 전 그들의 아픈 기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사박물관은 그들에 대한 기억공간인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겪은 엄혹했던 과거사에 머물기보다는 그들이 현지에서 일궈낸 성공적 정착사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개척자적인 정신성을 겨냥한 전시가 중심을 이룬다. 노예생활과 다름없는 비인간적 처우를 극복하며 어느 덧 그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편입되어 대를 이어온 ‘코리언’의 이민사 100년을 기념하는 전시콘텐츠가 채택된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과거의 그들에게 국가의 의미가 생성되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 박물관은 그들의 영혼이 찾아와 숨 쉬는 기념관이 될 터이다.

박물관 내부가 한바탕 소란스럽다. 방금 전 관광버스에서 내린 외지 할머니들이 대거 전시장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전시장은 이내 시장 바닥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그분들이 떠들어대는 화제가 전시된 내용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전시장 안은 이전의 평온을 되찾았다. 쏜살같이 1~2층의 전시장을 둘러 본 그분들의 발걸음이 다시 관광버스로 옮겨진 까닭이다.

박물관의 외관은 원형의 입면성을 강조한 형태다. 징크 판넬로 두른 면성은 얼핏 보기에도 단단한 자물통 같다. 반면 박물관과 오버 브리지로 연결된 서부공원사업소는 열쇠를 연상시킨다. 이민의 역사를 투영한 이 땅의 근대사 100년을 고스란히 담은 시간성의 자물통과 그것을 따는 쇳대의 개념으로 풀어 낸 듯한 건축형태언어가 흥미를 끈다. 그런 면에선 현재의 서부공원사업소의 공간 일부가 박물관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보조해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박물관을 찾은 방문객이 딱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로선 월미공원 안에 위치해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방문객을 위한 기능실의 배치가 매우 불친절하다. 최소한 현재의 서부공원사업소 1층 정도는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의 편의시설로 제공되는 것이 마땅하다.

서부공원사업소를 연결하는 브리지와 박물관 내측 외벽의 사이공간(안마당)은 특별한 느낌을 선사한다. G3가 이끄는 설계팀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건물 내 전시장을 연결하는 복도형 브리지와 중정을 완성하는 오버 브리지는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형상언어다. 그것은 조국과 미지의 세계, 중세와 근대사회, 체제일탈과 유형(流刑)을 함의한다. 현재의 안마당은 비어 있는 상태로 사업소 직원들의 운동 공간쯤으로 활용되고 있는 듯한데 박물관 내측 외벽면의 긴장감이 사뭇 기념공간의 극치에 닿아 있다. 이 공간을 이용한 외부 전시가 가능할 터이다. 그것은 2층의 계단을 오르며 전시 관람이 시작되는 기존의 동선체계 안에서도 중요한 시각적 포인트가 되는 곳으로 박물관의 내·외부를 잇는 입체적 전시장으로서의 재구성이 가능하리란 기대와 이 박물관의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상징공간의 잠재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시각에 다름 아니다.

현재 박물관 앞으로 모노레일 공사가 한창이다. 이후 박물관으로의 접근성이 향상되면 이곳을 찾는 방문객의 수요도 부쩍 증가할 것이 예상된다. 주변의 조경공간도 정비되고 나면 박물관도 지금보다는 한결 돋보이게 될 터이다. 그런 까닭에 외부의 비밀스런 상징공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방문객 중심의 편의공간을 예비해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계속)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편집인·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등 장 인 물

G3(실명: 김자호): 1945년생, 1969년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현재의 간삼파트너스 전신인 간삼건축연구소를 공동 설립하여 현재 대표로 재직 중이다.

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2002~)이며, 대한건축학회 부회장(2004~)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1997), 서울특별시건축상(2002)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고,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인천광역시건축상(2008)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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