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면서 중국이 아니었던 곳,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들의 중심이 되는 곳. 그곳은 바로 홍콩이다. 홍콩은 화교들의 성지(聖地)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곳이 아닐까?

지금은 중국으로 돌아간 땅이지만, 홍콩은 여전히 세계 화교들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홍콩 경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교는 누구일까? 그는 바로 리카싱이다.

리카싱(李嘉誠) 그룹의 주력기업인 허치슨왐포아(Hutchison Whampoa)와 청콩홀딩스(Cheung Kong Holdings)는 홍콩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기업이다. 리카싱 그룹의 주식은 홍콩 주식시장 주식의 14~20%를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리카싱 그룹의 움직임은 홍콩의 경제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거대한 그룹을 세우고 끌어온 리카싱이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한 사람이 이 거대한 그룹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리카싱의 이 거대한 그룹은 작은 꽃 배달 회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리카싱에게 처음부터 큰 자본이나 여건이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는 일개 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본을 모아 꽃 배달 사업의 중소기업을 차린 것은 1950년대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꽃 배달 회사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꽃 배달 회사를 통해 모은 소자본으로 홍콩의 공장들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곧 제조업이 크게 성장해 공장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들어맞아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카싱은 여기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1980년대부터 베이징, 상하이, 우한(武漢) 등의 지역에서 호텔, 쇼핑 센터 등의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4개국에 7만명의 직원을 둔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사실 홍콩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이들은 화교가 아니었다. 물론 중국인들도 아니었다. 바로 영국계 기업들이었다. 특히 영국계 대기업인 자딘 매디슨(Jadin Matheson)이나 HSBC 홀딩스(HSBC Holdings) 등의 기업은 아편전쟁이 있었던 19세기 중반부터 약 150년간 홍콩의 경제를 주름 잡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1997년 홍콩 반환은 이 구도를 180도 바꿔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영국계 기업들은 홍콩 반환에 대비해 본사를 이전하고 분산 투자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공산주의인 중국은 이익을 우선시 하는 기업이라는 나무에겐 최악의 토양이었기 때문이다. 각 기업들은 홍콩 반환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리카싱은 그들과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오히려 중국에 진출해 중국에 협조적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 결과 리카싱 그룹의 주식 보유율은 홍콩이 반환된 이후에도 감소하거나 정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마침내 리카싱 그룹은 베이징에 커다란 쌍둥이 빌딩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이승훈 연구원

순훙카이 부동산 ‘궈씨 삼형제’

화상(華商)을 재산이 많은 순서로 순위를 매기면 홍콩 화상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다. 1위에서 5위 사이에 홍콩 화상이 4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단연 리카싱(李嘉誠)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누구일까? 바로 궈빙샹(郭炳湘), 궈빙장(郭炳江), 궈빙롄(郭炳聯). 궈씨 삼형제이다.

그들은 리카싱처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서 부호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아버지인 궈더성(郭得勝)이 홍콩 4대 부동산 재벌로 큰 부자였기 때문에 그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하지만 궈씨 형제들을 주목해야 하는 점은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들에게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그 큰 재산을 무려 8배나 불렸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궈씨 형제들의 아버지는 순훙카이(新鴻基)의 창업자 궈더성(郭得勝)이다. 궈더성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이 된 그는 작은 장사를 하며 돌아다니다가 마카오에 정착했다.

궈더성은 홍창수출입공사라는 무역회사를 차려 사업을 크게 키워 동남아시아에서는 ‘수입품 대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였다. 궈더성은 상권이 넓은 홍콩으로 진출하여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재 핸더슨 개발 회장인 리자오지(李兆基), 펑징시(馮景禧)와 함께 부동산 회상을 만들고 자본을 모아 선홍카이기업을 설립했다.

사업이 번창하자 세 사람은 회사를 나눠 경영하기로 하고 궈더성은 순훙카이 기업을 순훙카이 부동산으로 바꾸고 홍콩 부동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창업 9년만에 홍콩 4대 부동산 재벌로 성장한 것이다. 궈더성은 토지를 대량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나갔는데 그의 활발한 활동은 ‘건물제조공장’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다.

1990년 궈더성이 세상을 떠나자 궈더성의 재산과 그가 하던 사업은 그의 아들들인 궈빙샹, 궈빙장, 궈빙롄에게 돌아갔다.

대부분의 2세 경영은 부작용을 안기 마련이다. 하지만 궈씨 형제들은 부작용을 안기는커녕 오히려 선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8배나 불렸다. 그들이 선친에게 물려받은 것은 재산 뿐 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궈더성은 삼형제에게 어렸을 때부터 교통비와 점심값 이외에는 용돈을 주지 않아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했다.

또 궈씨 형제들은 엘리트 출신이다. 궈빙샹과 궈빈장은 아버지의 사업을 생각하고 런던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궈빙롄은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맏형인 궈빙샹은 회장, 둘째 궈빙장은 부회장, 막내인 궈빙롄은 전무를 맡아 삼형제가 힘을 합쳐 순조롭게 경영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궈빙샹 회장의 정직으로 세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궈씨 형제들이 경영하는 순훙카이 부동산개발은 오는 2010년까지 홍콩 카우룽(九龍) 서부에 118층 490m 높이의 국제상업센터(ICC)를 건립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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