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중구 인현동 5번지. 동인천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10월 30일 불의의 화재로 청소년 56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천 인현동 호프집 사건을 기억하는가. 바로 그 화재현장 주변에 세워진 건물이다. 화마에 희생된 청소년들의 넋을 기리고, 청소년들의 쉼터를 조성한다는 건립목표로 2001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착공하여, 2004년 2월 마지막 날 준공되었다. 옛 축현초등학교가 있었던 장소에 청소년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들어앉은 것이다.



현초등학교는 1919년 3월 15일 인천공립심상소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하여 1946년 9월 축현공립국민학교로 개칭 개교한 후 48년 6월 1회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다.(축현초 홈페이지, 학교연혁) 2001년 연수구 옥련동에 새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기까지 오랜 기간 인현동 교사를 지켰다. 학교 이전 후 적벽돌 2층의 ㄷ자형 건물로 좌우대칭의 정면성을 지녔던 이 근대건축기의 교사는 철거를 당하고 만다.

지역적으로 근대건축의 훼손이 뜨거운 감자로 오르내리지 않은 채 철거된 이유가 있을 법하다. 왜 그랬을까?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의 입학이 극히 제한되었다. 1933년 당시 재학생수 731명 중 단 4명만이 조선인 학생이었다는 기록이 전해질만큼 순전히 일인(日人)들의 초등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민족정서에 반하는 학교의 역사가 문제 되었을 수 있다. 이것이 근거 없는 추정이 아니라면 인천의 건축연표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고 금양은 생각했다.

온갤러리.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 Refuge>(제41화 참조) 전시가 열렸던 곳으로 이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전시장 앞 홀은 Y자형 계단으로 1층과 2층이 연결되며 총 3개층 높이의 시원한 공허부의 중심성을 갖고 있는데 단연 이 건물 내부의 상징공간이다.

또한 공허부 앞으로는 외부 조각마당으로 면한 전면 유리창의 개방성이 특징적이다. 이 건물은 대지의 경사면을 이용한 다방향성의 출입구 계획도 인상적인데 조각마당을 경유하여 2층의 갤러리와 공연장 싸리재홀로 곧장 진입할 수 있게 한 별도의 출구를 두었다. 보행자 전용의 이 건물 주진입구에 해당한다. 설계자 ASUN은 대지의 레벨차를 이용한 공간의 연속성과 극적 공간감의 성취에 능한 건축가임에 분명하다.

은 크게 갤러리와 공연장 및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는 기능을 갖는다. 공용 홀 주위에는 늘상 교복 차림의 혹은 평상복 차림의 중고등학생들이 웅성대고 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시장 안으로 발길을 옮기는 청소년들. 생활 속에서 갤러리의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적응력은 개방적 공간의 형식으로부터 건물의 사용법을 몸에 익힌 것이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곳이 학생교육문화회관이라고 하여 그들만의 전유공간은 아니다. 청소년이 중심에 있지만 사용하는 이들 중에는 기성세대의 수도 적지 않다. 다양한 내용의 문화교실 및 체험 프로그램과 전시 및 공연 등에 유아로부터 청소년 그리고 일반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이 건물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물은 공연장과 체육관으로 양분된 큰 매스를 전시장시설과 내부 공용 홀의 공허부로 매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경사지 하부에 체육관을 배치하고, 상부에 공연장을 들임으로써 부피가 큰 기능실을 효과적으로 구분한 배치로 완성시키고 있다. 건물 3층에 위치한 실내체육관 시설은 청소년들에게 단연 인기가 높다. 도심 한복판에 청소년들의 운동성과 끼를 한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처럼 용이한 구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건물의 태생 배경이 다시 가슴에 와 닿는다.

층 조각마당의 서측하부, 공연장의 남측면 대지의 경사를 이용한 썬큰정원 형식의 야외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야외무대라는 점에서 계절과 날씨를 타는 것이 사용상의 결점으로 작용하지만 이 건물의 남향한 외부공간이자, 자유공원으로 오르내리는 동선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음으로써 개방성과 유인성이 높은 장점이 있다.

다만, 청소년들이 즐겨 놀기엔 공간의 규모가 크고, 계단식의 스탠드형 객석의 유형보다는 단차가 없는 플로어형의 객석과 눈높이 위치의 무대공간으로 구분된 스테이지 유형의 공간형식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의 성향에 비추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러나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건물 주변 상권의 성격이다. 동인천 삼치거리가 건물 서측면에 위치하고 있고, 동측과 남측으로 도로에 면하여 즐비한 또 다른 유형의 대중음식점과 술집, 그리고 성인오락장 등은 청소년교육문화회관의 성격과 충돌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들의 교육문화 환경이 만들자마자 고립된 섬처럼 되어버린 형국이다. 미술과 공연, 대중 스포츠문화보다는 주점(酒店)문화, 퇴폐문화의 수용을 은연중에 교육하고 있는 양하다. 청소년들만의 쉼터라고 하기엔 건물주변의 상황은 최악의 경우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청소년문화를 소재로 하는 새로운 유형의 특색 있는 시설로의 변화가능성을 구상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건물과 거리가 같은 생각으로 함께 흐를 때 고유한 장소의 가치가 탄생하는 것이다. 도로 하나를 사이로 문화가 극과 극을 달릴 때 유의미한 거리문화가 생겨나는 일은 흔치 않다.(계속)
건축리포트‘와이드’발행편집인·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등 장 인 물

ASUN(실명: 이용선):

1952년생.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삼우설계를 거쳐 1991년 현재의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선기획을 설립하였다. 한국건축가협회와 대한건축사협회 회원이며, 1996년 한국건축대전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씨네월드로 서울시건축상,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으로 인천시건축상, 인천국제고등학교로 교육과학부 우수시설학교 대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엔 광운대학교 지하캠퍼스 현상설계에서 당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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