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만난 한 중국인 결혼이민여성은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이어오던 친구는 말이 통하지 않아 남자친구와 자주 다퉜다고 한다.

마음에 쌓인 말을 설명하지 못해 오해가 깊어졌고 결국 만남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는 ‘화나다’라는 감정 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혼나다’가 입에서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화났니?”라고 말하려던 것이 “혼날래?”가 되니 진심을 구구절절히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난해 인천시는 지역 내 결혼이민여성 4천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한국생활 적응정도를 묻는 질문에서 이민여성의 절반인 50%는 ‘한국어를 잘한다’고 답했다. 보통이라고 답한 비율도 37%로 이 비율만 보면 이민여성들의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 가운데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여성은 26%에 불과했다. 생활 속에서 체득해 말을 익힌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경우 일상 대화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쓰기 및 정치, 경제 등 단순 언어를 벗어난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 교육은 체계적이지 못하다.

교육의 질은 차치하고서라도 결혼이민자, 특히 이민여성들은 교육기관에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위 설문조사에서 한국어 등 한국생활 적응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한 이들 가운데 32%는 ‘어디서 하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생계 문제로 여유가 없다’는 이유도 22%였다. 거리가 멀다거나 아이를 돌보느라 시간이 없다는 대답도 있었다.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대다수 기관들이 겪는 어려움 역시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어 교실에 참여할 여건이 되지 않아 결석이 잦은 점이다. 이민 초기에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언어를 익히는 일이지만 이 시기 육아로 인해 수강 신청을 하고도 시기를 놓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인, 며느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들의 외출을 자제시키는 가족도 여전히 존재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글 등 필수교육을 위해 주민센터와 같이 접근성이 보장된 장소를 교육에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민여성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28%가 주민센터를 선호했다. 거주지와 가까운 시설 및 개인지도, 인터넷 등도 30%였다.

외국인종합상담소 서광석 소장은 “프로그램 등 교육 내용은 전문 기관에서 제공하되, 주민센터 등 접근성이 우수한 공공시설을 교육 장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중국, 베트남 등 다수 국가에 대한 교육은 물론 소수 국가 여성을 위한 교육 등 교육이 다각화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교육의 내용도 문제다. 올해 1월부터 결혼이민자들은 다문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이 가운데는 언어도 400시간 포함됐다. 초급 1, 2단계, 중급 1, 2단계 총 4개 단계 각 100시간과 고급 단계가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교재는 부족하다. 현재 여성부(전 여성가족부에서 발간)가 편찬한 ‘여성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교재 기초, 초급, 중급’, 노동부 편찬 ‘하하호호 한국어’, 교과부 교재 등 크게 3가지 정부 발간 교재가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교육 기관에서는 이를 보조 교재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한 강사는 “외국인이 이 교재들을 보며 혼자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일부 단체에서는 부족한 자원 때문에 교사를 자원봉사의 영역으로 구분, 주먹구구식 수업을 진행하기도 해 문제를 낳고 있다.

결국, 접근성 부족과 주먹구구식 내용은 한국생활에 첫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이다. 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전문강사 수준별 진행

수강생 만족도 높아

인천시여성문화회관, 기초과정부터 3단계수업

봄을 재촉하는 비가 한바탕 쏟아지던 지난 6일 오전 10시. 궂은 날씨에도 부평구에 위치한 인천시 여성문화회관에서 열린 결혼이민여성 한국어 교실은 수강생들로 가득찼다. 교실 밖 복도 끝에서도 우렁차게 책 읽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날 수업은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공부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여성문화회관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어 교실은 기초와 초급과 중급 3단계로 나뉜다. 이날은 중급 교실이 열리는 날로 수강생 20여 명은 이미 기초와 초급 과정을 배운 여성들이었다.




(인천시 여성문화회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어 중급 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마지막 과정인 중급 과정을 듣는 여성들이 ‘감정 표현’을 익히는 것이 의아했다. 태어나서부터 한글을 접하고 감정을 표현한 한국인들에게는 ‘배운다’고 하기에도 어색한 말들이 이제 막 한국에 발을 디딘 결혼이민여성들에게는 ‘중급’ 수준의 교육이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교육은 경인여자대학 국제교육원 정하나 한국어 강사가 맡았다.

정 강사는 단어 하나 하나를 알기 쉬운 말로 설명했다. ‘긴장되다’, ‘신나다’, ‘우울하다’, ‘기쁘다’ 등 단어 하나를 배울 때마다 수강생들은 노트에 이를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수강생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것은 단어의 활용법. 수강생들은 ‘화나다’는 기본형을 어떤 때 ‘화를 내다’, ‘화를 참다’ 등으로 활용하는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정 강사는 “중급 수준은 일상 생활에 불편함이 없지만 자주 쓰지 않는 단어나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학문을 목적으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같은 단어라도 수차례 반복해 주고 있다”고 했다.

여성문화회관은 지난 2003년부터 결혼이민여성을 위한 한글교실을 운영해 왔다. 당시만해도 중국인이 대부분으로 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여성을 위한 한글교실을 운영하는 곳은 극히 적었다.

그러던 중 2006년부터 결혼이민여성이 늘자 수준별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여성들의 배우고자하는 열망을 받아줄 기관이 부족했던 탓일까, 현재 강의 정원은 25명 내외지만 30명 넘는 수강생이 항상 이곳을 찾는다. 특히 여성문화회관은 전문 한국어 강사를 섭외해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정 강사는 이민여성들을 위해 가정에서 배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이 3개월에 200시간을 공부하는데 비해 여성들의 경우 400시간을 배우는데 2년이 걸리는 만큼 지속적인 학습은 가정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정 강사는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모르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알려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한국어를 익히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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