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을 치루면서 그 해에 거둔 4강 신화 못지않게 우리 사회 전반에 획기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화장실 문화였다.

경기를 중계하고, 관전하기 위하여 입국하는 외국 손님들에게 그 이전까지 국내의 공중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보여주기에 민망할 정도의 열악한 수준이었다. 대중매체를 통한 문제제기는 날개를 달았고 공중화장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대중의 생각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화장실 환경개선사업이 붐을 이루었고, 마침내 한국의 화장실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

“측실은 마땅히 높고 트였으며 밝게 해야 하고 낮고 어둡거나 음침해서는 안 된다. 사람사는 집에는 마땅히 측간을 세 개 설치해야 한다. 하나는 안채에 두고 하나는 바깥채에 두며, 하나는 담장 밖의 밭두둑 곁에 둔다.”_『임원경제지』

여기서 보이는 담장 밖 밭두둑의 화장실이 오늘의 공중화장실 쯤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이때의 집밖 화장실은 인분이 중요한 비료로 사용되던 시절에 종종 잿간과 함께 설치되었다. 그렇다면 건축학자들은 공중화장실의 시원을 어떻게 판단할까?

“화장실은 선사시대 이래 독립적 위치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만큼 일상생활과 격리시킬 필요가 있는 더러운 공간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었던 탓이 크지요. 여럿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이라는 면에서 공중화장실의 원형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사유재산의 발생이나 계층의 분화에 따라 개개의 주거영역으로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집의 사회사』를 쓴 KYH는 화장실의 탄생 배경을 이렇게 짐작했다.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솔안공원 내 공중화장실. AQ 탐정대원 일행과 현장취재 차 찾아 나선 공중화장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최근 급작스런 엄동설한에 수도관 동파 우려로 일시 폐쇄한다는 사용금지 푯말이 붙어 있다. 크지 않은 공원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화장실은 동시에 대로변에서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놓여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산책과 걷기운동 중간에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서의 기능과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대기 승객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겉보기에 화장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제법 세련된 외관을 하고 있는 것도 이 화장실의 특징이다. 과감하게 노출콘크리트가 사용된 외장재의 특이점과 구조체의 골조미를 살린 조형감 그리고 격자 틀의 창호와 원통형 볼륨에 입힌 메탈 스킨 등에서 디자인에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건물의 채를 분리하여 남녀 용도를 구분한 이 화장실의 배치와 각각의 경우,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외부에 별도의 출입구를 만들어 놓은 것도 이색적이다.




(해돋이공원 공중화장실.)

공중화장실의 외관이 독특한 표정을 갖는다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지역의 특색에 맞게 그 지방 특산물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때로는 희화적으로 배설된 대변을 형상화한 형태를 띠기도 하는데 그 바람에 볼거리로서의 공중화장실의 존재가 지역의 명소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이한 형태일수록 사람들의 기억 공간 속에서 잔류하는 기간이 늘어난다. 공중화장실이 곧 지역의 문화상자(Culture Box)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연수구 송도동 해돋이공원 내 공중화장실. 공원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공중화장실도 2개소다. 겉으로 보기에 이곳의 화장실도 무척 세련된 모습을 띠고 있다. 금속패널로만 외관을 두룬 박공지붕형태와 금속패널과 나무패널이 조합된 입면의 디자인 요소가 극히 현대적으로 처리된 화장실이 눈에 띤다. 반면 이들 각각의 내부는 일반 화장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화장실 내부공간의 시설은 전국적으로 상향평준화 된 느낌이 크다. 앞서 거론했듯 화장실 개선사업의 주요 항목이 내부시설의 현대화와 동시에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었던 만큼 그에 부응한 여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지만 샤워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공중화장실은 때로 정처 없이 떠도는 노숙인들에겐 그나마 씻을 수 있는 좋은 시설이 된다. 그들에게 혹한기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임시처소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눈길을 피해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자주 이용할 수 없다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간간히 취객들의 오물로 인해 난장판이 되기도 하는데 공중화장실은 더러운 것을 감싸주는 특별한 공간인 덕에 어느 누구도 취객의 방자함을 욕하지 않는다. 화장실은 추한 행위가 용서되는 아주 묘한 구석이 있는 장소인 것이다.

“지역의 공중화장실을 관통하는 디자인의 공통분모가 보이지 않는 것이 흠결로 지적될만 해요. 또한 실내공간의 고급화가 사용된 기물과 자재의 높은 가격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데, 그보다는 개개 화장실의 개성이 드러나는 특별한 장치들, 이를테면 하늘을 볼 수 있는 천창 아래에 대변기를 설치하거나, 대변기에 앉아서 남의 시선에 방해받지 않고 편하게 외부를 바라볼 수 있는 화장실 등, 이색적인 경험이 가능한 화장실이 계획되면 좋겠죠. 해돋이공원 남자 화장실의 경우에서처럼 소변을 보면서 자연공간을 감상할 수 있는 창호의 배치 등은 좋았던 것 같아요.”

탐정대원 AQ-6는 화장실의 외관이 세련된 형태를 띠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개성 있는 실내공간의 특징으로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계속) 건축리포트‘와이드’발행편집인·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등 장 인 물

KYH(실명_강영환)

1953년 생.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공학박사, 울산대 한국건축연구소 소장,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문화인류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정회원이며, 현재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한국주거문화의 역사』(기문당), 『집의 사회사』(웅진출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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