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택(72)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인천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새얼문화재단은 인천을 넘어 전국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고 인천의 자랑거리가 됐다.

새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새얼백일장은 전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참가해 미래 시인과 작가지망생들이 꿈을 키우는 대회로 자리잡았다.

지 이사장은 굴업도 핵폐기장 저지, 인천대교 주경간폭 확장 문제 등 다양한 지역현안에 목소리를 높이며 지역 여론을 이끌어오고 있다.

본보 이인수 편집국장이 정석빌딩 새얼사무실에서 지 이사장을 만났다.

“젊은 세대가 나서야지, 인천의 젊은이들이 좋은 열매만 따먹으려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문을 연 지 이사장은 2시간여에 걸친 인터뷰시간 내내 지역의 선배로서 인천을 위한 소신들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 새얼문화재단이 1975년 1월 창립했는데 이제는 인천 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인천을 대표하는 재단으로 성장했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단을 창립한다는 것은 혁신적 사고였는데.

지용택 = 노동운동할 때였다. 당시 근로자들의 처지는 어려웠다. 지금이야 회사에서 장학금도 주고 각종 복리후생이 잘 돼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생각도 못했다. 이 때 운전자들은 사고가 나면 바로 구속될 정도로 운수 관련 노동자들의 현실은 매우 열악했다. 운수 노동자들의 자녀들에게 학비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 재단 기금은 어떻게 모았는지.

지용택 = 기금은 노조들에게서 거두지 않고 바깥에서 구했다. 1구좌에 5천원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꽤 큰 돈이었다. 기부문화가 생소하던 때라 어려웠으나 다행스럽게 많은 인사들이 참여해줘서 용기를 얻었다.

이 때는 1년에 한번 청와대에서 노조간부들을 초청했는데 노동청장이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동차노조 경기도협의회의장(당시는 인천과 경기도가 통합됐을 때임)이 재단을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한 적이 있다. 믿기 어려웠던지 박 대통령께서 ‘정말로 재단을 설립한 게 맞냐’고 3번이나 되묻기도 했다.(지 이사장은 당시를 회상하듯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지금 생각하면 박 대통령이 이처럼 되물은 것은 아마 재단법인이라면 기업가들이나 만드는 것이지 근로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봐. 그래서 대통령께 오늘날과 같은 산업발전을 이루는데 근로자들의 덕이 컸다며 선물을 하나 달라고 했지. 그래서 정부 지원금 등을 받아 20억원으로 한국노총 장학재단을 설립했어. 새얼장학회와 한국노총장학회 설립에 한 역할을 했지.

# 새얼문화재단에 앞서 장학회로 시작한건가.

지용택 = 5천만원의 기금으로 새얼장학회를 시작했지. 새얼문화재단으로 바뀐 것은 1980년이고. 올 1월 현재 회원이 1만명이 넘었고 자금은 52억원가량 돼. 회원이 정년퇴임하면 1구좌만 하도록 부담을 덜어주어요. 현직에 있을 때야 10구좌든 50구좌든 되겠지만 퇴직하면 부담이 되지. 인천에서 사장이나 기관장을 하다가 떠난 사람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회원으로 있는 경우가 많아. 이런게 자랑이야.

좋은 빌딩, 좋은 아파트가 많다고 좋은 도시가 되는 게 아니야. 좋은 사람이 많이 살아야 좋은 도시가 되는 거야. 회원 중에는 전직 장관을 하다가 인천이 좋아서 본적을 인천으로 옮긴 이도 있지.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은 도시가 되는가 아닌가.

# 재단이 펼치고 있는 사업들을 소개한다면.

지용택 = 새얼백일장이 23년 됐고 올해 24회 째를 맞는다. 학제가 변경되기 전까지만 해도 백일장에서 입선한 학생들은 대학 문예창작과 같은 데는 시험보지 않고도 갈 수 있었다. 백일장에는 전국을 대표하는 인재들이 참여한다.

백일장을 마친 뒤 참가자들의 글을 모아 문집을 내고 있다. 문집에는 글을 쓴 학생 뿐 아니라 지도한 선생님 이름까지도 넣고 있다. 학생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이 모두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추억을 심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또 하나는 ‘황해문화’이다. 그 동안 전국지는 모두 서울에서 나왔다. 일반 교양잡지로 지방에서 출판하는 전국지는 황해문화가 유일하다. 올해로 16년 째다.

새얼재단은 문예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다. 인천이 전국화돼야 하고 세계화돼야 한다. 말로 되는게 아니다. 물은 앞으로 흐르고 밑의 빈 공간을 채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문화운동은 바로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하겠느냐고 했지만 벌써 24년이 됐다.(감회가 새로운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바탕은 만들어 놨다. 다음사람이 이 사업을 이어가는 것은 쉽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든 않든 꾸준히 해야 한다. ‘새얼아침대화’도 현재 274회가 됐다. 곧 300회를 맞는다. 이처럼 꾸준히 지속된 것은 시민들의 승리이며 그 이유는 정치바람을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운동에 앞장서려면 다 버려야 한다. 절대 개인의 영달을 생각하면 안된다.

# 새얼아침대화 강사는 어떻게 선정되나.

지용택 =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6개월 전부터 섭외하고 3개월 전에 최종 확정한다. 가능하면 시의에 맞는 인사를 모시려고 노력하고 있다. 갑자기 상황이 생겨 강사를 변경해야할 때는 양해를 구하는 일도 있다. 가능하면 중도적인 인사를 초청하려고 하는데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다. 2월에는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을 초청할 예정이다.

# 다른 문화행사는.

지용택 = 국악공연과 가곡과 아리아의 밤을 매년 한 차례씩 개최하는데 25년 됐다. 지금이야 시나 구에서 많이 개최하지만 25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화행사는 거의 없었다. 새얼문화재단을 위해 공헌하신 많은 분들에게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 새얼문화재단에서 지용택 이름을 빼면 내세울 인사가 없다. 사업도 방대해졌고 규모도 커졌는데 이제는 후계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지용택 = 외부에서 영입할 수도 있고 내부에서 이어받을 수도 있다. 앞으로는 사람이 중심이 돼서 끌어나가서는 안되고 사무국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재단을 이끌어갈 후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몇 사람 있다.(공개할 수 없는 형편에 양해를 구하며) 지금 키우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음 사람은 자기 직업을 그만두고 재단 일에만 전념해서는 안된다. 확실한 자기 직업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나도 재단의 회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모두 사무국에서 알아서 한다. 재단은 전국에서 모델이 되고 있다. 내가 했을 때 잘했다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다음 사람에게 잘 옮겨지는구나라는 말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대담=이인수 편집국장 정리=백범진기자 bjpaik@i-today.co.kr 사진=김성중기자 jung@i-today.co.kr

# 선거철만 되면 낙하산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용택 = 낙선하든 당선되든 다른 지방인사가 인천에서 출마하는 것은 반대한다. 지역을 위해 고생한 사람들이 해야 하지. 얼마 전 인천신문 기사(김기준 정경2부장 데스크칼럼 지칭)는 잘 썼어.

# 굴업도 핵폐기장 저지, 인천대교 주경간폭 확장, 죽산 선생 동상건립 등 원로로서 다양한 지역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지용택 = 전직 장관을 지낸 인사와 인천대교 주경간폭 확장문제로 의견을 나눈 적이 있는데 나에게 ‘인천항내에 구멍가게라도 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천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인천은 천년의 항구로 인천항이 잘 돼야 한다. 남북통일이 안돼도 지금 해주모래가 인천으로 오고 있지 않나. 인천은 지도자들이 잘하면 빨리 발전할 수 있고 못해도 시간이 좀 더딜 뿐 발전할 수 있는 도시다. 인천의 자긍심을 가지는 일은 꼭 해야 한다.

# 이 때문에 오해하는 말도 있다.

지용택 = 이해관계를 떠나 목적과 상관없이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한 시민단체에서 서명운동에 참여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를 거절해서 섭섭해 한 일이 있다.

지역의 원로로서 “자네들이 못하는 일이 있으면 가지고 오게”라곤 한다. 후배들이 어렵고 못하는 일이 있으면 떠안는 것이 원로의 역할 아닌가.

# 인천시의 정책에 대해 최근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용택 = 지금 시장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 몇 개월 뒤면 자연스럽게 평가가 나올 것 아닌가. 365일 항시 비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투쟁일변도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 우리 선비들은 기다림의 미학이 있었다. 신문사도 무조건 비판보다 잘못됐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잘하는 것은 격려하는 것이 지방화시대 지역신문의 역할이라고 본다.

지용택 = 전적으로 동감한다. 인천대교 명칭 문제가 불거졌을 때 황해대교를 주장했다. 황해대교는 인천을 뛰어넘어보자는 애기다. 과거 중국은 잦은 내전으로 발해만에서만 활동이 그친 채 황해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황해를 무대로 무역을 했던 민족이다.

그래서 황해대교를 주장했는데 새얼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황해문화가 있어서 오해를 살 것 같아 그만뒀다. 나이가 들면 설명이 따라다니는 행동을 해선 안된다. 일부 사람들이 황해문화하니까 황해대교 한다고 했다. 황해대교의 뜻은 ‘좀 더 나가자’라는 것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 인천의 꿈과 비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지용택 = 시장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명품도시’가 뭐냐고 물을 때 영어로 번역도 안될 뿐더러 명품은 사고 파는 물건이다. 270만 시민이 사는 도시를 굳이 사고 파는 명품에 비교해서야 되나. 문화적 철학이 있어야 한다. 8월에 열리는 도시축전이 엑스포로 계획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바뀌었다.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얼마전 시장을 만나 인천사람으로서 시장이 잘 돼서 인천이 발전할 수 있기를 부탁했다.

■ 지용택이사장은

1937년 7월 인천 출생.

▲학력

창영초, 인천중, 인천고 졸업

경희대 법과대학, 고려대 경영대학원,

연세대 행정대학원,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연세대 국제대학원 중국최고위과정

▲경력

1975.10~현재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1976.10 한국노총 사무총장

1979.11 전국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

1981.4 민족통일협의회 인천시협의회 회장

1988. 인천시민발전협의회 수석부회장

1993.~현재 계간 ‘황해문화’ 발행인

1996.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범시민협의회 상임대표

1998.7 인천고 총동창회 10대 회장

2006.6.15~2007.12.31 인천시립박물관 위원장

2007. 4. 19 ~ 2007. 10. 18 인천지검 구속심사위

▲수상경력

1983.12.5 국민훈장 석류장

▲저서

장강을 넘어 역사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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