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상상력-현실을 지탱하는 힘>
인천의 미술가들-9.김경인

주지하다시피 김경인은 7-80년대 현실의 부조리한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며 기존의 억압적 질서에 맞서왔던 동시대 리얼리스트들의 맏형격인 화가이다.

유신정권시대 ‘제3그룹’을 결성하여 사회적 억압상태를 벗어나고자 몸부림 친 것도, 서슬 퍼런 5공화국 정권시절 소위 ‘불온작가’로 낙인찍혀 창작활동에 지장을 받은 것도 그가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믿음을 갖고 일관성 있게 작업해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90년대에 이르러 ‘소낭구’라는 친근하면서도 생소한 문제작을 들고 나왔을 때 그의 화가적 열정과 인문적 기지(奇智)가 세간에 화제가 된 바 있다.

정치적 상황변화로 맞서야할 주적(主敵)을 상실한 대부분의 리얼리스트들이 좌표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있을 때, 그는 ‘화가는 과연 무엇을 그려야하는가’에 대한 확고한 인식론으로 재무장함으로써 예술가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굳혀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실적 상황에 대응코자하는 수많은 자문자답과 작가적 실천력이 이룩해 낸 결과물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현실과 주변’에 관한 관심의 폭을 좀더 정신적인 측면으로 확장해 봄으로써 또 다른 변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소낭구’라는 민족적 상징물을 베이스에 깔고 다양한 형식적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 함축적으로 그려진 소나무는 어떤 영기(靈氣)를 품은 듯 고고한데, 그 주변에 있는 다양한 의식·무의식적 편린들은 예기치 않은 내러티브들을 생산한다.

이러한 김경인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그가 특정한 내용 또는 형식만을 고집하지 않듯이 어떤 인식이 그의 작품세계를 고정된 시각으로 규정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표현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그 모호성이 오히려 경험을 명료하게 만들고, 직접적인 사실기술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감을 확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사실계와 상상계를 종횡하며 쏟아내는 수많은 언술들을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느덧 노경에 이른 예술가의 경험과 상상력의 진폭에 우리가 넋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1941년 인천 신흥동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인하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경모 미술평론가·인천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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