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첫번째 화두를 인천 지역 여성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현재 인천 지역에 살고 있는 여성 결혼이민자들은 7천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 교육, 관광 등 외국인이 인천에 거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여성 결혼이민자들의 경우 ‘생활을 위해’ 인천에 거주한다는 면에서 우리의 문화와 접촉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 일, 교육, 관광 등 어느 하나 겹치지 않는 부분이 없다. 이들이 말하는 한국 혹은 인천이란 어떤 곳일까.

인천시 여성복지관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여성 결혼이민자 4명을 만나 ‘이민자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쪽 부터 태선(太善) 45세 中길림성 출신 1999년부터 거주. 펀핏 시팍티 41세 태국 북부지방 출신 1999년부터 거주. 람티타이 29세 베트남 호치민 출신 2006년부터 거주. 진주(알탄소브드) 27세 몽골 울란바토르 출신 2006년부터 거주.)

-한국으로 시집오게 된 이야기를 해달라.

태선: 중국에서 결혼에 한번 실패한 후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인천에 오게 됐다. 돈을 벌 욕심으로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던 중 아는 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돈 모으는 재미로 살았지만 불법체류인 탓에 항상 단속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남편은 자상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제결혼이 많지 않았지만 중국보다 한국이 훨씬 살기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

펀핏: 사촌이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줬다. 나는 태국에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태국으로 와서 만났다. 2년 정도 연애를 하다 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 결혼 초기 5개월 동안 경기도 포천에서 살다가 남편 직장을 따라 인천으로 왔다.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2학년 된다.

람티타이: 한국으로 시집 온 친구의 소개로 2006년에 결혼했다. 지금 16개월 된 아이가 있다. 처음 시집 와서는 시어머니와 따로 살다가 입덧이 심해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진주: 스물 세살 되던 해 한국에 아는 사람이 남편을 소개시켜줬다. 소개 받은 지 한달 만에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지금 14개월 된 아이가 있다.

-결혼 생활은 어땠나.

태선: 한국에 온지 5년이 지나 결혼해 한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남편의 세 아이들도 나를 많이 받들어줬고 남편도 내게 항상 고맙다고 했다. 둘 다 재혼이어서 아직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없어서인지 국적 신청을 하고 2년이 지났지만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그 점은 아쉽지만 한국 생활은 무척 만족스럽다.

펀핏: 막상 시집을 왔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많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 입덧이 심해 힘들었다. 남편이 많이 도와줬다. 말은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시어머니가 동네 할머니들을 모시고 와서 며느리가 예쁘다고 하는데도 답답하기만했다.

람티타이: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조금 공부했지만 어려웠다. 처음에는 남편과 둘만 살았는데 임신을 한데다 말도 안통해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심심했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지금은 시집을 간 아가씨가 말을 가르쳐줬다.

진주: 말이 통하지 않아 심심했다. 신혼 때는 네살 된 조카와 함께 공부했다. 4살짜리가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줬다. 임신하기 전에는 카메라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도 했었다. 지금도 항상 일하고 싶다.

-생각했던 것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

태선: 언어 표현이 달라 오해가 생기는 일을 많이 봤다. 어떤 친구는 ‘화났어?’라는 표현을 몰라 ‘혼나?’라고 해 남자친구와 싸우기도 했단다. 또 한국 시부모님들은 아들을 좋아해 딸을 임신했다고 하니 표정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친구는 시부모 때문에 애를 낳기 싫다고 괴로워했다.

펀핏: 태국 음식은 맵지 않는데 한국음식은 매웠다. 음식 부터 의상 하나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었다. 10년 전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태국에서 온 친구들이 별로 없어 동네 이웃들과 친구가 됐다.

람티타이: 음식이 다른 게 가장 힘들었다. 김치, 된장찌개 등 하나도 먹지 못해 베트남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곤 했다. 그럴 때 가족들이 ‘왜 밥을 안 먹느냐’고 했다.

진주: 식탁이 아닌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게 곤욕스러웠다. 처음 몇 달은 김하고 밥만 먹었다. 지금은 몽골 친구들과 만나 애들 키우는 얘기도 하고 그런다.

-교육, 문화 등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인가.

태선: 아직 국적이 나오지 않아 힘들다. 한국에 산지 10년이 됐지만 홈쇼핑 자동 주문도 못하고 보험도 가입할 수 없다. 또 내가 만든 음식이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을까 하는 걱정이 항상 있다. 때로는 입맛을 맞추려다 보니 스트레스도 받는다.

펀핏: 두 아이들에게 엄마의 나라에 대해 가끔 알려주고 있지만 걱정스럽다. 다른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 하나 못하나를 따지지만 외국인 엄마들은 혹시 아이가 왕따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한다. 간혹 다른 여성 결혼이민자들의 아이들이 ‘엄마가 한국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남편과 다투는 일도 간혹 있었다.

람티타이: 16개월 된 아이의 교육 문제도 신경 쓰이고 앞으로 일도 하고 싶다.

진주: 처음 시집 와 음식이 입에 안맞아 고생하면서도 한국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몽골 음식을 해 놓으면 냄새를 맡아보고 거북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그런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한국 남자와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고국의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태선: 처음와서 가장 고생스러운 부분이 언어다. 결혼을 한다면 기초는 배우고 한국에 오는 것이 좋다.

펀핏: 결혼을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을 잘 살피지 않고 급히 결정하면 안된다. 다행히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 살고 있지만 주변에 힘들어하는 친구도 많아 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쉽게 한국으로 시집오라고 할 수가 없다.

람티타이: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베트남 남자보다 한국 남자가 더 낫다. 우리 아가씨처럼 가족들이 많이 배려해주는 가족이면 좋겠다.

진주: 한국으로 시집 간 사례 중 실패한 사례를 부각하다보니 다 그렇게 사는 줄 안다. 살아보면 참 좋은 사람이 한국 사람인 것 같다. 정리=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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