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터뷰에 실명을 거론하는 것을 극구 사양했었다. 지난 12일 장기기증운동본부 인천본부 후원행사장에서 만난 손동환(52·남동구 만수3동)씨는 15년전인 1993년 당시 29살 청년에게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줬다.

주머니속 물건도 아닌 자신의 장기를 남에게 내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옛날 일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알려져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과 ‘이제 곧 크리스마스’라는 기자의 어줍잖은 설득에 겨우 손씨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사진촬영에 임했다.

“날짜는 기억합니다. 저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중요한 날이지요. 오히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새로운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슴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1993년 11월18일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손씨는 1, 2차 검사를 모두 마친 뒤 자신의 왼쪽 신장을 적출했다. 양쪽 신장질환을 앓고 있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20대 청년에게 신장을 준 것이다.

신장을 기증받은 사람의 신원은 규칙상 비밀이 보장돼 있다. 물론 기증받은 사람에게도 누가 줬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받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얼굴없는 천사이고 산타클로스인 셈이다.

“수술 당일까지 어머니는 모르셨어요. 주변에서 난리였죠. 왜 그런걸 하느냐고. 그래도, 누군가 죽어가는데 내가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로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손씨는 이미 1979년부터 현재까지 200여회가 넘는 헌혈을 해오는 등 남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서는 성격이었다. 성당 주보에서 우연히 본 장기기증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기증을 결정한 것이다.

멀쩡한 신장 하나를 떼어냈다니 몸에 이상이 있지는 않을까. 손씨는 씨익 웃어보인다.

“건강이요? 저 1년에도 6~7번씩 마라톤대회 풀코스를 뜁니다. 지난 4월에는 울트라마라톤에도 참여해 완주했구요. 그저 줄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줬고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사는 겁니다.”

지금은 개인적 사정으로 잠시 쉬고 있지만 그의 본래 직업은 연극배우다. 각종 봉사활동을 나가면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삐에로 복장을 하기도 한다.

“이 다음에 생을 마칠 때, 나라는 사람의 연극이 희극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삽니다. 장기를 내준 일은 그저 내 삶의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로인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운동에 동참했으면 합니다.” 김요한기자 yohan@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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