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천시 여성단체협의회 부설 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는 올해 12월 9일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1998년 7월 가정폭력 특별법이 제정된 해 12월 문을 연게 벌써 10년이다.

우리나라는 10년 전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가정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의료지원, 법률지원, 보호시설 연계 등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정의하고 있는 가정폭력이란 가정 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구성원 사이의 모든 폭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은 물론, 자녀의 부모에 대한 폭력, 형제간의 폭력, 아내의 남편에 대한 폭력 등을 망라한다. 아동 학대 등과 아울러 심한 욕설과 같은 언어적 폭력(폭언) 및 의심도 정신적 폭력에 포함된다.




(안전한 밤길문화 조성을 위한 캠페인.)

현재 인천 지역에는 성폭력 상담소와 가정폭력상담소 등 건강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상담소가 10여 개 상담활동 중이다. 이 중 여성단체협의회 부설 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가 인천에서는 가장 먼저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정폭력상담소로 시작했다가 지난 2002년 성폭력상담소를 개소, 통합상담소 역할을 하고 있다.

상담소는 지난 10년 동안 총 2만4천283건의 상담을 실시했다. 이 중 74.9%는 여자였으나 남자 상담객도 25.1%로 적지 않았다.

올해만 해도 가정 문제로 인한 1천517건의 사례가 접수됐다. 이 중 가정폭력에 관한 상담이 827건으로 54.5%, 일반상담이 690건으로 45.5%였다.

가정폭력의 경우 배우자에 의한 폭력을 호소하는 사례가 전체 가정폭력 사례의 92.5%를 차지할 만큼 높았다.

과거에 비하면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69.6%가 신체학대일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체폭력으로 인해 상담소를 찾은 사례 대부분은 1~2회 폭력이 아닌 지속적인 피해(53.8%)로 견디기 힘들어 상담을 원하는 경우였다.

정서학대가 22.4%로 뒤를 이었다. 부부 문제에 있어 아내의 친정 일을 들춰가며 다른 집안과 비교를 한다던가, 집안 내에서 아내를 따돌림하는 경우도 있었다.

혼인기간별 분류에 있어서는 10~20년을 함께 산 부부간 갈등이 30.4%로 가장 높았고 3~10년도 29.5%였다.

20년 이상을 한 집에서 산 부부들도 갈등을 겪고 상담을 받게 된 것이 22.9%나 됐다.

성폭력상담소에도 올해 1천144건이 접수됐다. 인천지방법원으로부터 상담 위탁을 받은 청소년 성폭력행위자들이 많은 수를 차지해 전체 상담의 71%이상은 남자 내담자였다.

이들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소는 치료프로그램 및 예방 교육, 행위자 교정프로그램, 캠프·워크숍, 의식교육, 연구회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가정폭력 행위자 교정교육은 행위자와 피해자 가족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폭력 및 갈등 해결을 위해 개별적, 집단적, 전문적, 지속적인 상담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법원의 상담위탁자 및 검찰의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자 등도 이 교육을 거쳐야만 한다.

또 부부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매년 부부캠프를 떠나고 있다. 이 캠프에서 갈등을 겪는 각 부부들은 집을 떠난 자리에서 마음을 터 놓고 그동안의 문제에 대해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짧은 여행만으로도 갈등이 해소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만큼 각 상담원들에 대한 자체 교육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상담소 홍희자 소장은 “지난 10년을 상담해 온 마음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동등한 인격체로 배우자 존중”

홍희자 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 소장

“부부 문제에 왜 참견하느냐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인천시 여성단체협의회 부설 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 홍희자(65) 소장은 상담소의 10년 역사를 함께한 산증인이다. 10년 전 가정폭력방지법이 생기면서 상담소 문을 열었을 때만해도 ‘남의 집 일에 간섭말라’는 반응이 컸다. 특히 상담소를 찾는 여성들의 남편들은 대부분 그랬다. 부부를 비롯한 가정의 문제는 내 놓기 부끄러운, 숨겨야할 일로 치부됐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나면서 부부 및 가정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변했다. 홍 소장은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과 부부가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과거에 비하면 상담소를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고, 상담을 원하는 남편들도 적지 않아요.”

그러나 언어폭력은 오히려 심해졌다. 신체적 폭력이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폭력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가정이 깨질 위기에 처한 사례는 현저히 줄었지만 정서적 폭력은 되레 늘었다는 것이다. 말로 상대의 약점과 치부를 공격하면서 사이가 벌어진 사례는 부지기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갈등도 처음에는 정서적 폭력으로 시작된다.

“직접 폭력으로 인한 상담은 절반가량 줄었지만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해 상처를 주며 결국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가 많아요. 부부싸움을 해도 서로의 약점을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홍 소장은 이들과 함께 화해의 기술을 찾는다. 갈등을 겪는 부부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게 아닌 ‘지지’를 보내주는 게 10년 상담의 비결이란다. 부부 양쪽 입장의 가운데에서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최고의 상담이라는 것.

“못살겠다고 이혼하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과거에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방법이 잘못됐던 것은 아닌가를 함께 고민해보는 거죠. 어느 한쪽의 희생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10돌을 맞은 가정·성폭력상담소는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폭력이라는 단어를 빼고 가정·성상담소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유지해 어떤 일로든 상담소를 찾아올 수 있지만 ‘폭력’이라는 단어가 상담소의 문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루기 위한 기준은 없어요. 물리적 폭력만이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죠.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상담은 계속될 겁니다.” 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