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 풀도 안 날 사람 만 정치하란 말이냐….”

선거가 끝났지만 당선된 사람이나 낙선한 사람들을 상대로 현행 선거법 상 기부제한 규정을 설명하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면 빠져나갈 사람은 거의 없다라는 게 그들의 주장.

그만큼 현행 선거법이 일반사람들이 사회상규에 맞춰 살아가는 방식과 동떨어진 규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된 입법 취지는 사실 이랬다.

고무신 선거·막걸리 선거, 매표(買票)를 위한 현금 봉투의 기억, 나아가 유권자들에게 선심을 쓰고 그 대가로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경로당이나 고아원, 그리고 불우이웃들에게 선거를 염두에 둔 금품 공세를 펼치는 행위를 막자는 취지였다.

반면 그런 풍토에서 정치인들이 겪었던 고통도 입법 과정에 한 몫 했다.

걸핏하면 지역유지를 자처하며, 혹은 표를 쥐고 있다는 식의 영향력을 내세우며 행사 경비나 활동비를 요구하는 사례가 바로 그 것. 게다가 지역구 내 유권자들의 경조사에 안 갈 수 없는 처지의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부조 또한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처지였다.

결국 정치인들 스스로 돈 안 써도 되는 명분을 만든 것이 현재 선거법 상의 상시 기부제한 규정인 셈이다.

‘돈은 묶고 입은 풀고…’라는 구호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바뀌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인터넷으로 선거 풍향을 재는 요즘 세상에 누가 돈 받고 표 찍어줄 사람이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나아가 정치인도 사람인데 사람 노릇 해야 할 일과 선거법 위반의 간극이 너무 좁다는 불만이고 지나치게 포괄적인 규정으로 공연한 전과자를 양산하거나 상호작용인 선거에서 경쟁자 간 이전투구식의 잡음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

게다가 기왕의 정치인이라면 또 그럴만 하지만 이른바 정치 초년생들에게 선거법 상의 상시기부제한 규정은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제약이다.

정치 입문이라는 행위가 말처럼 쉽지 않아 대체로 내심의 의사로 간직하면서 좌고우면 해야 하는 처지인데 어느 날 부터 못박고 “나 이제부터 정치한다. 그러니 돈 안 써도 이해해라”라고 선언할 수도 없어 이 규정을 지키려면 자칫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공천을 받을 지 말지조차 막연하고 나아가 선거 출마 여부는 더더욱 내 뜻대로 안되는게 정치아닙니까. 그런 정치 초년생에게 정치에 나서려면 일체의 경조사 부조도 하지말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밥 값 한 번 내는 일조차 안된다면 사회 생활 포기하란 말과 뭐가 다릅니까.”

평소 정치권 소식에 관심이 적지 않아 그저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을뿐인 박모(45)씨는 “주변 이웃들을 살피고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관심 기울인 사람은 절대로 정치를 금지 시키는게 현재의 선거법 아니냐”고 비난했다.

더욱이 사회양극화로 가진 자들의 기부 문화가 더욱 아쉬운 터에 정치 입문의 가능성 있는 사람들의 경우 기부 문화는 남의 나라 얘기가 되는 것도 또 다른 폐해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정치 행위가 여론을 따라가는,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이 전제라면 이제 선거법의 몇몇 조항들도 다시 손 봐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다.

권혁철기자 micleok@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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