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8.21 수 09:42
2006년 5월 일간신문 창간 -> 2016년 11월 인터넷종합일간지 및 주간지 재창간
                    2018년 12월 15일 일간지 재창간
상단여백
HOME 교육 학교이야기
세계 최대 차이나타운 건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곳의 차이나타운은 세계에서 가장 크기로 유명하다. 화교들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고 성장을 이뤄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지에 둥지를 틀었다.

같은 황인들이 살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많은 연을 가지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화교들이 성장하기 까지도 많은 고난이 있었는데, 다른 민족, 더군다나 백인들이 주를 이루는 미국에서의 고난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화교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건설해낸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이 대부분 쿨리(苦力)의 유입으로 크게 늘어난 것처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화교들도 바로 이 쿨리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는 식민지 국가 건설을 위한 노동력으로서 쿨리들을 수입했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


화교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골드 러쉬(Gold Rush) 때이다. 미국 초기의 화교들은 홍콩을 통해 쿨리로서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1862년 미국에서 흑인노예가 해방되어 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이것은 백인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그동안 재산으로서 부려온 노동력들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백인들은 쿨리들을 고용하여 황금 채굴에 열을 올렸다. 고용이라고는 하지만 초기 화교들은 적은 돈을 받았고, 사라진 흑인노예 대신의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교들은 백인들의 시기심을 살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화교들에게 뚜렷한 개척정신이 있었던 것도, 유창한 영어실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화교들은 부지런했고, 근검절약했으며, 결정적으로 고용주에게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골드 러쉬로 인해 금광 근처에 새로운 도시들이 형성되고 금 채굴로 인해 성공한 백인들은 화교들의 임금을 올려 주었다. 또한 화교들은 금 채굴뿐만 아니라 제조업, 상업 등의 분야로 나아가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19세기말 미국 경제가 악화되자 백인 고용주들은 저렴한 임금의 화교들을 채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에 실직한 백인들은 황인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또 정치가들이 그 군중의 적대감에 불을 지펴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 때 많은 화교들이 아시아로 피난을 가 1890년에는 10만7천488명이었던 화교의 수가 1920년에는 6만1천639명으로 줄어들었다.


다시 화교들이 미국에서 성장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고 인종차별 정책이 사라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성장해 왔다. 현재 현지 화교들의 자연증가와 불법 거류자 제한을 완화함에 따라 미국 화교의 수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미국 화교들은 대부분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휴스턴, 시카고, 하와이 등의 지역에도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




미주 이민때 ‘가장 선호하는 국가’

캐나다의 화교



밴쿠버 차이나타운은 미주지역에서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큰 규모의 차이나타운이다. 비록 차이나타운의 규모에 있어서는 미국 화교가 앞서지만 경제적, 사회적 진출로는 캐나다 화교가 한 수 위이다.


캐나다는 미주의 나라들 중에서 가장 화교들이 살기 좋은 나라이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지역의 화교들 중에 미주 이민 시에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순서이다. 물론 미주지역 중에서 살기 좋은 편이라는 것이지, 화교들에게 있어서 아시아보다 살기 좋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캐나다의 화교들은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비해 영향력이 있는 편이다.


미주 지역의 대부분의 화교들이 1차 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대부분인 반면에, 캐나다는 무역, 금융, 여행, 문화,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 진출하고 있고, 또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또한 정치 쪽에도 많은 진출이 있어 1999년에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에이드리엔 클라크슨(Adrienne Clarkson)은 홍콩출신의 화교이며, 같은 해 브리티쉬 콜롬비아 주(British Columbia 州)의 주도(州都)인 빅토리아의 시장으로 화교인 류즈창(劉志强)이 당선되는 등 캐나다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도 미국과 같이 골드 러쉬(Gold Rush)로 인해 화교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화교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물론 백인들의 인종차별이 존재했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단 미국처럼 경제난으로 인해 실직자들의 미움을 살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캐나다는 정책적인 면에서 인종차별이 덜했던 것이다.


화교들은 다른 미주지역에 비해 비교적 입국허가가 쉬운 캐나다에 모여 살기 시작해 주로 빅토리아와 밴쿠버에 정착했다.


캐나다 화교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어, 쑨원(孫文)의 혁명기금을 모을 때에도 정부나 기타 사회단체의 제약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다.

오타와 주(Ottawa 州)에서 약 20년간 유태인, 동인도, 서인도, 중국에서 이민하는 것을 제한하였지만, 다시 인종차별적인 법안을 수정하였고, 1960년에 이르러서는 인종차별적인 이민 규정을 폐지하였다.

이로 인해 화교의 수는 더욱 늘어났고, 지난 2007년에는 캐나다 화교의 수가 약 101만명에 달했다.


캐나다 화교들은 그저 인구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계승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어 다음 세대를 재중국화시켜, 중국어는 퀘백 주(Quebec 州)를 제외한 영어권 지역에서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가 되고 있다.

캐나다의 화교들이 비록 소수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다양한 면으로 두각을 보이자 정부기관과도 많은 연계를 이루고 캐나다 사람들의 화교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장·이승훈 연구원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인천시 남동구 논고개로 77 에코타워 BD 503호  |  대표전화 : 032-833-0088  |  팩스 : 032-833-0014  |  사업자등록번호 : 771-88-00584
등록번호 : 인천 아 01279  |  등록일 : 2016.10.26  |  발행·편집인 : 남익희   |  사장 : 이성수  |  편집국장 : 김계중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정훈
Copyright © 2019 인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icnp@incheonnewspaper.com

NDsoft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