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주민으로 사는 게 쉬우면서도 한편으론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임을 알게됐습니다.”

인천시 서구 연희동과 심곡동 일대 주민들이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교육공동체를 통해 똑똑한 학부모, 현명한 주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명서를 쓰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등 시민단체와는 다르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가사 일을 도맡는 주부들이 중심이다.

독서교실을 시작으로 어린이사업과 회원사업까지 실시하는 등 공동체 복원을 지향한다. 유명한 포털사이트 이름이 연상되지만 ‘다음’은 ‘next’ 란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나 다음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까지 배려한다는 의미도 있고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오현정(41) 대표는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품앗이를 꿈꾸며=이 모임의 연혁은 2003년으로 거슬러간다. 연희심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동네아이들을 모아 독서교실을 열게 된 게 계기가 됐다. 오 대표는 부녀회에 협조를 구해 광고문을 붙이고 사무실을 빌렸다. 15명의 초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이 만났다.

3일에 불과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엄마들이 어린이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꾸려졌다. 이때 회원은 13명 정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면서 교육품앗이의 가능성을 키워나갔다. ‘최열 아저씨의 환경이야기’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살림의 논리’ 등 이들은 교육, 철학, 역사, 문학, 생태, 환경, 결혼 관련 책을 꼬박꼬박 읽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회원들은 2004년 굴포천살리기 시민모임이 주관한 하천생태학교에 참여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에서 벗어나 외부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교육과 환경 등에 관심이 커지면서 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꾸리게 됐다. 한 달에 2번 책을 읽는 독서모임을 정기모임으로 하고 기독교사회복지관 강의실을 빌려 다른 활동도 모색했다.

이후 어린이도서연구회, 인천녹색연합, 인천생협 등에 가입하는 주부들이 생겼고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MC스쿨에 참여하는 회원들도 생겼다.

독서 중심의 정기모임 외에도 식품안전, 어린이와 책, 학교운영위원회의 역할과 관련한 강의도 듣게 됐다. 부정기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놀이를 찾아주자는 취지로 동네 놀이터에서 전래놀이마당을 열기도 하고, 황토염색이나 좋은 책 전시를 하는 등 어린이사업도 병행했다.

회원이 제안해 한 달에 한 번 동네 하천인 공촌천 기행을 했다. 또 강화도 오리입식, 덕포진 교육박물관 나들이, 문화공연 관람 등에 아빠들까지 참여하면서 회원들의 우의도 높여갔다.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길=열의가 높았던 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아파트놀이터에 컨테이너 도서관을 만들자’ ‘학교도서관을 바꿔보자’ ‘주말학교를 만들자’ ‘동네에 소외된 아이를 품어안자’ 등 무성하게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를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일부 핵심회원들이 이사를 가거나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모임이 권태기(?)에 접어들었고 정체성도 애매모호해졌다.

더불어 이 모임은 주민동아리로서 복지관이나 주민자체센터 등과 같이 지역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 고민이 미약했다고 평가했다. 공간을 활용하는 문제들, 이를테면 주민자치센터나 청소년 문화의 집 등 기존 공간을 활용하는 데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교육품앗이, 동네 도서관 등 당초 하고자 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회원들의 꿈과 의지가 약해진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2007년부터 정기모임을 월 2회로 늘렸고 한 번은 독서토론, 또 한번은 친환경적 삶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운영체제를 돌렸다. 공개적인 회원모집도 시도했다. 동네 어린이집 바자회를 통해 회원모집 선전물을 나눠주는 등 활동을 통해 새내기 회원이 9명 정도 가입했다.

신입 회원들과 함께 동네 공원에서 ‘환경과 이웃을 생각하는 녹색마당’을 치루면서 회원들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런 것을 해보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저마다 품게 됐다. 실현이 될 수 없을지언정 자기가 살고 있는 터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이다. 가뜩이나 서구 지역은 이주율이 높은 편이고 일하는 엄마가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인 터였다.

자기 사는 데만 바빴던 철부지 엄마들이 이웃과 마음을 나누고 제 사는 곳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만큼은 큰 성과다. 이들은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아니거니와 ‘큰 눈’을 가진 똑똑한 주민들이 모여 공동체를 찾아가는 과정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학원 내몰린 아이들 지역에서 가르쳐야”

오현정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대표

“돈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13살과 7살 두 자녀를 둔 오현정(41) 대표 역시 여느 주부처럼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큰 관심이 있다.

사교육에 내몰리는 아이들의 현실은 물론 학원비를 벌기 위한 방편으로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엄마들을 생각하면 마을공동체로 가는 길이 더욱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오 대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5만∼6만원선의 학습지 교육을 시킬 뿐 그 외 시간엔 놀이터나 자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다.

왜 꼭 학원에만 아이들을 맡겨야 하느냐는 것이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울 순 없을까? 선배나 동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다양한 삶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가 오 대표의 고민이다.

오 대표는 모임의 회원들이 ‘죄인이 되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고 소개했다.

“아이가 받아쓰기 점수를 형편없게 받아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혼냈다.” “친환경적 먹을거리에 대한 교육을 받고도 자연스레 인스턴트 먹을거리를 찾게 됐다.”

알고 있는 것 만큼 이를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주부들이 나서기 힘들 때가 많았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의 식단을 보면 한숨만 난다.

오 대표는 집에서 먹는 한끼가 찌든 식단의 해독기능만 하는 것에 위안을 삼을 뿐이라고 한다.

학원이나 각종 매체에서 경쟁하고 소비하는 가치를 미덕으로 배우는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한 오 대표가 서구에 온 때는 1993년. 남편을 따라 온 인천에 정을 붙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15년이 지났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주민들이 느는 등 이주율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특히 삶의 전부가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데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오 대표는 진단했다.

녹색 삶을 꿈꾸며 교육문화공동체의 ‘수혜’를 받은 아이들이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에 비해 미래에 어떻게 적응하고 정착할지 오대표는 관심이 높다고 한다.

차분한 말투의 오 대표는 지난 해 대학원에서 상담 관련 학위를 받아 현재 심리상담 활동도 하고 있다.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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