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슈-닻 올린 ‘인천미술은행’…제대로 가고 있나

인천시가 이달 들어 공표한 연내 ‘미술은행 제도’ 시행을 둘러싸고 지역 미술계 관심이 뜨겁다.인천문화재단이 ‘인천미술은행’ 운영주최로 오는 10월까지 운영위원회 구성과 운영방안을 확정하는 한편, 5천만원의 예산으로 하반기에 미술품을 구입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앞서 재단은 지난해 작가들의 창작활성화 지원을 내걸고 ‘미술품 구입’사업을 시행, 4천500만원을 들여 14점의 미술품을 사들인 바 있다. 미술은행 제도는 이의 연장선상으로 지난해 도입된 정부의 미술은행을 지자체에서 실행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에도 미술은행의 ‘인천적’인 취지와 방향성 설정을 빈공간으로 남겨놓은 채 시가 선언적으로 제도 시행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수혜자격인 작가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여기서, 지난 1년간 정부 미술은행 운영에 관여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과제는 미술은행의 정체성에 대한 미술계의 인식공유”라는 지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업의 방향성

인천문화재단은 인천미술은행의 현재적 관점을 작가지원 단계에 초점, 대여사업 여건마련을 위한 미술품 구입에서 출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이에따라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작품구입을 위한’ 운영위원회와 추천위원회, 심사위원회를 구성, 연내에 5천만원어치 작품을 사들일 계획이다. 이어 내년에는 예산 규모를 최대 2억원으로 늘려, 컬렉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구상이다. 즉 그 시점에 다다르면 시민 향수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대여사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초창기 시행착오를 겪었던 ‘사업초기 작품 집중 확보(1천점), 이후 매년 200점 정도 구입’을 추진 과제로 삼은 무모함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다.더구나 지난해말 재단이 미술품 구입 결과를 발표했을 당시 지역 화단 일각에서는 어떠한 방향성에서, 어떤 근거와 기준에 의해 작품을 선정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데 강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지난 6월20일 재단은 지역 작가와 평론가,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 ‘인천미술은행 역할’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다양한 제언을 모았다. 그자리에서는 컬렉션 선정, 절차의 투명성, 전문인력 확보, 수장고 및 대여 등 요소요소 짚어야 할 사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결론적으로 이날 토론자들은 개별 사안들이 재단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하나씩 풀어가야한다는 쪽으로 맺었다. 미술시장 도입에 대해선 원론적으로 환영하되, 급하게 시행하지 말고 확실한 철학적 방향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지역 미술계가 어이없어 하는 부분이 일견 세미나까지 열고 제언을 들은 재단이 서둘러 시행을 발표하는가 하면,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작품을 구입하겠다고 밝힌 대목이다.정정엽 인천민예총 예술위원은 “지역내 합의된 원칙도 없이 작품구입부터 실행하는 것은 결국 (잘못된) 이론의 틀을 갖춘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며 “이는 추후 작품의 질, 작가지원, 지역에서 필요한 예술향유권 등을 풀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작품 구입은 가장 후순위에 두어야하며 우선은 예술적 담론을 모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병국 인천미술협회 이사도 “한차례 의견개진에서 끝내지 말고 이번에는 주제발표 형식이 아닌 난상토론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받는 작가와 향유권자인 시민, 그리고 전문가들이 모여 제도의 목적성, 운영원칙과 실행방안 등을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컬렉션 선정의 원칙

지난해 재단에서는 미술품 구입 대상으로 인천미협의 ‘인천아트페어’와 재단 자체기획전 ‘21세기를 여는 문화의 창’ 출품작을 선상에 올려놓았다. 미술견본시장을 통한 현장구매와 (재단 시선으로 바라볼 때)인천을 이끄는 작가들이 참여한 기획전을 통해 대상의 폭을 넓히는 한편,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 재단의 입장이다.
이에대해 작가들은 곳곳에 허점이 있다고 어필한다.

우선 두 행사의 수준과 당위성에 대한 객관적인 고민이 전혀 없이 중앙의 방식을 어설프게 흉내냈다고 비판한다. 더우기 구입 결과를 놓고 양자를 연결시켰을 때 외부적으로 드러난 기준이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컬렉션 선정 원칙으로 넘어가면 아연실색을 감추지 못한다. 구입절차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이 선정에 대한 일관성있는 원칙 마련이기 때문이다.최병국 위원은 선정 대상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안을 수립, 선택과 집중의 선후를 정하자고 제안한다. 즉 ▲지역에 공헌한 원로작가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작가 ▲향수자 시민들 입장에서 본 대중성 있는 작품 ▲(실험성이 강한)신예작가 등 여타 경우의 수에 따라 분류, 연차적인 지원에 나서자는 의견을 냈다.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는 아예 동시대의 미술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쪽에서 접근하자고 제시한다.전통적인 창작자와 수용자라는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물질적인 단위인 작품에만 대상을 고착시켜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회화, 조각 등 전통적인 장르에 의존하는 작가에 국한한 지원은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실험주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하는 것”이라며 “무형의 정신을 다수가 저렴하게 공유하는 차원에서 미술품이라는 결과물이 아닌 정신의 측면을 아우르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는 “지역 미술인들을 포함한 관련주체들의 생산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추상적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 컬렉션의 질을 보장하는 쪽으로 주체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풀었다.

▲선정절차와 투명성

재단은 올해 운영위원회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넓히기 위해 인천작가를 포함해 평론가와 중앙의 미술은행 전문가를 위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인천예총과 인천민예총으로 운영위원을 한정한데 따른 비난을 다분히 인식한 해법이다.미술계에서는 운영위원의 확장에 대해선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위원들이 투명하게 실행할 수 있는 운용방안 마련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정엽 위원은 “추천시 해당 작가를 선정한 원칙(실험성 혹은 완결성 등)이 있어야 하며, 공모시에도 구입목적을 밝히는 예술적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인맥과 학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예컨데 추천위원의 직속 선·후배나 제자를 선정하는 것을 배제하는 등 규정을 명시할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 심상용 교수는 “지역 인사들의 추천이 다른 과정 검증없이 최종 결과가 되도록 허용돼서는 안된다”며 이를 위해 검증절차에 반드시 외부 전문가의 평가가 포함돼야 한다고 안을 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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