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60년대 이후 경공업단지의 중심지로 노동운동의 메카였으며, 87년 6·10항쟁과 6·27 선언의 도화선이 된 86년 5·3 항쟁이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양재덕(59) 인천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부이사장은 오는 9월 발족키로 한 ‘인천 민주공원 및 민주회관 건립추진위’의 본격적인 활동〈본보 7월24일자 4면 보도〉을 앞두고 공원설립에 지역의 역량을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떠맡았다.

양 부이사장은 민주공원 건립 배경에 대해 무엇보다 인천이 지난했던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차지하는 비중이 컸음을 강조한다. 일제시대 인천항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에 이어 산업화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의 주요세력 중 하나인 노동운동이 활성화됐던 곳으로, 민주화 운동의 요람이라는 것이다.

민주공원 사업은 지난 2001년 당시 ‘민주화운동정신계승 인천연대’가 공론화 하기 시작해 2004년 부터 본격 나섰다. 민주공원은 인천시의 다양한 공원계획 중 하나로 시가 조성하게 되는데 관건은 민주회관 건립 비용이다. 계승사업회는 이미 민주공원을 건립한 부산과 광주지역에서 처럼 국고지원과 시비, 모금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민주공원은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에 대한 시민의식을 공유하는 기념비적 공간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의 명소로 자리할 것입니다. 나아가 시민들과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인천의 민주화운동을 자연스런 배우게 될 것입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그는 84년 계양구 작전동 해태음료에 노동자로 들어가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88년 인천노동상담소 소장, 92~96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의장을 지냈다. 73년, 90년 두 차례 투옥당하는 등 민주화운동으로 치열했던 삶이 지금의 민주공원 건립 추진의 동력이 됐다.

IMF 사태후 98년부터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장으로, 숭의동 옛 공설운동장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실업극복운동에 전력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양 의장님’으로 불리며 인천지역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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