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대에서 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한다.’

인천시 서구 가좌1동 영창테크노타운 2층에는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4년 9월 센터가 이 건물에 입주, 꼭 4년을 채웠다. 660㎡(200여 평) 규모의 센터는 이주노동자 전용 도서관, 진료소, 컴퓨터실, 한글강의실 등으로 구성됐다.

센터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시(詩)와 사진 등을 볼 수 있거니와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도서와 전통의상들도 소개돼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자, 한편으론 아시아문화의 소통의 장이 되기도 하다.

2005년 3월엔 ‘희망세상 치과’ 가 개소, 매주 일요일이면 이주노동자들이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모인다. 센터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2004년 11월부터 시범진료를 시작, 2008년 9월 현재 총 170차 진료가 진행됐고, 매주 일요일마다 20∼3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찾아오는 등 누적환자수가 1천925명에 달한다. 그야말로 한결같다.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온 이주노동자들은 센터의 프로그램은 물론 임금체불과 같은 노동문제 상담을 겸하게 됐고, 상담차 센터를 찾은 이주노동자들이 진료까지 받는 등 그들을 위한 공동체 공간이 됐다.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소속 치과의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일요일 오후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치료를 실시하고 있다.)
진료소가 개소할 무렵, 이를 알리기 위해 센터측은 인천시 서구 거북시장, 김포 등 이주노동자가 많은 곳을 찾아 홍보물을 뿌렸는데, 인천 전역은 물론 수도권, 심지어는 충청도 인근에서도 진료를 받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진료를 위한 체어수도 2대에서 4대로 늘었고, 건치 소속의 담당의 2∼3명과 자원활동가들이 9개 팀을 꾸려 매주 일요일 오후 2∼6시까지 이주노동자들의 치아를 살핀다. ‘희망세상 치과’의 고승석(41) 소장은 “인천은 이주노동자들이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이 있는데, 이들이 체류관계 등에 따라 건강보험증이 나오지 않는 경우 이가 아파도 치과에 가는 것이 힘든 실정이었다”며 “건치 인천지부 회원들간의 논의를 거쳐 진료공간을 만들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치료가 충분한 데도 병원을 찾는 것을 기피하거나 치료 대신 치아를 뽑아달라고 요구하는 게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치과 진료비도 비싼 데다 사업주 눈치를 보는 이주노동자도 많아 이가 사리거나 아픈 증상이 있어도 참거나 뽑는 것으로 갈음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단다.

희망세상 치과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진료비로 일천원을 받는다. 일반 치과에 비하면 정말 껌값에 불과하지만, 운영비의 극히 일부라도 이주노동자들이 낸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오늘은 30명이 넘었다.’ ‘스켈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진료도중 갑자기 2개의 체어가 안되다가 5분후 다시 작동되네요. 접촉불량인가요?’

센터와 건치 인천지부 홈페이지엔 희망세상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운영일지 등 기록이 정리되고 있다. 센터나 건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고승석 소장은 한편으론 건치 회원들이 협찬과 후원 등을 통해 운영하다보니 일반 치과보다 진료 기계의 질이 다소 떨어지거나 진료가 팀별로 일주일 마다 진행돼 기계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연속적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은 환한 표정으로 이들에게 화답한다는 게 센터측의 설명이다. “너무 이가 아파 뽑아달라고 했는데, 신경진료를 통해 말끔히 해소됐다”며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비지타(26)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모국에 돌아간 비지타씨는 자국에서도 받기 힘든 치료였다는 감사의 말을 남겼다.

희망세상 치과는 물론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는 피부색이나 국적에 따라 이들을 나누지 않는다. 국제화나 세계화 담론이 10여 년전부터 무성했지만, 이들의 관심과 실천이야말로 국가간 연대의 커다란 초석이기 때문이다.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인권 사각지대 해소돼야”

김기돈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상담실장

“한국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때 가장 안타깝습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김기돈(33) 상담실장은 이주노동자들의 친구다. 임금체불, 산재, 출입국 단속에 관한 상담은 물론 건강문제까지 이주노동자들의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김 실장은 몇년전 모로코 출신의 한 노동자가 6개월째 행방불명이 됐다가 반신마비 상태로 병원에서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돈을 벌기는커녕 한국에서의 기억도 전혀 떠올리지 못한 채 쓸쓸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병원측은 물론 사업장에서도 ‘나몰라라’ 식으로 나와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에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인천엔 약 5만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있고, 비자가 있는 경우는 3만6천여명 정도 된다고 김 실장은 추산하고 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그들도 인천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은 물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침해돼선 안된다고 한다.

특히 국제협약 등에 따르면 합법체류자 경우에는 자국민과 동등한 수준의 의료서비스가 공급돼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김 실장은 전했다.

한 국가가 성숙하기 위해선 ‘남’(타자)에 대해서 넉넉한 마음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병원에 갈 시간’과 ‘진료비 문제’ 등의 이유로 의료기관을 찾는 데 등한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상담을 위해 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 의료, 생활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한국인 노동자와 매우 다른 편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언어문제는 물론 임금체불 등 구제 절차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정이다.

또한 자칫하다간 미등록자나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김 실장은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센터는 그들을 위한 공간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글 교육, 치과진료를 실시하는 한편 아시아 각국 문화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센터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쓴 시가 전시돼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별반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를 게 없고, 똑같은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습니다.”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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