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의 후폭풍이 심각하다. 주변 강대국들은 각기 실익 챙기기에 바쁘다. 이번 북한 미사일 사태로 가장 신바람이 난 것은 일본이다. “김정일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의 발언에서 그들의 속내가 엿보인다. 군사력 증강과 우경화를 위한 좋은 호재를 얻은 일본 내 극우파들은 제 세상 만난 듯하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결의문 통과를 주도하면서 ‘대북강경몰이’에 앞장선 것은 차기 총리가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다.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일본 내 ‘극우 양 날개’로 평가받고 있는 아베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앞장서 이번 사태를 이용했다. ‘대북선제공격론’을 들고 나온 아베의 발언은 ‘전수방위’ 폐기와 ‘평화헌법’ 개정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대북선제공격론’ 발언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일본 군사력의 양적 확장이 아니라 질적인 성격 변화를 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일본이 진짜 군사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공격용 무기의 보유와 공격적인 군사전략의 수립을 제한하고 있는 ‘전수방위’ 개념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신바람 난 것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도 마찬가지다. MD(미사일방어) 추진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고 대북강경정책을 더욱 합리화할 수 있는 구실을 마련했다. ‘안보리 결의 1695’를 확대 해석해서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검색과 나포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진전을 훼방 놓고, 한국 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호기를 잡았다. 미국은 대북 제재에 한국의 동참을 요청하는 한편, 개성공단 사업을 비롯해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한국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에 간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함에 따라, 남북관계 발전을 방해하고 한국이 미국과 떨어져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을 규탄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에 찬성표를 던진 중국의 행보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중국에 사전 통보도 없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중국의 말발이 먹히지 않은데 대한 불쾌감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MD체제 구축과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 일본의 군사력 증강의 명분이 되고 있는 것을 우려해 왔다.

중국과 미국간에 묵계적인 물밑거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양안관계’의 안정과 이를 위한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2008년에 대만 독립선언을 벼르고 있는 천수이볜의 모험을 미국이 통제해주는 대가로 유엔안보리에서 대북결의안 통과에 중국이 협조했을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면 될 수록 매달릴 데라곤 중국밖에 없으니,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중국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안한 셈이다.

결국 손해 본 것은 남·북한이다. 국제적인 비난과 제제의 대상이 된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잘나가던 남북관계가 손상되고, 대북포용정책에도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한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자, 북한은 이산가족상봉행사의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다음번 남북장관급회담 개최도 불투명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가 행동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로 자충수를 두고 있다. 성급하게 대북 쌀과 비료 지원 중단을 결정해버린 것은 대북 지렛대와 발언권을 상실하고 스스로 손발을 묶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남북관계에 금이 가고 남북한이 서로 대립하게 된다면, 한반도문제의 주도권과 발언권은 남·북한을 떠나게 된다. 외세에 의존하고 외세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주변 강대국들이 실익을 챙기게 될 것이다. 작금의 상황과 역사가 교훈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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