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11.곽현숙 아벨서점 대표

“얼마전 누군가가 책이 지겹지 않느냐고 묻는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낯설어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남의 나라말 같았거든요.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줍니다. 살아가게 하는 기운의 원천이 바로 책입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지나온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초입의 ‘아벨서점’을 꼽을 수 있다. 그 거리에서 한집 한집 내려오면서 열고 닫고 또 연 세월이 30년이다. 가냘픈 스물넷의 여인은 어느덧 5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 책에 묻혀서 책과 나누며 살았다. 서점 주인이라는 호칭을 어색해 하는 곽현숙 대표. 그는 한없이 맑은 사람이다.

▲‘내게 가장 가까운 것은 책’

“책을 대하는 이유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속에서 삶을 알게 됐고 신앙도 알게 됐지요. 입의 배고픔보다 안이 허전한 것이 더 힘들지요. 책 속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습니다.”

곽 대표의 이력은 간결하다. 20대 시절 첫 발을 내딛은 헌책방을 한 세대 넘게 그자리에서 지켜오고 있다. 한번의 단절, 혹은 옆집으로의 이전이 있긴 하지만, 기록에 남을 만한 변화는 아니다.“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내게 준 유산이었거든요.”책방을 시작한 근원을 찾아가다보면 아버지와 마주치게 된다고 말한다. 정작 그는 한번도 부친의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6.25둥이로 태어난 직후 부친은 납북, 생사조차 모르고 지내왔다.

“아버지가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책으로 향한거지요.”책방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좋아하는 책속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의 부족이었다. “그것이 나에겐 희생이었어요.”그런데 어느 순간 책정리를 하다 섬광처럼 책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을 한다. “아주 짧은 시간 단어속에 푹 들어갔다 나오는 겁니다.” 책방에 오는 이들은 그리움이 많은데 그 마음들을 받으며 살수 있어 너무 복되다며 환하게 웃는다.

▲어린시절의 일깨움

초등학교 졸업후 강화 교동으로 내려가 1년을 살았다. “평생 도움이 되는 값진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그리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다.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 컸다. 교동은 재가한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다.“시골아버지는 저녁마다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곳에서 자연을 느끼고 경제를 배우기도 했죠. 또 한분 목사님을 만나 야학을 했어요. 어느 공부보다 좋았습니다.”인천에 돌아와 야학으로 배움을 잇는다. 그곳에서도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기자와 대학생이 교사로 와서 사회에 대한 지식을 주었던 것이다.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야학이 그만 문을 닫는다.

야간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했으나 그곳은 구태의연함 그 자체였다. 한없이 무료해진다. “중·고등학교를 나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사회를 배우자. 한달 고민 끝에 자퇴서를 냈습니다.”10대 후반 남보다 일찍 사회를 겪는다. 책 세일즈, 버스 안내양, 그리고 대성 목재 직원까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고 또한 느꼈습니다. 댓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는 없거든요.”그 시절 내내 지탱해준 힘은 책이었다고 회상한다. 쪼들리는 중에도 책을 사서 읽고 시골 집 어머니에게 맡겼다. “그 때 모은 책이 100권쯤 돼요. 그중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의 희생적인 삶을 접할수 있는 책이 여러권 있어요. 우리가 어느정도 회복하면 고마움을 갚기위해 밖으로 내줘야한다는 생각을 묻었습니다.”

▲헌책방을 열다

“이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얻은 답이 책을 좋아하므로 책방을 하자 였습니다.”수중엔 단 한푼도 없었다. 직장에서 사귄 언니가 결혼하려 모아둔 지참금을 선뜻 빌려준다. 창영교회 옆 기독교 사회복지관에서 ‘아벨서점’을 연다. 그때 나이가 스물넷이었다. “세든 집이 팔려 문을 닫고 다시 열고, 6년을 지냈습니다. 사실 신앙에 몰입하는 기간이기도 했지요. 점차 세상을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세상으로 나가자 결심하게 됩니다. 기도를 드렸어요. 당신의 평화로운 자리에서 잠시 나를 내려놓아달라고.”

그의 삶을 버티게 한 또 한 축은 신앙이다. 열 두살 강화도에서 만난 목사는 지식과 더불어 종교를 선물했다.책방을 다른사람에게 넘겼다. 이후 아홉가지 일을 건너간다. 집짓는 공사장 막일에서부터 공장 단순 노동, 교수집 식모살이까지.“한가지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외로워하는 것을 보았죠. 밑바닥에 사는 사람이나 부유한 이들이나 외로움이 끼어들어 존재를 휘드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돌아온 자리

세상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고 보니 서있는 자리가 책방이었다. 배다리 양조장자리에서 아벨서점을 다시 연 것이다. “책방을 알아가면서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수중에는 식모살이로 번 돈 15만원이 고작이었다. 어머니가 40만원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30대를 시작했다.그후 두차례 이전을 한다. 조금씩 내려와 지금의 헌책방 거리 초입에 자리잡은 것은 지난 1995년. 올해로 12년째다.“책은 겉보기엔 무생물 같아도 다가가면 대화가 됩니다. 사람들이 와서 만져주면 곧 순환이 돼요.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 전시장을 준비하며…

곽 대표가 지난해부터 틈틈이 준비해온 일이 하나 있다. 책 전시장을 꾸미는 일이다. 지난해말 외장을 끝내고 내부를 꾸미려 나무들을 사다 놓았는데 진도가 영 안나간다. 소박한 바람에서 출발했다. 이 거리를 찾은 이가 편하게 와서 책을 들추고 따듯함 하나 지니고 돌아갔음 하는 기대에서다. 한가지 더, 헌책방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 마음을 눌러왔다. 뭔가 보상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떨쳐지지 않았다.

“갖고 있는 시집이 4천권쯤 돼요. 시는 끝없이 내면 세계의 메시지를 전달하죠. 10대에 시를 처음 열어보고 너무 뜨거워 덮었습니다. 당시 처지에서 그곳에 빠지면 안된다,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후 애써 외면했죠. 비로소 접한 것이 최근입니다. 소중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들을 전시하려 합니다.”

계기가 있다. 인근에서 3년전 ‘아벨 전시관’을 열었다. 단순히 헌책이 아니라 그안에는 무궁무진한 문화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창고로 쓰던 공간이라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주제를 정해 전시를 이어갔다. 토·일요일에만 운영했음에도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갔다. 의외였다. 일곱차례 전시회를 끝으로 지난해 여름 문을 닫는다.“상설전시장을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다리 거리에 따듯한 곳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올 봄 신학기 바쁜시기를 넘기고 작업에 바짝 몰두하려 했는데 개인적으로 일이 생겨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어떻게 꾸며질 지는 저도 모릅니다.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책들이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는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돼죠. 올해 안엔 열 수 있을 거예요.” 마음을 따듯하게 해줄 공간에 생각이 미치자 예의 천진한 웃음을 웃는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사진=김성중기자 ju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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