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함박눈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 나는 고드름이 되고 싶었습니다.….”

매주 월·수요일 오전 11시 미추홀종합사회복지관(인천시 남구 주안5동) 3층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 천자문을 읽듯 음률을 맞춰가며 또박또박 글 읽는 소리속에 우리들 어머니의 정감이 묻어난다.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어르신대학의 한 강좌인 한글반 교실. 함께 황혼을 향해 가는 스승과 제자들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우리 글을 익히는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초급반에는 60~70대 할머니 10여 분이 계시지요. 기역, 니은도 모르던 분들인데 1년도 안돼 2학년2학기 국어책을 읽을 만큼 실력이 늘었어요. 열의가 대단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각에 입실해 1시간을 꼬박 읽고 씁니다. 그래도 시간이 짧다고 다들 아쉬워하죠.”

이강희 강사(69)는 전쟁 등 혼란기와 가난을 겪으며 배울 기회를 놓쳤던 동년배들의 향학열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가며 차분하게 가르치는데 중점을 둔다. 글자 뿐 아니라 글 속에 나오는 단어나 문장의 뜻을 쉽게 이해하도록 여러 재미있는 예를 들어가며 지도해, 제자들은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창피하지 뭐. 이 나이가 되도록 한글도 모르니…. 올까 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와서 배우니까 참 좋아.” 이 모할머니의 말에 “맞아, 새 세상에 온 것같애. 복지관에 한글 배우러 오는 날이 맨날 기다려진다니까”하며 할머니들이 맞장구를 친다.

5년여 전 복지관이 개관할 때부터 한글반을 가르친 이 강사의 제자들은 중급반까지 올라 지금 초등 5학년1학기 국어를 배우고 있다.

‘나는 하박이입니다. 하늘어셔 녀려올때 되고 시었습니다….’ 읽기를 마친 후 받아쓰기를 하는 시간. 틀린 것을 부끄러워하는 제자들의 노트를 살펴보며 이 강사는 글자는 쓸 때와 읽을 때 달라진다는 것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단 한번도 무엇을 드시거나 받으신 적이 없어요. 작은 요구르트 한 개도 안 드신다니까요. 우리는 너무 고마워서 드리는건데.” 반장 할머니의 푸념에 “나는 그런 거 안 좋아해요”하고 단호히 거절하는 이 강사. 한 번 받아 먹기 시작하면, 할머니들이 없는 주머니 털어 계속 무언가 사올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이 복지관외에도 다른 복지관에서 역시 같은 세대 노인들에게 한글, 산수(수학) 등을 가르치는 이 강사는 정부 중앙부처에서 정년 때까지 봉직한 공무원 출신이다. 쉬운 한글이지만 강사로 나서기 전 정식으로 교수법을 익혔고, 지금도 매일 2시간씩 공부를 한다. 체력관리를 위해 시작한 마라톤은 풀코스 도전을 했을 만큼 수준급이다.

“내가 건강하고 지식이 풍부해야 남을 가르치지요. 연세 드신 분들 가르친다고 적당히 시간 때워서는 안된다는 게 내 주관입니다.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은 용기를 내서 복지관으로 오십시오. 일단 문턱을 넘으면 글을 알아가는 기쁨을 아실 겁니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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