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 도시, 인천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포구(浦口)를 국어사전은 이렇게 정의해놓고 있다.포구는 인천의 발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포구를 통해 외래문물이 어느 지역보다 먼저 들어왔고, 지역 경제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반면 포구는 어쩔 수 없이 외세 침략의 교두보가 되어 인천사람들에게 수난의 역사를 안겨주기도 했다. '포구’라는 키워드로 인천을 살펴볼 때 가장 오랜 기록 중 하나는 ‘한나루 포구’에 대한 것이다. 1천600여년 전, 인천 청량산 동쪽의 자그마한 포구였던 한나루(대진, 大津)는 백제 사신들이 중국과 통교하기 위해 배를 타던 선착장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 뱃길을 통해 사람의 왕래가 시작되고 외국 문물이 전래되었다는 것은 인천사에서 의의가 크다’고 ‘간추린 인천사(오종원 조우성 김홍전 김윤식 공저)’는 밝히고 있다.

이후 여러 기록에 자주 나타나는 인천의 포구들은 제물포, 호구포, 북성포 등이다. 1883년 개항 당시 인구 70여 명에 불과했던 작은 포구 제물포는 인천항으로 개발됐고, 호구포(남동구 논현동)는 1920년대 들어 이곳 앞바다 갯벌에 남동염전이 만들어지면서 매몰되어 사라졌다. 이 염전마저도 80~90년대 남동공단에 자리를 내줬다. ‘국토와 민족생활사(최영준 저)’ 제4장 개항기 인천의 도시화와 경관의 변화를 보면, 1883년 개항을 전후한 시기 인천 해안의 포구에 대한 설명이 있다. 개항 이후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인천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의 간척공사가 시행되었는데, 제물포, 탁포, 북성포, 성창포, 섭도포 일대에서 진행되었던 간척 공사는 굴곡으로 형성되어 있던 자연상태의 해안선과 갯골의 지형을 바꿔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간척공사가 이루어진 지역은 업무지구, 상업지구, 항만지구, 임해공업지구, 철도부지 등으로 이용되었다. 월미도 인근의 성산포지역은 1903년 러일전쟁 전후로 교량 건설과 이로 인한 토사퇴적이 일어나자 간척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남아있는 포구들

산업화와 개발에 밀려 수많은 인천(육지)의 포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소래포구(남동구), 화수부두(동구), 만석부두(동구), 북성부두(중구)가 현재 남아있는 대표적인 포구들로 알려져 있다.새우젓축제 등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소래포구는 그나마 낫다. 나머지 포구들은 비릿한 생선내음과 회 맛, 바닷가 향수를 잊지 못하는 이들의 드문 발길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북성, 만석, 화수부두는 서구 원창동에서 동구 만석동 일대에 거쳐 만들어질 18 선석 규모의 북항개발 사업에 따라 큰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이들 부두를 이용하고 있는 선주, 주민들은 북항이 개발되면 소형어선은 대형어선때문에 위험해 대체부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만석부두의 선주 김동희씨(59)는 “북성부두 일대를 매립해 물량장과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대체부두를 만들어달라는 주민 요구를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들어줬다”며 선주, 주민들은 이 일대 어업이 다시 활성화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소래포구

조용한 포구였던 소래포구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때는 80년대 후반부터라는 것이 이곳서 수십년 산 어민들의 말이다. 소래에서 25년을 살았다는 한 선주는 “88서울올림픽이 있던 무렵부터 포구가 활기를 띠더니 90년대, 2000년대 초기까지 수입이 썩 괜찮았다”며 “2003년 이후 하행길을 걷게 된 것같다고 회고했다. 수협 소래어촌계의 연간 어획고 역시 한창 때보다 3분의1 수준으로 감소, 어민조합원에게 이익금 배당을 못하고 있다.

요즘도 여전히 주말이면 수도권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관할구청인 남동구는 소래포구축제를 연다, 포구 일대를 정비한다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안으로 어민들의 수입은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이다.80년대 후반만 해도 이곳을 근거지로 드나들던 소형어선은 30여척에 불과했다. 포구가 작았던 만큼 몇 안되는 배들이 경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지만, 10여 년 전 정부가 무등록 어선 1천여 척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조업허가를 내주면서 경쟁은 치열해졌다.

허가 초기에는 그나마 어획량이 많고, 실제 조업하지 않는 어선들이 있어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97년 IMF이후 실직자들이 배를 구입해 조업에 나서는 등 너도나도 바다로 뛰어들면서 어획량·어종은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 어민들의 분석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 불법어업까지 불사하는 일이 빈번해진 때도 이즈음부터다.이곳에서 15년 가량 조업을 해온 선주 박만근씨(인천환경운동연합 해양환경감시단 섭외부장)는 “비싼 기름 넣고 바다로 나가야 인건비에 유지비에 적자이기 일쑤여서 아예 나가지 않는 배들이 대다수”라며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아내를 배에 태우거나, 뻘에서 방게라도 잡아 팔려고 나서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정부에서 배를 사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1억5천여 만원에 건조한 배를 6천만원 안팎으로 보상해준다니 어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배들이 활기가 없으니, 포구 일대의 어시장이나 상가 등도 예전만 못하다고 푸념이라고 전했다.

△화수부두

동구 화수2동 두산인프라코어 건물을 따라 수 백 m 걸어들어가면 인천의 대표적 포구중 하나였던 화수부두가 나온다. 60, 70년대, 화수부두는 인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자연항으로 태풍이 와도 안전하게 어선을 보호할 수 있다는 지리적 잇점 때문에 부두로 수많은 배들이 들어찼고, 그 열풍에 한국전쟁 후 남하한 실향민들, 서울 마포나루에서 어업을 하던 이까지 몰려들었다.

전라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벌이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1970년 2월 이곳을 찾은 강길수씨(66)는 30년 이상 부두에 터잡고 산 토박이 아닌 토박이다. “부두 입구에 차가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으면 말 다했지 않아요? 부두에 대는 배도, 하루에 부리는 생선의 양도, 팔고 사는 사람들 숫자도 엄청났어요. 배들은 대기를 하고 있다가 하역을 했어요.” 강씨는 자신처럼 돈을 벌기 위해 전국 사방에서 온 사람이 넘쳐났었다며 30여년 전을 회고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칠성호 선주 모씨는 “3일간 배를 타고 대흑산도나 홍도까지 내려가 배 가득 잡은 생선을 화수부두에 내려놓고 나면 너무 피곤해 발로 차기까지 했다”며 갈치, 조기에서 먹통 오징어까지 생선이라는 생선은 다 잡고, 배 한 척이 무려 1천짝의 생선을 내려놓던 시절을 들려줬다.40년 넘게 부두에서 ‘부산집’이라는 선술집을 운영해온 유인상 할머니(80).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곳에 가게가 있다보니 부두의 역사를 정면에서 지켜본 산역사다. “여기 가게 바닥에 묻어놓은 큰 항아리 보이지? 이게 막걸리 독이야. 어부, 선주, 객주, 생선을 사러오는 사람들이 목을 축이러 몰려들었지.” 할머니는 이제는 쓸모가 없어 물 담는 독으로 쓰고 있는 항아리를 가리켰다.

화수부두는 80년대 후반, 주변 개발로 수심이 얕아져 배들이 들어오기를 꺼리고 어획량이 줄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최근 찾은 화수부두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부두를 큰 일터로 알던 이들은 대부분 떠난지 오래고 지금은 노쇠해 떠날 수 없는 이들, 음식점이나 미용실 등 기본적 서비스업을 하는 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칠성호 선주처럼 내 배를 갖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숫적으로 매우 적고, 그나마 생선이 많이 잡히지 않아 자주 조업을 하지 않는 형편이다.

△만석부두

화수부두와 인접한 만석부두 역시 90년대 초까지 호황기를 이어왔다. 선주 김동희씨는 “많을 때는 하루에 광어, 도다리 같은 생선을 1천kg씩 잡아올리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100kg도 채 안된다”고 밝혔다. 화수부두에서 20년, 만석부두에서 10년 통틀어 30년을 이 일대 부두에서 살아온 김씨는 “대체부두가 개발되면 이곳에 있는 소형어선들은 북성부두로 가고 만석부두는 폐쇄될 전망”이라며 그곳에서 과거의 활기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했다.만석부두가 화수부두와 다른 점은 낚싯배인 유선업이 발달한 것이다. 현재도 80~90척의 유선이 있어, 부두 입구는 낚싯배 알선을 알리는 간판이 즐비하다.

△북성부두

‘중구 월미도 가는 방향에 대한제분 공장이 있다. 매립 전에는 북성구지라고 부르던 바닷가였다. 북성곶의 발음이 변해 북성구지라고 했다. 월미도 둑길이 축조되기 전에는 영종, 강화, 장봉 등 가까운 섬에서 작은 어선이 출입했었다고 한다. 1938년 공장이 서고 나서 제분공장 앞이라고 불렀다.’(인천한세기, 신태범 저)

인천의 다른 포구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성부두는 여전히 작은 어선들이 싱싱한 생선을 내려놓는 포구다. 30여 척의 배들은 새우, 망둥어, 쭈꾸미 등 다양한 어종을 잡아오는데, 즉석에서 이들을 굽거나 조리해 먹는 맛이 일품이어서 단골을 상대로 장사하는 음식점들이 부둣가에 나란히 서있다. 신선한 생선류를 싸게 사려는 이들의 발길도 잦다. 북항개발로 일대 어느 부두보다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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