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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운동(24)-이주노동자 여성의 권리를 위해
한국의 이주노동자 유입은 80년대 중·후반에 시작해 산업연수생 제도가 도입된 90년대 초 급증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도 90년대 초반 서울지역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 92년 7월 천주교 외국인노동자상담소가 인천과 서울에 설립됐고, 93년에 외국인노동자 피난처,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 등이 결성됐다. 94년 1월 이주노동자들이 경실련에서 미등록 노동자의 산재보상을 촉구하는 최초의 농성을 벌였고, 95년 1월에도 명동성당에서 네팔 이주노동자 연수생들이 농성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공동대책위에 참여한 노동·시민·인권·종교단체들이 이주노동자 인권문제를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95년 7월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를 발족했다.





인천지역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은 2000년 들어 전문 단체들이 창립되면서 시작했다. 2000년 4월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가 동구 화수동에, 2001년 2월에는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가 남동구 구월동에 문을 열고 상담 및 의료 등 지원 활동을 벌여나갔다.


그러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한 마구잡이식 단속과 연행, 강제추방이 이뤄지면서 이주노동자의 인권 및 노동기본권 유린 등 각종 불상사는 계속됐다. 2003년 11월 이주노동자의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한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합동단속이 이뤄졌다.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은 이에 연대하여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전면 합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에 그 심각함과 부당함을 알렸다.


2003, 4년 들어 결혼 이주여성들에 대한 인권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인천여성의 전화는 ‘매매혼’으로 피해를 입은 동남아 이주여성의 문제, 알선업체들의 폭리, 결혼 이주여성의 국적취득 및 취업 등의 문제에 파고들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 다문화공동체 등이 새로운 화두로 부상했다. 국제결혼에 이은 다문화 가족의 문제가 한국인의 배타적 문화와 맞물려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의 출범


2000년 4월, 인천지역 도시빈민운동에 투신해온 박종렬 목사와 박경서 목사, 인천사랑병원 이왕준 원장 등이 중심이 돼 최초의 인천지역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로서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5월 동구 화수동에 문을 열었다. 목사와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지역 인사 18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산업재해 등 각종 사고와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해 상담과 배상 지원 활동을 벌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생활문제 상담과 쉼터를 운영하며 병원, 변호사 등 연계, 전문 영역에서 도움을 주었다. 센터는 2005년 9월 남구 도화3동으로 이전했다.


2001년 3월에는 남동구 구월동에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가 문을 열었다. 양혜우 초대 소장 등 일부 활동가들이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일했는데 그 실무 경험이 바탕이 됐다. 임금체불, 산재 등으로 고통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문제 해결에 주력하며 한글교실, 여름캠프 등 다양한 사업을 벌여왔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는 2004년 9월 서구 가좌동 영창테크노타운 건물 2층 200평을 사업가로 부터 무상 임대받음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곳에 이주노동자 전용 도서관, 치과진료소, 컴퓨터 교실을 열고, 2005년 3월에는 이주노동자 전용 치과진료소 ‘희망세상’을 개소했다. 이곳에 치과병원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소속 의사와 간호사들이 팀을 이뤄 참여, 매주 한차례 진료한다. 인천시 여약사회는 격주로 무료투약 사업을, ‘건강한 노동세상’, ‘노무법인 현장’ 등도 산재 및 노무상담, 교육을 담당하며 지원하고 있다.


92년 설립된 천주교인천교구 외국인상담소는 필리핀 등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상담을 벌여오다 2004년 9월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소’ 문을 열고 이듬해 5월 치과진료도 시작하는 등 사업을 확대했다. 2005년 8월에는 이주여성 노동자 등을 위한 임시 거주 및 쉼터로, 낮에는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쁨의 집’문을 중구 도원동에 열었다.





남동공단을 거점으로 한국외국인선교회, 씨앗선교회 등 선교단체들도 2001년 7월경 결성되면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상담, 의료지원, 한글교실, 이주여성 산후조리방 등 지원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이들 단체는 매해 남동공단 체육공원에서 ‘외국인근로자 체육대회’와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


인천지역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출범과 함께 다급한 현장 이주노동자들의 실생활 지원에 매달렸다. 불법체류자들의 무차별 단속과 산업연수 및 고용허가제의 허점, 노동현장에서 고용주들의 부당한 처우 등 이주노동자들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나 시민사회와의 연계 및 여론화 등 전면적인 인권운동의 전개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소업체들은 3D업종에 종사해온 저임금의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 인천시 집계에 따르면 인천지역 이주노동자는 2003년 1만5천200여명에 이르렀으며 2006년에 그 숫자는 2만5천800여명으로 늘었다. 이중 68%가 불법체류자로 분류됐다. 산업연수제도 하에서 부조리한 송출비용 등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구조는 계속됐다.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합법화 하고 도입과정의 공공성, 투명성을 강화한 고용허가제는 1년의 시행 경과기간을 두고 2003년 8월 국회를 통과했다. 고용허가제는 개선된 면도 많으나, 기존 미등록 노동자의 선별 합법화와 사업장 이동제한, 체류기한의 3년 제한 등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빠져들게 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내재하고 있었다.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4년 이상 불법체류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합동단속이 2003년 11월과 12월 2차에 걸쳐 실시됐다. 이주노동자와 지원단체의 항의 농성도 격화됐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전면 합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단속 철회를 촉구했다. 공대위에는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천주교인천교구 외국인상담소를 비롯해 ‘민주개혁 인천시민연대’, 민중연대 등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이 참여했다.


공대위는 2차 단속이 시작되는 12월8일 인천출입국사무소 앞에서 발대식을 가졌다. 공대위는 기자회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피난처를 마련하고 기관에 항의서한을 발송한다고 밝히고,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여나갔다.


한편 11월25일 인천시 동구 송현동 목재공장에서 단속을 피해다니던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브르혼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400만원을 들여 입국한 브르혼씨는 돈을 제대로 벌지못한데다 강제출국을 피할 수 없었다.


같은 달 11∼12일에도 강제출국을 걱정하던 스리랑카인과 방글라데시인이 각각 김포와 성남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11월17일~28일 간의 1차 단속에서 인천출입국관리소는 단지 113명을 적발, 40명을 강제출국시켰다. 인권침해 논란 속에 실제 정부의 강력한 단속은 이뤄지지 못했고, 단속 효과도 미미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 인권운동

다문화 가정 급증 새 화두로 등장

인천지역에서 외국인 여성의 결혼 건수는 2005년말 현재 2천15건으로, 2002년 644건 보다 3년만에 3배 이상 늘어났다.





결혼 이주여성의 인권 문제는 2003,4년 들어 본격 제기됐다. 인천여성의 전화 등은 국제결혼을 빙자한 ‘매매혼’으로 피해를 입은 동남아 이주여성의 문제와 알선 업체들의 폭리 등 구조적 모순에 초점을 맞췄다. 여성의 전화 등 이주여성인권연대는 국제결혼 중개업소의 ‘베트남 처녀 알선’ 등 상혼에 의한 반인권적 프래카드 부터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고 신고제인 결혼중계업법도 허가제로 변경하는 법안을 국회를 통해 제출했다. 이와함께 한국 사회의 차별과 가부장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결혼 이주여성들이 시민으로서 권리와 행복 추구를 위한 제도의 개선에 힘을 모았다. 가정 폭력에 대응하고 취업교육 등 자립의 문제에서 차별적인 국적 취득의 문제까지 정책토론회와 국제 연대활동을 통해 벌여나갔다.


인천여성의 전화는 2003년 9월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반을 개설했고, 2004년에 이주여성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를 운영하는 한편 이들과 함께하는 역사기행, 체험학습 등의 사업을 벌였다. 이혼 이주여성들을 위해 그룹홈을 제공해 20여명을 자립시켰다. 이주여성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반은 이후 복지관, 여성문화회관, 종교단체 등에서 잇달아 개설, 현재 10여곳에 이르고 있다.


까리따스수녀회는 2004년 남동공단에 외국인노동자센터를 개설했다가 2006년 구월동으로 이전, 이주노동자문화센터를 열었다. 이주노동자문화센터는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들을 위한 상담과 한글교육을 시작했다. 부부상담 등 실생활 교육 등을 통해 평등한 인격체로서 종파를 초월해 이주여성들의 생활 적응을 도왔다.




◇다문화 가정, 다문화 공동체


2007년 4월 현재 인천지역 초, 중,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국제결혼가정 자녀는 495명에 이르렀다.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의 문제는 그들의 부모형제와 자녀, 이웃, 학교 교실의 문제로 확대됐다. 국제결혼가정의 자녀교육의 문제 제기와 차별과 편견의 극복, 생활지원 대책이 ‘다문화 가정’의 문제로 지칭돼 2006, 7년에 들어 본격화했다. 여기에는 시민사회단체만이 아닌 정부와 지자체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정부는 2007년 3월 전국 38개 지역에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열었다. 인천은 남구(인천시여성복지관)와 강화군에 센터가 개소돼 이민자 자녀 교재 개발, 아동양육 도우미 파견, 한국어 교육 체계화, 한국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인천지역 이주노동자, 여성인권 단체들은 2006년부터 인천시 국제교류센터, 남구와 함께 이주노동자, 이주민과의 통합을 목적으로 ‘다문화 열린 축제’로 ‘인조이아시아’(In-Joy Asia)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천주교 인천교구외국인상담소, 사랑마을교회이주노동자쉼터, 씨앗선교회, 여성의전화, 까리따스수녀회, 민예총 인천지회 등이 참여했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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