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 화백하면 테마가 있는 작품을 특유의 펜과 수채화로 재현해온 작가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난 십수년동안 줄곧 소래포구를 중심으로 잊혀져가는 인천의 풍경을 심상으로 다가가 살려내고 있는 그다.

이번엔 개항지로서 역사가 오롯이 살아있는 ‘인천 근대건축’을 주제로 잡았다. 자유공원에 대한 ‘창조적 복원’을 둘러싼 논란이 지역 핫이슈로 떠올라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 건축물을 포함한 당시 건축을 미학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에 대한 작가의 변은 섣부른 추측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만국공원 복원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지요. 그에 대한 개인적 입장을 보여주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근대건축물을 역사적 가치라는 관점으로만 다가가려하지 않았어요. 선택한 이유는 120여년전 해안가 촌락에 중국 영국 러시아 독일 등 각국의 건축물들이 하나의 군을 이루며 이국적 풍광을 자아냈던 제물포항 모습이 회화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남겨둘 만한 훌륭한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인천근대건축 풍경드로잉’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4일 개막, 11일까지 인천신세계갤러리를 ‘근대 인천’으로 되돌려놓는다.

▲인천근대건축 풍경드로잉전

“근대건축을 테마로 해서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한켠에서는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해야할 공부의 양이 방대함을 감지했지요. 중도에 포기할까 하는 갈등도 겪었습니다. 이제사 결론은 잘한 것 같습니다.”

완성된 작품들을 앞에 두고 화백은 비로소 환한 웃음을 건넨다. 1년여동안 준비한 전시다. 그럼에도 시간이 더 주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지난 시간이 스펙트럼처럼 지나간다. 근대건축물을 차근차근 그려나가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미학적 가치를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선 자료의 수집과 더불어 역사인식을 쌓아야하는 것이 우선임을 깨달았다. 인천시역사자료관과 화도진도서관 인천시립박물관을 닳토록 드나들었는가 하면, 역사학자와 건축학자, 향토사가를 두루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대부분 근대 건축물이 소실된데다 흐릿한 흑백사진만으로는 세부 모습을 확인하기가 힘들었어요. 색채 역시 이미지 자료에 의존해야했지요. 주어진 단서로 마치 탐정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듯 작업했습니다.” 건축미술을 전공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강조한다.

그려낸 양이 상당하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답동성당이에요. 우아한 돔 형태의 지붕을 자랑한 오례당이죠. 랜드마크로서 최초의 남방시설을 도입한 존스톤 별장에 한국 최초의 서구식 세창양행 사택, 역시 최초의 서양식 숙박시설인 대불호텔….” 작품 설명이 마치 역사가 같다.


여기에 인천부청, 인천해관, 제물포구락부, 인천측후소, 본정통 거리, 그리고 각각의 건물을 살려 당시 제물포항 모습을 세밀하게 재현한 대작도 있다. 40여점에 이른다.

색채의 재현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흰색과 갈색 주조의 그리사이유(Grisaille) 기법을 이용했다고 화백은 설명을 붙인다. “흑백사진을 바탕으로 색을 입히려니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제한적으로 절제하며 색을 썼어요.”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역사적인 가치가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고 말한다. “자료만 받쳐준다면 당시 생활상까지 더하고 싶습니다. 당분간 이 작업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그림은 나의 천직”

어려서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고교시절 큰 스승을 만났다. 한국 수채화의 대가로 꼽히는 이경희 선생에게서 배움을 얻었다.

대학에선 건축미술을 전공했다. 첫 직장으로 인천에 있는 보르네오가구를 택했다. 당시엔 잠시 거쳐가는 도시려니 했었다. 그런 것이 그만 삶을 묻었다. 40년이 넘었다.

“운이 좋았어요. 가구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출장 때마다 스케치북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림과 늘 같이 살 수 있었지요.”

작가적 입지를 넓히고 싶다는 마음이 인다.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직장에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서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인천시미술대전, 한국수채협회전에 이름을 올린다. 인천시초대작가를 거쳐 지금은 인천시미술초대작가회 이사장 자리에 올라 있다.


“그림이야말로 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언제나 옆에 있어 행복합니다.”

▲소래포구에서 겨울연가까지

90년대부터 김 화백은 줄곧 소래포구를 담아왔다. 포구에 떠있는 배들과 어망, 사람들이 그의 화폭에서 살아났다.

“인천에 대한 애착은 바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특히 소래포구는 늘 생기가 넘쳐요. 그곳에 가면 내가 생존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대표적인 테마전으로 ‘겨울연가’를 꼽을 수 있다. 드라마로 방영됐던 ‘겨울연가’의 장소들을 따라가며 되살려낸 기획전이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2003년 당시 일본의 수채화 전문 출판사로부터 촬영장소를 그림으로 살려 책으로 엮어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일본작가 우에노와 공동작업에 나서 동경에서 출판기념전을 열고 다시 인천으로 와 2인전 자리를 폈다.

“우에노와의 인연은 20년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86년 야마하 피아노사 책임디자인 중역이던 그가 보르네오 가구를 수입하겠다고 인천을 찾아와 첫 만남을 가졌지요. 그림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어요. 단박에 서로 친구가 됐습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함께 2인전을 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몇 년 후 우에노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습니다. 결국은 겨울연가 테마전으로 그 약속을 풀었습니다.”

무작정 풍경을 그리는 것보단 테마를 정해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계속 해야지요. 늘 깨어 있고 스스로를 일으켜세우기 위함입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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