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숭의시립야구장에서 마지막 공식 야구경기가 열렸다.

인천시야구협회는 이날 낮 12시30분 지역내 초·중·고 및 대학의 17개 야구부 감독과 코치, 야구협회 임원 및 심판 등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007 인천시야구협회 납회 친선야구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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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납회식은 수 년 간 중단돼 오다 내년 1월 철거를 앞두고 부활한, 사실상 1934년 문을 연 숭의야구장의 마지막 공식 행사다.

숭의야구장이 개장하기 전까지 인천의 야구장은 현 제물포고가 있는 웃터골이 유일했다. 한용단과 웃터골로 대표되는 ‘인천 야구’는 일제강점기 인천부민들의 한(恨)을 풀어줬다.

1934년 육상장(현 숭의종합경기장·1920년 개장) 옆에 야구장이 조성됐다. 야구장이라고는 하나 허허벌판에 시설도 변변치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말 미군의 원조로 그나마 시설을 조금 갖추게 됐다.

전쟁 후 곤궁한 생활을 영위하며 실의에 빠져있던 인천시민들에게 숭의야구장에서 벌어진 ‘인천 야구’는 몇 안되는 즐길거리였다. 인천의 고교 야구가 전성기였던 50~60년대 야구장은 학생들과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숭의야구장은 1964년 제45회 전국체전을 계기로 관람석이 설치되는 등 비로서 야구장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인천연고팀으로 1982년 3월27일 프로야구로 개막했다. 그 해 9월 숭의야구장에 조명시설이 설치됐다. 이어진 청보 핀토스가 1986년 전자식 ‘전광판’을 도입했다.

1994년 태평양 돌핀스가 지역 연고팀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머물렀다. 4년 뒤인 1998년 10월29일 현대유니콘스가 숭의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며 ‘인천 야구’의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현대는 2000년 인천을 떠났다. 그해 SK 와이번스가 인천 연고팀이 됐다.

2002년 3월16일 문학야구장 시대가 열렸다. 이후 70년 간 인천야구를 풍미했던 숭의야구장은 이후 쇄락의 길을 걸었다.

숭의야구장은 내년 1월 철거를 앞두고 있다.

김주희기자 juhee@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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