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발간된 ‘인천향토조사자료’에는 당시 인천 풍속과 생활상, 전통적 관혼상제 의식절차 등이 상세하게 기록, 개항기 인천 일본인사회 형성과 발전 연구에 값진 자료라는 의견이 나왔다. 조선총독부 명령에 따라 일본인 관점에서 편찬됐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으나 세밀한 통계자료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일제 강점초기 인천사회 연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주요한 보고서로 평가됐다.

인천대 인천학연구원이 27일 개막한 ‘제1회 한국지역학대회’에서 ‘동아시아 지역학 네트워크’를 주제로 연 첫날 심포지엄의 발제를 맡은 이옥련 중국 연변대 교수는 1910년대 인천연구자료를 검토, ‘인천향토조사자료’의 가치를 밝혔다.

이번 행사는 국내 지역학연구자와 연구기관이 한자리에 모여 지방 역사 문화연구 성과와 과제를 점검하는 첫 종합학술대회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교수는 당시 인천공립보통학교장이었던 이마이 이노스케가 집필한 ‘인천향토조사자료’는 당시 인천부청과 경찰서 등 각급기관과 학교, 사찰, 사회단체의 광범위한 후원을 받아 내용이 다양하고 세밀, 근대인천지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천 조선인의 호구, 노동사회, 교육, 종교습관, 심지어 인천의 효자, 절부, 열녀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정리, 생활상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며 “1910년대 인천사 자료 중 가장 종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 조선총독부가 인천의 각 부·군 향토사 사료를 정리했다는 면에서 1910년 발간된 인천 최초의 통사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1914년 각국 거류지제도 철폐를 기술한 것과 관련, “일본은 지방 군·면을 페·치·분·합 함으로써 한국인의 전통적인 생활권과 공동체 질서를 파괴하는 한편 일본의 거주지 중심으로 도시시설을 집중적으로 투자했으며, 이는 일본인에게만 유리한 도시환경을 조성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풀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은 각종 생활과 편의 시설에서 완전히 격리됐음에도 편찬자는 ‘일본의 일대 행복이었다’고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또 위생에 관한 기술에서 당시 인천을 이 시기 조선의 건강지로 부를 만큼 풍토병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특히“1914년 가을이래 서울을 중심으로 조선 각지에 만연했던 성홍열 환자가 불과 3명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인천의 위생상태가 양호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인천이 항구도시로 시작해 상공업도시로 성장한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도시 중 하나”라고 전제, “인천에 대한 연구는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구성해낼 수 있는 관건”이라고 제안했다. 따라서 근대인천지역에 대한 연구가 지역에 한정될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도시 사례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국내와 해외에 산재한 기록물들을 수집·정리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라고 했다.

이날 동경 경제대 하시야 히로시 교수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개항도시’를 내용으로 기조발표를 했으며 김영수 동경대학 연구원은 ‘개항기 인천과 한성의 위생사업’에 대해 주제 발표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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