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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앞둔 숭의야구장
27일 오후 숭의시립야구장을 찾은 인천야구 원로들의 모임 ‘인천백구회’의 강대진(64) 총무의 얼굴엔 회한이 가득했다.


꺼져있는 외야 전광판, 텅 비어있는 그라운드, 오랫동안 손을 보지 않은 듯 여기저기 부서진 관람석 의자. 어린 시절 야구의 꿈을 키웠던, 성년이 돼선 삶의 터전이었던, 70년 넘게 인천야구를 지켜온 숭의야구장의 오늘은 환갑을 훌쩍 넘긴 야구인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나마 그 역사가 고작 두달여 밖에 남아있지 않으니 ‘원로’의 답답한 마음은 더 이상 달래줄 길이 없는 듯했다.


동산중 3학년때인 1958년 야구 선수가 된 그는 동산고를 거쳐 인천시청팀 선수로 활약했다. 1969년 시작한 야구협회 일을 1989년까지 봤다. 생존해 있는 인천 야구 원로 중 가장 생생한 기억을 풀어낼 수 있는, 인천 야구사의 단골 취재원이기도 한 그의 입에선 컴퓨터 화면에 기록이 흐르듯 숭의야구장의 역사가 술술 흘러나왔다.


“1964년 인천에서 전국체전이 열리게 돼 그 때 비로서 야구장의 면모를 갖추게 됐지. 그 전까지는 관람석도 없었어. 그래도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내외야석엔 야구팬들로 가득했지.”


기록상 숭의야구장은 1934년 개장했다. 앞서 1920년 문을 연 육상장(현 숭의종합경기장) 옆 허허벌판이 ‘야구 원조’ 인천의 두번째 공식 야구장이 됐다. 그 전까지는 1920년 말 일제가 만든 웃터골(현 제물포고)이 인천 야구의 중심이자 인천부민들의 한(恨)을 달래는 공간이었다.


“한국전쟁 후 주한미군의 고문으로 있던 정용복씨가 1958년이던가 그 해 미군의 원조를 받아냈지. 그 원조 덕에 육상장도, 야구장도 운동장으로서 꼴을 갖추게 됐어. 언덕이었던 관중석은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 야구장 안팎의 경계를 나눴지.”


그 언덕이 청룡기 지역예선을 치르는 날이면 인천고와 동산고, 인천공고(현 인천기계공고) 세 학교의 학생들과 시민들로 가득했다. 밴드부가 신나게 연주하면 양측 응원단을 열띤 응원공방을 펼쳤다. 그 열기가 어찌나 과열됐던지 인천시내가 들썩거린 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


“1975년 5월쯤이었지 아마. 청룡기 지역예선전이었는데 동산고가 7-0으로 앞서가던 7회 인천고가 동점을 만들었지. 흐름이 인천고로 넘어간거야. 일몰시간이 다가오는데 동산고 포수가 덕아웃으로 들어가 시간을 끈거지. 그때 사단이 났어. 인천고 응원단이 그라운드에 난입했고, 이어 동산고도 펜스를 넘었지. 난장판이 됐어.”


이 사건으로 당시 야구협회 임원들이 총 사퇴했다. 두 학교 모두 청룡기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그의 기억은 1950년대말로 이어졌다. 현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이 재일교포 야구단의 에이스 투수로 인천을 찾아 멋진 투구를 선보인 일이며, 당시 한국 고교야구를 지배했던 인천고와 동산고의 연승이야기까지 쉬지 않았다. 박현식 선수가 육상장까지 날아가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인천야구사의 가장 큰 홈런을 친 일도 그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때 활약한 선수들은 물론 야구장 관리인으로 ‘운동장 최씨’로 불리던 고 최승환씨까지 그 이름까지 하나하나 또렷이 기억해냈다. 현 체육회관 자리에 있던 도원극장과 관련한 에피소드까지 곁들였다.


“야구장 주변에는 제대로된 건물이 어디있어. 좌판에 삶은 계란이랑 사탕, 과자를 팔았지. 돈이 없어 야구를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은 기름통을 펴 쳐 놓은 담장 아래를 파 야구장에 훔쳐 들어왔고, 야구장 관리자들은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담장 주변에 오물을 쌓놓았지.”


물에 적신 붓에 횟가루를 묻혀 커다란 칠판에 점수를 써 넣던 시절도 있었다. ‘똑딱이’로 부르던 수동식 전광판은 1986년 청보 핀토스 시절에 들어서야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1982년 프로야구 시작과 함께 조명시설을 갖추었고, 그 때 장내 아나운서가 여자로 바뀌었다.


그의 야구 인생을 함께 한 숭의야구장이 헐리게 된다고 하자 그는 답답하고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지금 자리에 야구장을 그대로 둔 ‘야구 공원’이 생기는 것.


강 총무는 “숭의야구장이 사라지면 당장 내년 3월 경기를 준비해야할 선수들이 훈련할 곳을 잃게 된다. 숭의야구장을 헐어버리더라도 대체구장은 그 전에 마련돼야 한다. 80년 가까이 된 야구장을 너무 쉽게 허무는게 아닌지 인천시체육회장인 안상수 인천시장에 섭섭하다”고 말했다.

김주희기자 juhee@i-today.co.kr


김주희 기자  juhee@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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