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를 이어가야 할 K-리그 그라운드가 볼썽 사나운 경기 몰수 사태로 멍들었다.

K-리그 운영 주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6일 오후 5시 포항 송라구장에서 열기로 한 포항 스틸러스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삼성 하우젠컵 2006 경기를 취소하고 경기를 거부한 제주를 기권패(0-2 패) 처리했다.사건의 발단은 경북·포항 지역 건설 노조원들의 포스코 본사 건물 점거농성 때문에 비롯됐다.

포항의 홈 구장인 포항전용구장(스틸야드)은 포스코 본사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농성으로 출입이 불가능해졌다.따라서 당초 15일로 예정됐던 포항-제주전은 하루 순연됐다. 그러나 16일에도 포항전용구장 봉쇄가 풀리지 않자 프로연맹은 경기 장소를 포항 구단 훈련장인 송라구장으로 바꿨다. 또 야간 조명시설이 없어 경기시간을 오후 7시에서 오후 5시로 앞당겼다.

신경전은 경기 시간을 바꾸는 과정에서 불거졌다.원정 팀인 제주는 선수단이 오후 7시로 정해진 경기 시간에 리듬을 맞춰 놓았는데 연맹이 일방적으로 시간을 바꿨다며 경기 거부 의사를 밝혔다.정순기 제주 단장은 “연맹이 일방적으로 경기 시간을 바꾼 뒤 제대로 통보조차 해주지 않았다. 경기 당일 낮 12시가 지나서야 시간이 바뀐 걸 알고 어떻게 경기에 임할 수 있겠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급기야 제주 선수단은 연맹의 몰수 게임 발표 전에 이미 짐을 싸들고 연고지인 제주도로 돌아갔다.이번 사건으로 팬들을 철저하게 외면한 채 동네축구보다 못한 리그의 난맥상을 드러낸 프로축구연맹과 제주 구단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연맹은 구단을 설득해 원만하게 경기를 치러야 할 리그의 운영 주체임에도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다 수습을 하지 못해 한마디로 ‘나 몰라라’ 식의 무능함과 무성의를 단적으로 드러냈다.연맹은 특히 K-리그 홈페이지에도 경기 시간을 바꾸지 않아 팬들을 아예 무시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또 제주 구단은 연맹의 일 처리가 신경에 거슬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소중한 팬들을 저버린 채 고집불통식의 경기 거부로 끝내 그라운드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이번 사건은 장맛비 속에서도 한국 축구의 토양 발전을 꿈꾸며 그라운드를 찾고있는 팬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 일로 남게 됐다.

한국 축구가 독일월드컵 16강 좌절 후 너나 할 것 없이 ‘K-리그의 경쟁력이 한국 축구의 경쟁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몰수 사태는 소수 팬들마저 그라운드에서 몰아내는 반작용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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