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행(雨中行)

비가 오고 있다
안개 속에서
가고 있다
비, 안개, 하루살이가
뒤범벅이 되어
이내가 되어
덫이 되어

(며칠째)
내 목(木)양말은
젖고 있다

<박용래>

박용래 시인을 생각하면 문득 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마지막 구절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눈물의 왕-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가 먼저 떠오른다. 그가 생전에 그렇게 자주 울었던 울음과 눈물에 연상되어서다. 그를 한번도 가까이서 본 적은 없지만 그에 관련한 어느 기록도 그의 다정다감과 눈물을 말하지 않은 것이 없다. 물론 그의 결곡함도 빼놓지 않고.

요즘 날씨 비슷하다. 비가 오고 시인은 자옥한 안개 속을 간다. 몸을 적시는 비, 길을 감추는 안개, 덧없는 하루살이의 삶. 그 자체가 저녁 어스름의 푸르스름한 이내요, 고단한 삶의 덫(조건)이 아닌가. 그렇게 ‘며칠째’ 자신의 목양말이 젖고 있음을 토로한다.

신경림이 지적했듯이 박용래 시인 특유의 간결한 미적 감각, 다시 말해서 그의 시가 내보이는 ‘가느다란 선과 짙은 색깔’을 이 작품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김윤식 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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