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어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터전에서 애착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요. 인천에서 산 지 9년이 됐어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


인천에 오던 해부터 인천약산초등학교 방과후교사로 삶을 시작한 문경숙씨는 인천사랑이 깊다. 그동안 지내온 날들을 들여다보면 하루아침에 생긴 감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니고 있는 직함이 여럿이다. 남동마당 주부기자, 인천시 시민기자, 인천시 행정자치 시민모니터, 인천문화재단 시민문화컨설팅단원, 인천시립박물관 유물해설사까지 각각의 경력이 수년씩을 넘어서고 있다.

출발은 이랬다. “IMF가 터지면서 어린이집 보육교사 일터를 접고 시댁이 있는 인천에 왔어요. 낯선 도시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침 남동마당에서 주부기자단을 모집하더군요.”

인천의제 21에서 운영하는 시민문화예술 모니터단으로 넓혀갔다. 지역 예술단체가 펼치는 공연을 모니터하는 역할이었다. 한 주에 평균 3회정도 2년을 꼬박 쫓아다녔다.

“토·일요일은 공연장에서 살다시피했어요. 시민이 무슨 평가를 하느냐는 시선도 겪었지요. 이제는 예술인들을 많이 알아요. 모두가 재산이지요.” 인천문화재단이 만들어지면서 시민문화컨설팅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는 여전히 활동중이다.

역사를 알고 싶은 관심은 인천시립박물관 시민대학원을 찾도록 했다. 유물해설사 경력이 어느덧 4년을 넘어서고 있다. 또 있다. 해반문화사랑회가 초·중·고를 찾아가 펼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 방문교육’의 교사이기도 하다.

시민기자 경력도 만만치 않다. 인천시가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 시민기자, 여성가족부의 ‘위민 넷(women-net)’ 웹진기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기자, 그리고 sbs 시민기자 유포터이기도 하다.

“봉사활동을 다니다보면 인천에 좋은 소식이 많은데 막상 나오는 기사는 좋지않은 소식뿐이에요. 인천의 좋은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서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어요.”

무엇을 해도 대충대충은 없다. 오히려 극성스럽다는 표현이 맞다. 올해만도 방송사 우수유포터상을 세번이나 탔는가 하면, 멘토링활동을 통해 여성가족부장관상을 따내기도 했다. ‘위민 넷’에서는 올들어 별도 칼럼을 맡게 됐다.

“어디든 활동하겠다고 이름을 걸고 시작하면 최소한 10년은 하자는 것이 스스로 정한 원칙이에요.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무게중심은 방과후 교사라고 강조한다. “한부모 가정 아이들과 기초수급생활자 자녀들도 있지요. 따듯한 엄마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인터뷰 마무리는 자녀이야기다.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믿어주어서예요. 인천여상 다니는 첫째 조승희, 중학생 둘째 검도부 용석이, 막내 초등학생 용국이, 내가 살아가는 버팀목입니다.” 어느새 엄마의 자리에 서 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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