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화단의 원로 황병식 화백이 오랜만에 개인전을 인천에서 편다.

60여년 화력이 붙은 노 화가는 3년전 뇌경색이라는 생애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불행을 딛고 일어서보니 한 손을 쓸 수 없게 된 그다. 붓을 꺾으려 결심한다.

후배와 제자들은 한결같이 만류했다. 오른손이 건재함을 진언했다.

고심에 빠진다. 그리곤 분연히 일어섰다. 그에게 그림은 곧 분신이자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더해지면 더해졌지 뒷걸음질은 없다.

여전히 인천의 비중있는 전시마다 초대를 받아 작품을 내놓았다.

올 봄에는 하와이로 건너가 원로작가 초대전을 치르기도 했다.

낭보가 또 하나 있다.

프랑스 최고의 갤러리 프랑스 국립살롱(SNBA)의 정회원으로 당당히 오른 것이 지난해다.

한국 작가로 정회원에 오른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입회자격이 까다로운 단체다.

“검여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왼손으로 도전, 좌수서로 또 다른 예술세계를 개척했지요.

저는 운좋게 오른손이 건재해요. 이번 전시에서 ‘희망의 아침’이라는 작품을 하나 내놓습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지요.”

▲스물세번째 개인전


“금년이 내가 바쁜 해인가 봐요. 5년만에 여는 개인전을 봄부터 준비했지요. 중간에 인천시 해외초대전으로 하와이를 다녀오기도 했고요. 연말에는 프랑스 국립살롱 회원전에도 출품해야 합니다.”

3년전 변고를 겪고 다시 붓을 잡았을 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었다. 차근차근 그려나갔다. 어느덧 자신이 생겼다.

올해가 팔순이다. 제자뻘되는 후배들이 기념전을 적극 권했다. 그렇게 스물세번째 개인전을 치르게 됐다. 11월3일부터 11일까지 인천신세계갤러리에서다.

“나이를 모르고 살아왔어요. 젊은 작가들이 90년대 중반 인천청년작가협회를 결성하며 고문을 맡아달라 했습니다. 서른아홉을 넘으면 더이상 회원으로 남을 수가 없어요. 모두들 떠났는데 나는 여전히 청년작가협회 고문입니다.” 팔순 기념전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다며 빙그레 웃는다.

40여점을 준비했다. 이중 70%가 최근에 그린 작품들이다. 120호에 이르는 대작은 전시회 바로 전에 완성했다. 월미도 앞바다를 그렸다. ‘희망의 아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붓을 쥔 다는 것이 나에겐 희망이지요.”

▲화력 60여년

“황병식 화백은 추상과 구상 사이를 종횡하며 화면에서 군더더기를 제거해 나가는 가운데 화면의 효율적 분할과 이에 따른 구성미에 관심을 보인다. 근경과 원경, 대상과 여백, 유채색과 무채색이 동등한 위상을 확보하는 가운데 구상회화의 서정미와 추상회화의 절대미가 한 화면에 공존한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으나 그렇다고 소박하지도 않은 그의 그림은 60여년 화력 가운데 자연스럽게 걸러진 요체임에 분명하다.” 이경모 평론가가 평하는 황 화백의 작품세계다.

인천에 온 것이 마흔을 넘어서, 그래도 어언 40년이다.

어려서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관서일불학관에서 서양화과를 공부한 그다. 태평양전쟁 말기 교토에 거주하는 귀환동포의 인솔자가 돼 한국으로 귀국한다. 그때 나이가 20대 중반. 그림 공부를 더하기 위해 일본으로 다시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6·25가 터지고 평택고등학교로 발령장을 받는다.

“한국말도 서툴렀어요. 학생들에게 말을 배웠죠. 그때 가르친 첫 제자가 윤병도, 김흥수예요. 이제는 그들도 원로화가가 됐네요.”

평택에서 교사로 15년을 살다온 곳이 인천이다. 인중제고 교사로다. 그리곤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다. “내 생일이 음력 쌍십절이에요. 생일상을 전시회 오픈상으로 바꿨지요.”

이후 인천미협 지부장으로, 예총 부지부장으로 지역화단을 일구는데 앞장선다. 그리곤 정년을 몇년 앞두고 교직을 사임하더니 전업작가의 길을 택한다. 그후 세월이 또 20여년이다.




▲“예술은 사람들 마음에 빛을 주는 것”

이번 전시가 역시나 비중이 크지만 신경이 쓰이는 곳이 또 있다고 말한다. 바로 12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리는 프랑스국립살롱 회원전이다. 준회원 자격으로 4년여 기간을 거쳐 지난해 정회원으로 승격됐다.

“세계적인 화가가 모여있는 단체에요.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국내 작가는 몇 없지요. 올해 회원전에 출품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세계 화단이 인정하는 화백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그림에 대한 의미를 묻자 선뜻 답이 돌아온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 그것은 사람들 마음에 빛을 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화가는 모든 것을 뜻대로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화가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한참이나 깊다.

글·사진=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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