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생에 대한 자서전처럼, 일기를 써나가듯 그립니다. 타인의 시각으로 보면 물 흐르듯해 보여도 사실 그 안에는 절규가 있습니다.”

유달리 자화상을 많이 담아온 인천의 중견작가 홍윤표 화백이
이유있는 변명을 들려준다. 아니나 다를까 자화상 시리즈를 모아 개인전을 연다.

오는 27일부터 11일2일까지 인천 신세계갤러리를 ‘홍윤표’로 채운다. 벌써 개인전만 스물다섯번째다.

인천과 인연을 맺고 화단을 이끌어온 지 어언 40년.
이순의 나이를 훌쩍 넘어섰지만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다. 프로임을 자처한다.

“프로는 그림을 그리다 그리다, 남는 시간이 생기면 다른 일을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활의 중심이죠.”

그림으로 일관된 삶을 살고 있는 전업작가다운 말이다.

▲“자기다운 그림 그려야”

“농사꾼이 열심히 1년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것처럼 1년동안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합니다. 내내 그림으로 살아왔어요. 그러다 보니 개인전을 많이 했네요.”

개인전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열리는 그룹전, 초대전에서도 빠짐없이 작품을 내는 그다. 그것도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그때마다 유독 눈에 띈다. 이유는 화폭 전체든, 한켠이든 화가의 모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화상만으로 개인전을 하는 것은 14년전 해반갤러리 이후 이번이 두번째다.

“누구에게 구속당하기 싫어서 나를 가지고 많이 놀아요. 어떤 때는 잘났다는 생각에 뒤에 후광을 넣기도 하고, 개의 얼굴에 내 모습을 넣기도 해요. 화난 표정, 웃는 얼굴, 그때그때 달라요.”

들여다보니 예전의 전시에서는 유독 어두운 표정이 많았다. 이제는 직설적인 모습도 있지만 형상화한 그림이 많아졌다.

“그땐 먹고사는 일이 어려워 노골적으로 힘듦을 드러냈던 것 같지요 아마. 지금은 밥을 굶지는 않으니까 여유로워졌나보네요.” 농인 듯 진심인 듯 말을 던지며 웃는다.

예쁜 그림만을 그려야 팔리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얼마나 진정성을 담아서 그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되뇌인다.

“나도 소질이 있어서 풍경화를 잘 그릴 수 있어요. 그러나 예쁜 그림보단 자기다운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일정한 규칙과 틀 없이 사는 듯하지만 늘 그림을 생각하면서 살지요.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내 자화상입니다. 구매자에게 남의 얼굴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들이 작품을 보고 웃음을 얻었으면 한다고 던진다.

“웃음이 아니라 욕이어도 좋습니다. 내 그림을 보고 뭔가 생각을 가지고 갔으면 해요.”

▲일찍이 전업작가로 살다

20대 중반 인천으로 와 삶을 묻은 그다. 인천과 중앙화단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했다. 어느 시기부터는 인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지역화단 일구기에 앞장서온 그다. 인천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첫 직장으로 미술교사를 한 5년 하고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그렇다.

“내가 운이 좋았어요. 중앙화단의 중심격인 ‘신미회’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 발판이 됐어요. 화단의 주목을 받았지요. 작품을 꽤 많이 팔았어요. 전업작가로서는 잘 나갔지요.”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등 초대전에 수도 없이 불려다녔다. 말그대로 전국구로 활동했다. 전국의 작가 19인이 모여 발기한 단체 ‘신작회’도 그가 주축이 됐다.

열정은 인천에서도 마찬가지다. 노희정, 이종무 화가와 인천수채화협회를 만들었는가 하면, 후배 작가들을 독려해 ‘해랍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열심히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장르를 넘어 의기투합한 모임이에요. 선배이다보니 주축이 된 것처럼 보일 뿐이지요. 지금까지도 열심히 전시를 해오고 있습니다.”

차츰 중앙에서 활동을 줄여갔다. “내가 사는 인천에서 더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한겁니다. 주변에 좋은 화우들이 많아요. 팔자에 없는 인천미술협회 지회장도 하고 인천시문화상을 타기도 했네요.” 그렇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잘 그리는 그림보다는 좋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툭 던진다. “제자들에게 잘 그리려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이를테면 잘 생긴 사람보다 멋진 사람이 낫지 않겠느냐 합니다.”

전업작가로서의 삶이 결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후회는 없다. “한때는 혹독스럽게 고통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용감하게 견뎌냈다고 자부합니다. 내가 못 사는 이유는 그림이 나빠서, 부족해서라고 늘 생각하며 살았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열심히 그려야지요.”

글·사진=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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