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10일 오전 5시20분(이하 한국시간).독일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7만2천여 관중과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네딘 지단(34.프랑스)과 마르코 마테라치(33.이탈리아)가몸싸움을 벌였다.

이탈리아 수비진영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마테라치가 뒤에서 지단을 껴안듯이 유니폼을 잡아 끌었고 이에 화가 난 지단이 마테라치에게 뭔가 말로 항의했다.그리고 두 선수는 나란히 걸어가며 몇 마디 말을 더 주고받았고 마테라치를 지나쳐 뛰어가던 지단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다가오던 마테라치의 가슴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마테라치는 풀썩 뒤로 나자빠졌다.오라시오 엘리손도 주심은 이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대기심이 지단의 행동을 본 다음 주심에게 얘기하자 엘리손도 주심은 지체없이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지단이 빠진 뒤 분위기가 바뀐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캡틴'을 잃은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3-5로 졌고 '아주리 군단'은 사상 네 번째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후 일파만파로 번져 나간 이른바 지단의 '박치기 사건'은 13일 지단이 프랑스TV 카날 플뤼스와 생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고 당시 마테라치의 발언을 언급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분위기다.그동안 쏟아졌던 지단과 마테라치의 말, 각 언론사와 단체들의 주장을 종합해둘 사이에 빚어진 사건을 재구성해본다.

◇유니폼 승강이→욕설→박치기사건의 발단은 마테라치가 지단의 유니폼을 잡은 데서 비롯됐다.마테라치는 이탈리아 스포츠 일간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 인터뷰에서 "당시나는 지단의 유니폼 상의를 잠깐 잡았을 뿐인데 지단은 돌아서서 극도로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정말 내 유니폼이 갖고 싶냐? 경기가 끝난 뒤주마'라고 했다.

이 때문에 지단에게 욕을 했다"고 말했다.지단도 "마테라치가 몇 차례 내 유니폼 상의를 잡아 당겨 '유니폼을 원한다면경기 끝나고 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즉 유니폼을 잡아당긴 행위를 놓고 승강이가 오간 것은 둘 다 인정하는 부분이다.그러나 그 다음 욕설 부분에서 지단과 마테라치의 증언은 상반된다.

마테라치는 "내가 한 욕은 그라운드 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어서 가끔은그게 욕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것"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어떤 표현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단은 이에 대해 "마테라치는 매우 거친 말을 했다.그것도 몇 차례 반복했다.내 어머니와 누이에 대해 매우 거친 말을 했다"고 털어놓았다.지단은 "그런 말을 듣느니 차라리 턱에 펀치를 얻어맞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그런 말은 행동보다도 몇 배나 더 거칠었다"고 했다.

아무튼 마테라치의 말이 지단의 행동을 자극한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마테라치가 욕설을 퍼붓고 난 다음 지단이 곧바로 박치기를 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발언은 없었다프랑스 인종차별 감시단체 'SOS 라시슴(Rascism)'은 "마테라치가 지단을 더러운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몇몇 언론들은 한 술 더 떠 '더러운 테러리스트의 아들', '더러운 이슬람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는 정황을 내비치기도 했다.하지만 지단과 마테라치 모두 인종차별 발언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마테라치는 심지어 "난 테러리스트라는 말의 뜻조차 모른다"고 했다.

브라질의 한 방송은 독화술 전문가를 동원, 입술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누이는 매춘부'라는 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지단이 '거친 말'의 정확한 내용을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이 부분은 미궁에 빠져있다.

둘 사이의 말 싸움은 이탈리아어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지단이 2001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 전 이탈리아프로축구 1부리그 (세리에A) 유벤투스에서5년 가량 활약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단-마테라치 징계 어떻게 되나국제축구연맹(FIFA)은 제프 블래터 회장의 지시로 공식적인 징계 조사에 착수한상태다.현재로서는 지단과 마테라치 둘 다 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지단은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경기장에서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현역에서은퇴한 신분이지만 벌금 등 다른 형태로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 블래터 회장이 "지단을 골든볼 수상자로 뽑은 기자단의 결정이 축구의 윤리에 어긋난 것으로 판단될 경우 FIFA 집행위원회가 그 결정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해 지단의 골든볼 수상 취소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마테라치는 인종차별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중징계를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이탈리아축구연맹도 징계를 피하게 된다.하지만 그라운드 안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것으로 확인되면 FIFA가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 예선 등 A매치에 출전 정지 조치를 내릴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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