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하면 남원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추어탕의 대명사가 된 남원, 이제 남원을 빼 놓고 추어탕을 얘기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남원의 추어탕은 왜 유명해졌을까? 그보다 먼저 살펴볼 게 있다. 남원처럼 어떤 음식이 유명해진 지역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병천순대와 화평동냉면, 곤지암소머리국밥처럼 지리적 연관 없이 원조격인 한 집으로 인해 주위에 아류격인 여러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 케이스가 있고, 고성(명태) 용대리(황태) 양양(송이) 벌교(꼬막) 그리고 남원처럼 지리적 특성에 의해 음식이 발달하게 된 경우가 있다. 남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아우르고 있다.

무엇을 의미할까? 섬진강의 지류는 남원 곳곳으로 흐르고, 풍부한 퇴적층은 자연스레 미꾸라지를 비롯한 민물고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에서 나는 고랭지 우거지와 추어탕에 빠져서는 안되는 향신료 초피(전라도에서는 젠피라 부른다)를 쉽게 구할 수가 있어서 어느 지역보다 손쉽게 추어탕을 끓여먹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남원은 추어탕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고장인 것이다.

남원에서 시작한 추어탕은 어느덧 전국민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보양식에 신경써야 하는 중년남자치고 추어탕 마다할 사람 있을까. 그렇다고 남원까지 내려가기에 시간은 없고, 그렇다고 포기는 말라. 인천 부평역 부근에 추어탕 맛집이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주인장은 어렸을 때부터 미꾸라지 천렵을 즐길 정도로 미꾸라지를 즐기며 살아왔다. 그러니 그의 미꾸라지 요리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누구보다 뒤 처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집의 추어탕이 맛나는 이유는 우선 신선한 재료에 있다. 중국산 미꾸라지가 범람하는 요즘에 고창 등지에서 키우는 국산 미꾸라지만을 고집한다. 여기에 인천지역 음식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안주인의 요리솜씨가 더해지니 추어탕이 안 맛날 수가 없지 않겠는가? 가격도 만만해 한 그릇에 5천원!

고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뙤약볕이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주말 오후, 집에 오면 어머니는 냄비에 매운탕 양념을 담아 주셨다. 친구와 나는 그걸 가지고 천렵을 떠났다. 그 당시만 해도 탐진강은 은어가 많아 은빛 물결치던 1급수나 다름없었다.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냄비에 넣고 강물로 매운탕을 끓였다. 채소는 강가에 있던 밭에서 주인 몰래 빌려(?) 넣었다. 모닥불 열기에다 뜨겁고 매운 음식을 햇볕에 달궈진 돌멩이에 앉아서 먹는다 생각해 보시라.

거기에 반주로 소주 한 병까지 더해진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열치열이 따로 없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먹어도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기막힌 맛에 입이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매운탕을 다 먹고 나서는 냇물에 들어가 멱을 감았다. 그리고 그늘에서 한 숨 때리고 나면 거짓말처럼 몸도 정신도 개운해졌다. 그때 이후로 제대로 된 천렵은 경험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천렵의 추억은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때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든 물고기도 이유지만 이미 많은 강들이 오염돼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고등학생 때 환상처럼 경험했던 천렵이 더욱 그리워 질 수밖에. 다시 느끼고 싶은 천렵의 맛.

그런데 며칠 전 먹은 음식으로 인해 천렵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게 됐다. 바로 미꾸라지털레기탕이 오늘의 메뉴다. 털레기라는 말이 다소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경기도 고양이나 파주 쪽에서는 제법 이름난 향토음식이라고 한다. 왜 털레기인지 어원은 확실치 않지만 모든 재료를 털어 넣는데서 유래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꾸라지를 이용한 요리의 대표주자는 추어탕이다. 추어탕이 원맨쇼라 할 정도로 미꾸라지가 주재료지만 미꾸라지털레기는 주인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재료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미꾸라지, 각종 채소, 수제비, 마른국수, 민물새우들이 어우러진 상태에서 고추장을 풀어 마무리를 한다. 매운탕도 아니요 추어탕도 아니요 어죽도 아니요. 이게 바로 미꾸라지털레기라는 음식이다. 먼저 국수를 건져먹고 각종 건지를 건져먹고 국물까지 떠먹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몸에 좋은 보양식을 먹을 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어야 돼.”

그날 동행한 지인의 말마따나 이런 음식은 나오는 땀쯤은 내버려 둔 채 일단 먹는데 집중해야 한다.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매우면 매운 대로 그저 음식에 입을 맞춰주고 볼일이다. 그러고 나서 땀을 닦아내도 늦지는 않다.

그대가 주당이라면 벌써 소주 한 두 병쯤은 가볍게 비웠을 것이다. 소주와 참 잘 어울리는 음식이고 안주이기 때문이다. 아니 꼭 주당이 아니라도 왠지 차가운 소주 한 잔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다. 그래도 취기는 오르지 않을 정도로 속을 든든하게 해 줄 터이니 걱정은 내버려 둬도 된다.

털레기탕에는 통추가 들어간다. 하지만 새끼손가락 정도의 작은놈이라 거부감도 없다. 비린내나 흙내도 없다는 게 처음으로 털레기탕을 맛보았다는 지인의 맛 품평이다.

문득, 여기가 고등학생 때 천렵을 했던 그 강가인가 싶어진다. 그 때처럼 강가에 풍덩 들어가 멱을 감을 수는 없지만.

인천맛집멋집 cafe.daum.net/inchonjoa
글·사진=맛객 http://blog.daum.net/cartoo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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