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인천에는 계속된 도시의 확장과 개발, 재개발에 따른 다양한 현안과 사회적 쟁점들이 속출했다. 이슈들이 늘어나면서 지역현안과 전국적 사안에 공동 대응한 단체들의 크고 작은 연대 조직과 활동도 급증했다.

한편으로 시민들은 80,90년대식 민주 대 반민주, 보수 대 진보의 구도로 부터 탈이념화 추세가 가속됐다. 주요 정치, 사회적 이슈들은 시민사회와의 대치속에 장기화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도시환경·평화·교육 등의 쟁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적 과제들과 씨름하면서 정체 상태에 놓여있던 그 규모나 역량에 비해 과도한 역할을 떠맡았다. 이는 지역현안에 대해 정당과 지자체, 지방의회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향식 정치를 소신있게 펼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연대 활동에 나선 단체들은 현안에 대한 정책 수립 및 사업 이행에 있어 연대에 이름만 올려놓는 수준으로 결속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연대사업은 증대됐으나 영향력은 약화됐고, 이는 연대운동의 과잉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지역현안들은 수년에서 10여년씩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동양화학 폐석회 처리문제는 99년 6월 ‘동양화학 폐기물처리 및 난개발 진상규명 시민대책협의회’(동규협) 발족으로 본격화한 이래 2002년 12월 다시 ‘폐석회 적정처리 방안모색을 위한 시민위원회’를 발족했고 2005년 들어서야 해결점을 찾았다.

수인선 지상화 반대운동은 96년 ‘연수주민 대책위’의 10만명 서명운동으로 시작했다. 2000년 52개 주민·시민단체가 참여한 ‘올바른 수인전철 건설을 위한 인천시민협의회’로 반대 운동이 본격화됐으며, 2006년 9월 인천시와 ‘화물열차 도심통과 불가’ 원칙에 합의하고 시와 함께 건교부 정책에 대응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2000년 9월 본격화한 환경,시민단체의 경인운하 건설 반대 운동은 노무현 정부 인수위의 백지화 - 보류에 이어 경제성 재검토 용역의 과정을 거치며 민관협의 기구까지 발족했으나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다.

2000년 4월 ‘계양산 화약고 설치반대 범구민대책위’가 조직됐다. 99년 12월 경인화학상사는 구청으로부터 개발제한구역 다남동 2천100평에 화약고 4채 건축허가를 받았으나, 환경단체와 주민 반대운동으로 허가는 취소됐고, 2006년 12월 최종적으로 대법원도 ‘계양산 화약고 허가취소 무효소송’을 기각함으로 이를 인정했다.

2000년 5월 경인여대 분규가 발생하고, 12월말 교수들이 구속돼자 시민단체들은 ‘경인여대 구속교수 석방과 학원민주화쟁취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이듬해 9월 ‘경인여대 정상화를 위한 시민대책위’ 활동을 벌였다.

2001년 8월에는 13개 단체가 ‘인천항 살리기 시민연대’가 발족해 인천항만공사제 조기 도입, 인천~중국가 정기컨테이너 항로 조기개설을 요구했으며, 2004년 7월 제2연륙교 주경간폭 700미터 설치안을 선박운항 안전성 등의 보장을 위해 확대하는 운동을 벌여 800미터로 확장시켰다.

2001년 9월 10개 단체로 ‘인천시 보육조례제정을 위한 연대모임’이 구성돼 보육시설 지원확대, 방과후 보육활성화, 특수보육시설 확충등 공동보육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운동을 벌였다. 2002년 1월에는 (구)인천백화점내 실내경륜장 설치반대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했으나, 결국 설치되고 말았다.

‘인천지역 반전평화연대회의’는 2003년 3월 출범해 이라크 침공반대, 전쟁지원 반대를 위해 활동했다. 1달여간 4차례의 반전평화대회를 열고 1000인 선언을 발표했다. 2003년 4월에는 ‘월미산 난개발저지를 위한 시민대책위’가 결성됐다. 하와이이민 100주년기념관, 전광판, 승전기념비(해군) 등의 월미산 설치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경제자유구역 폐기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도 2003년 5월 발족해 노동기본권 박탈등을 주장하며 1천인 선언운동을 벌였다. 같은 해 7월 발족한 ‘학교급식환경개선과 조례제정을 위한 인천시민모임’은 주민발의, 공청회를 거쳐 11월 3만8천650명의 서명을 받아 청구인명부 제출했다. 이 조례는 2004년 5월 제정, 공포됐다.

‘문학산 패트리어트미사일 배치계획 철회 및 시민공원만들기 범시민대책위’ 는 2005년 5월 발족해 배치계획이 없음이 확인된 이듬해 11월까지 활동했다. 2004년 3월 56개 단체로 ‘iTV 공익적 민영방송 실현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를 구성했다. 이 해말 경인방송 재허가 추천이 거부되자 2005년 7월 창사준비위에 참여했다.

2006년 들어 7월 47개 시민·노동·농민단체가 ‘한미FTA저지 인천공동위원회’를 출범시켜 궐기대회, 촛불집회 등의 행사를 벌였다. 8월에는 54개 단체가 ‘계양산 골프장 건설저지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가 발족했으며, 10월에는 12개 단체가 모여 ‘인천지역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위‘를 발족했다.

- 동양화학 폐석회 처리 시민운동

재계 서열 34위의 동양제철화학은 97년부터 자신의 폐석회 야적장 인근 공유수면매립지 4만2천평에 2천9백가구의 아파트 사업승인을 인천시 남구에 요청했다. 이 요청은 2000년 4월까지 6차례에 걸쳐 계속된다. 그러나 이 일대는 동양화학이 68년부터 소다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석회를 쌓아 놓은 곳으로 서해안고속도로 인천 종점 인근 4곳의 침전지에 모두 320만톤에 이르고 있었다.

남구는 이 일대가 악취, 분진 등으로 집단민원이 예상되는 지역이지만 폐석회 처리비용 부담, 개발이익에 따른 일부 토지 기부 등을 전제로 건축허가를 검토중이었고, 인천시는 환경단체 대표, 교수, 시의원등 19명이 참여하는 ‘폐석회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가 폐석회를 환경오염 없이 처리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 건축허가를 보류해줄 것을 남구에 요청하고 있었다.

이에 대응해 인천녹색연합, 민주개혁을 위한 인천시민연대 등 인천지역 26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99년 6월 ‘동양화학 폐기물처리 및 난개발 진상규명 시민대책협의회’(동규협)를 발족하고 아파트 건립에 조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동규협은 ▲폐석회 침출수로 인한 토양오염 가능성 ▲이 일대 녹지공간 부족 ▲난개발에 따른 열악한 주거환경 등을 이유로 아파트 건립에 반대했다. 동규협은 또 시와 남구가 구획정리 제척(除斥), 아파트 허가 등을 통해 동양화학측에 수백억원의 이득을 챙겨주려한다며 특혜의혹을 제기하고 문제의 부지에는 공원등을 조성, 인천시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규협은 동양화학의 아파트 건설계획을 무산시키는 한편, 남구로 하여금 폐기물 불법적치에 따른 과태료 1천만원을 부과시키면서 폐석회 처리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여론화시켰다.

동양화학은 2001년 6월 유수지에 폐석회를 자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유수지 10만평 중 2만7천여평에 320만톤의 폐석회 중 100만톤을 매립하고 여기에 녹지와 공원, 체육시설을 설치한 뒤 기부채납하겠다는 것이다. 폐석회 처리에 뚜렷한 방안이 없던 인천시도 동양화학의 자체매립안을 수용할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동양화학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이라며 환경오염과 특혜문제를 들어 반발하며 이 해 8월 인천환경운동연합 등 10개 환경, 시민단체 공동으로 공개질의서를 인천시장에게 전달했다. 질의서는 ▲폐석회 처리 공개검증 ▲현재적 환경피해 최소화 조치 이행 ▲민원해소 협의체 구성 등과 함께 동양화학 처리계획 반려하고 다각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인천시는 결국 11월 들어 동양화학 폐석회의 저수지 매립 방침을 백지화한 상태에서 동양화학과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위원 5인씩으로 시민위원회를 구성키로 한다. 이에 환경단체 관계자 5명, 토목과 교수 등 전문가 3명, 동양화학 관계자 2명으로 ‘폐석회 적정처리방안 모색을 위한 시민위원회’가 발족된다.

시민위원회는 2003년 들어 동양화학 유수지 10만평에 최고 200만톤, 서구 오류동 골재채취장에 70만톤을 각각 매립하고 나머지 50만톤은 재활용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아울러 자체 매립에 따른 특혜시비를 막기 위해 동양화학이 유수지 매립 후 녹지공간을 조성하고, 아암도 일대에 20만평 규모의 대체 유수지를 조성해 시에 무상기증하는 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같은 시민위의 결정에 대해 남구의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아암도 대체 유수지가 낭비성 요소가 있고 현실성이 없으며, 폐석회 피해를 남구지역 주민들이 겪었으나 혜택은 연수구 주민들에게 돌아가게 됐다며 반발했다.

인천시는 다시 협의에 나서 2004년 1월 남구주민대책위와 동양화학, 남구청과 함께 폐석회를 유수지에 전량 매립키로 협의한다. 전체 320만톤의 폐석회 가운데 재활용분을 뺀 270만톤을 인근 10만여평 넓이의 저수지에 지하 10m, 지상 1.5~2m 높이로 매립해 처리키로 한 것이다.

동양화학은 유수지 용도를 ‘녹지, 공원 및 체육시설’로 변경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시계획시설 변경안을 마련, 2004년 4월과 9월 두차례 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했으나 보류됐다. 주민들에 대한 보상계획이 미흡하고 320만톤 외에 폐석회가 공장내 지하에 추가 매장돼있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폐석회 처리방향은 2005년 5월22일 개최된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승인된 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위원회는 동양화학이 8억원의 보상액을 제시하는 등 보완책을 제시하자 ‘매립복토기준 준수’ ‘민관감시기구 구성’을 조건으로 통과시켰다. 도시계획위가 최종 승인한 안은 동양화약은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를 거쳐 2008년말까지 347만여톤 전량을 10만7천평 넓이의 유수지에 묻고 ▲그 위에 공원녹지(조경시설)와 게이트볼장 등의 체육(운동)시설을 조성하며 ▲없어지는 유수지 대신 송도국제도시 내 40여만평 넓이의 친수공간을 조성해 시에 기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송도국제도시 내 대체 유수지는 경제청의 반대로 무산되고, 현재 인천대공원 호수를 친환경 친수공간으로 새로 조성하는 기본계획이 용역 중에 있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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