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부터 갤러리를 꿈꿔왔습니다. 작가와 시민들에게 문턱이 낮은 그런 공간을 꼭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가들에겐 역작을 걸고 싶은 곳이었으면 해요. 시민들에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닿는 장소였으면 하고 바랍니다.”

남동구 구월동 인천농협지역본부 바로 뒤편에 ‘갤러리 솔’을 연 정근화 관장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오랜 시간 품어왔던 동경을 늦었지만 드디어 이뤘기 때문이다.

불혹을 넘겨 시작한 그림이다. 한참 늦었지만 그러기에 빠져 살았다. 그 세월이 30여년이다. 스스로 그림이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누구를 가르치는 일은 꿈도 꾸지 않았다. 스스로의 정진을 위해 바친 시간들이다. 물처럼 흘러 어느덧 ‘원로’ 인천시초대작가가 됐다.

더이상 갤러리를 미룰 순 없었다. 팔을 걷어붙였다. 장소를 물색한 뒤 공간 꾸미기에 수개월, 드디어 ‘갤러리 솔’이 탄생했다.

#. 남보다 늦게 시작한 그림

“제가 한참이나 늦게 그림을 시작했어요. 제2의 인생을 살자는 결심으로 택한 것이 그림입니다. 늦깎이 학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 40을 넘어서였어요. 그후 20년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국내화단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이종삼, 박세원, 이철주 교수에게서 배움을 얻었다.

“이론에서부터 사군자를 배우고 산수화를 배웠어요. 특히 이종삼 선생님은 엄하셨지요. 호된 꾸중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들이 스승이라고 말하면 누가 될까 지금까지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답니다.”

한국화야말로 철학적 깊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화는 색채가 강하고 강한 이슈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일본그림은 왜소한 편이죠. 반면 한국화는 모든 것에 중용을 취하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필력이 있고 운필이 자유로워요.”

늦게 시작한 연유로 모든 것을 쏟았다. “하루 열시간씩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뜻을 담으라는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살았다. “그림을 그리되 명예를 세우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공모전을 탐하지 말라고 하셨죠. 다만 그림에 뜻을 녹여내라고 이르셨습니다.”

활력과 기개가 넘치는 산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산이 좋았습니다. 설악산은 50번은 갔을 거예요. 규모는 작을지언정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최고지요. 화폭에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어요.”

북한산 나무 하나 그리려 해도 열번 이상을 산에 오르는 그다. 화폭에서 살려낸 나무는 그에게 나무 그 이상이다. 자식같은 그림이다. 그러기에 함부로 남에게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내 그림이 지금의 시대상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누군가는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화 전통을 고고하게 지키고 싶습니다.”

#. 갤러리 솔을 열다

“갤러리를 열고 언제든지 내 작품을 걸 수 있는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작가들의 공통적인 꿈입니다. 더불어 엄마가 아이와 손 잡고 와서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을 갖고 살았어요.”

더이상 미룰 순 없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를 생각하면 더 급해졌다. 우선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간 열정을 바친 내 그림들을 우선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인천농협지역본부 뒤편 건물 사무실을 리모델링, 50여평 공간을 꾸몄다.

정식 개관전에 앞서 준비단계로 먼저 본인의 그림들을 내놓고 개인전을 열었다. “조명은 괜찮은지, 작품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파악하려는 의도에서였어요. 한편으로는 갤러리를 알린다는 목적도 있었지요.”

갤러리 운영은 작가들과 협의하면서 꾸려가겠다고 말한다. 기획전 유치에 대한 조급증을 갖지 않으려 한다. 작가들이 스스로 좋아서 전시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사랑방처럼 오다가다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토론하고 운영방향을 논의하면서 한단계 한단계 나아가려 합니다. 좋은 작가들이 인천에 많아요. 그들의 물길을 이곳으로 돌려놓고 싶습니다.” 작가들을 소개하는 중간자적 역할을 하고 싶다고 힘을 싣는다.

#. 인천시초대작가 초청 개관전

개관기념전으로 인천시초대작가 초대전을 폈다. 지난달 14일 개막, 오는 11일까지 한달동안 이어가고 있다.

“인천시초대작가회에 속해있다보니 초대작가들을 우선 초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르별로 87분이 작품을 내주셨네요. 장소가 협소하다보니 한번에 걸 수 없어서 네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한주씩 네 마당을 이어갔다. 원로작가들을 필두로 조각은 둘째마당, 공예가 세째마당, 서예 문인화 디자인이 네째마당, 그리고 서양화와 한국화는 첫째부터 세째마당에 나눠서 걸었다.

“소나무처럼 사철 푸르고 신선한 공기와 활기찬 미래를 선물해주는, 그리고 고고한 선비의 그것처럼 모든 이에게 청량제가 됐으면 해서 ‘갤러리 솔’이라고 붙였습니다. 내 화실처럼, 내 전시실처럼 언제나 찾아주세요.”

글·사진=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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