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가위에는 가족과 함께 ‘기억에 남을’ 예술영화 나들이에 나서 보자. 스웨덴이 낳은 최고의 명감독 잉마르 베리만을 추모하는 특별전이 인천에서 자리를 폈다. 예술영화관 ‘영화공간 주안’이 ‘한 여름밤의 미소’ ‘제7의 봉인’ ‘산딸기’ 등 그의 대표작 7편을 상영한다.

2007년 여름 세계 영화계의 큰별이 떨어졌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타계한 것이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이다.

1944년 영화 ‘고통’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1956년 ‘한 여름밤의 미소’가 칸느국제영화제에 출품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제7의 봉인’으로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는데 성공한 그는 이후에도 ‘산딸기’ ‘어두운 유리를 통해’ ‘침묵’ ‘페르소나’ ‘치욕’ ‘가을 소나타’ ‘화니와 알렉산더’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수작들을 남겼다. 특히 ‘화니와 알렉산더’(1882년)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불후의 명작이 됐다.

베리만은 영화를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 개인 삶에 있어서 신의 존재 여부와 구원, 예술가의 좌절과 예술의 무기력 등을 이야기했다. 내면적 심리상태를 초현실적인 기법으로 묘사, 난해한 형이상학적 물음을 영화에 끌어들인 첫번째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19세기 근대 연극사실주의 부활과 북구 신비주의 영화전통, 전후세대의 실존주의가 포괄돼 있는 다층적 영화철학의 미학을 선보이며 현대 예술영화의 원류로 추앙받았다.

그를 추모하는 특별전이 있다. 서울 국도극장, 대구 동성아트홀, 광주극장을 거쳐 드디어 인천 ‘영화공간 주안’에 자리를 폈다. 지난 20일 개막, 27일까지 하루 2편씩 릴레이 상영을 시작했다.

#한 여름밤의 미소=1955년작/ 108분

1900년대 스웨덴을 배경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각색했다. 베리만 초기작품 성향인 남녀관계에 대한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다. 캐릭터에 대한 아이러니컬한 묘사와 은근한 유머감각이 잘 드러나 있다.

변호사인 프레드릭은 어린 아내와 플라토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아내와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옛 연인 데지레를 찾던 그는 우연히 데지레의 집에서 그녀의 애인 말콤 백작과 어색한 만남을 하게 된다. 아직 프레드릭을 사랑하는 데지레는 프레드릭과 그의 아내, 말콤 백작과 아내를 주말 별장에 초대한다. 사랑의 음모 때문에 결국 프레드릭과 말콤 백작은 룰렛게임 결투를 벌이는데….

1956년 칸느영화제 최고 시적 유머상. 보달영화제 최고 유럽영화상.

#제7의봉인=1957년/ 105분

베리만은 작품을 통해 인간과 신과 죽음의 관계를 서정적 페시미즘을 바탕으로 인간구원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 작품에서도 신과 인간, 구원이라는 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신의 배반과 침묵이 함께 존재하고 그에 고통받는 인간의 두려움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베리만은 24시간 동안 절망과 환멸 앞에 놓여있는 인간의 상황을 흑백 화면에 격조 높게 담았다.

십자군 전쟁 후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고향 스웨덴으로 돌아온 블로크는 ‘죽음’의 방문을 받는다. 자신을 ‘죽음’이라고 소개한 그에게 블로크는 체스 내기를 제안한다. 승산이 없는 내기에서 블로크가 원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구원의 확신을 얻는 것이다.

1957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이탈리아 내셔널 시디케이트 실버 리본상·최우수 영화감독상.

#산딸기=1957년/ 90분

베리만 영화의 주요 모티브인 꿈이 등장, 계속되는 플레시 백 효과를 차용함으로써 연극과 초현실주의 양식 사이에 걸친 그만의 영화적 실험이 시도된 작품이다. 현실보다 더 생생한 과거와 과거라 믿기 어려운 현실 장면이 오버랩되며 꿈과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 기록된다.

이삭은 명예학위를 받으러 룬드로 여행을 떠난다. 남편 에발트와 떨어져 이삭의 집에 있던 며느리 마리안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여행에 동반하고 이탈리아로 떠나는 3명의 젊은이가 합승한다. 여정중 이삭은 마리안을 통해 자기 아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사랑했던 여자와 이름이 같은 여자아이 사라를 통해 과거를 회상한다.

1957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보딜영화제 최고 유럽영화상. 미국 골든글로부 최우수 영화상.

#처녀의 샘=1960년/ 89분

폭행과 복수라는 절망적인 세계에서 종교적인 구원을 얻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이 간결하고도 소박한 화면으로 드러난다.

외딴 지역에 살면서 신을 충실히 믿는 부부와 사랑스런 딸 카린. 어느날 카린이 교회로 가는 길에 양치기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살해된다. 카린을 따라 나선 하녀는 질투심으로 이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카린의 옷을 들고 도망친 양치기들은 카린의 집인 줄 모른 채 농장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양치기들은 카린의 엄마에게 카린의 옷을 팔려고 하는데….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칸느영화제 특별상.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어두운 유리를 통해=1961년/ 91분

고립된 섬에서 한 가족의 삶을 24시간 조명한 작품, 가족 개개인의 아픔과 동시에 어린시절 공동의 적인 아버지를 향한 애증을 담았다.

수영을 마친 네 사람이 바다에서 걸어나온다. 작가인 아버지 다비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딸 카린과 그의 의사 남편, 그리고 그녀의 남동생 미누스. 가족이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위안도 주지못하는 사이다. 미누스와 카린은 연극을 통해 아버지의 냉혹함을 은유적으로 비난한다.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베를린영화제 OCIC상.

#외침과 속삭임=1972년/ 91분

베리만에게 여성 등장인물은 종종 인간 존재로 고통받는 소외와 딜레마의 상징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4명의 여자를 통해 사이에서 빚어지는 사랑과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주변의 남자가 그녀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드러낸다.

냉정하고 불감증인 카린, 분별없는 마리아, 불안한 마음의 소유자 마그네스, 그리고 하녀 안나. 카린은 19세기 당시의 도덕적 가치관과 종교적 규율을 겉으로는 순응하지만 내적으로는 납득하지 못한다. 마리아는 아그네스의 투병을 뒷전이고 내연 관계였던 가족 주치의의 차가워진 마음을 돌이키려 애쓴다. 병으로 딸을 잃은 안나는 아그네스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며 간호에 최선을 다한다.

1973년 아카데미 촬영상. 미국 영화비평가모임 NYFCC상. 이탈리아 내셔널 시디케이트 실버 리본상·최고 감독상.

#가을 소나타=1978년/ 97분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고통받는 딸을 통해 실존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이다.

베리만은 자신의 여성화된 자아 주인공 리브 울만의 이질적인 내면세계와 마주함으로써 공통받는 현실적 모습을 담았다.

샤롤로테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그녀에게는 두 딸 에바와 헬레나가 있다. 헬레나는 오랜 세월동안 극심한 장애상태에 있으며 맏이 에바는 하나뿐인 자식을 익사사고로 잃었다. 7년만에 재회한 엄마와 에바는 서로의 입을 통해 터져나오는 잔인한 과거의 기억 앞에 발가벗겨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헬레나의 장애가 엄마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보달영화제 최고 유럽영화상.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영화상·최우수 여배우상(잉그리드 버그만).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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